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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

여행지에서 길 제대로 잃은날!

누구에게나 서로 다른 여행 방법이 있겠지만 난 주로 길을 잃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호텔에서 나오면서 뒷주머니에 호텔 명함을 하나 찔러 넣고서 무작정 걷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작정하지 않아도 쉽게 되는 일이지만 작정하고 길을 잃으면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된다라는 신념(?)아닌 신념을 가지고 여행을 하곤 한다. 

그날은 날씨가 보기 드물게 화창했다. 유럽의 날씨는 주로 흐리거나 보슬비가 내려댔다. 
햇살을 오랫만에 봐서 그랬을까? 아침햇살에 눈을 뜨자마자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떠날 채비라고 해 봐야 이불을 간단하게 개고 신발을 신는것 뿐이다. 
우선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서....한국어 가이드를 다운 받아놨는데 한번도 써보질 않았다. 그날은 왠지 한국 아가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설정을 변경했다. 그동안 들어온 영국 아가씨의 발음 따위는 앞에 보이는 강에 던져 버리고 ....
메츠의 시내 중심가를 가로 질러 우선 시골길로 들어섰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선그라스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볼따구에 비치는 한줌의 햇살에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는 느낌이다. 일요일이라 차도 많이 없고 더구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새소리 11월의 유럽의 바람마저 봄바람처럼 상쾌하게 볼에 부딪쳤다. 오랜만에 차 뚜껑을 열었다. 오픈카의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프랑스 푸른 겨울 들판을 달렸다. 
겨울 푸른 들판이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어디든 푸르렀다. 파란 잔디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풀을 뜯는 양떼와 소떼들....
조그만 마을에 들러서 커피 한잔을 했다. 봉주르 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니 옹기종기 모여있던 빵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나를 돌아본다. 잠시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과 눈을 마주 치고 커피를 주문했다. 
유럽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날의 일기를 쓰는것과 같은 느낌이다. 잠시 햇살이 비치는 기둥에 기대어서서 담배를 하나 피웠다. 여느 작은 마을에도 근사한 성당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꽤 묵직한 소리지만 마음을 상당히 차분하고 가볍게 만들어 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마차가 지나간다. 교회를 가는 노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제스처를 취하니 환하게 웃어준다. 프랑스 시골에서만 볼수 있는 일요일 아침의 여유있는 풍경이다. 
그렇게 몇번 가던 들판에 멈춰서기도 하고 이름모를 작은 마을들에서 차를 세우고 아기자기 하게 꾸며진 남의집 화단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연료 경고등에 붉은 불이 들어 왔다. 네비게이션으로 검색을 하니 가까운 주유소는 15키로 정도 떨어져 있다. 

호주 퍼스에서 다윈으로 자동차 여행 5000키로를 하면서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내 차가 멈춰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사를 가는 중이어서 각자 차를 몰고 올라갔다. 아내는 멈춰선 내 차를 보고 배꼽이 빠져라 비웃어 댔다. 
"난 내 차가 기름없이 물로도 갈줄 알았다고...."라는 하이개그로 상황을 반전해 보려 했으나 지금까지 그때 일을 들추며 나를 비웃곤 한다. 그때 일을 상기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20키로만 가면 된다구.....
기름을 가득 넣고 나니 내 배가 부른것 같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제대로 먹은게 없다. 주유소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하나 우걱우걱 삼켜 넣었다. 주유소를 오면서 지나온 길에 멋진 마을이 있어 그곳을 들러 보기로 했다. 
작은 우물이 하나 있고 뾰족한 탑이 하나 있는 3층짜리 집이었는데 온통 등나무가 휘감고 있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집이었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꼬장꼬장한 노인내가 지팡이를 휘저으며 사진 찍지 말라고 한다. 주변에 몇개 집이 있어서 마을 인줄 알았는데 건물 전체가 그 노인의 것인 모양이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사진을 지웠다. 그래도 그렇지 참 노인네 꼬장꼬장하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오만스러움을 보는듯했다. 물론 멋모르고 사진부터 찍은 내가 잘못했기에 사과를 했지만.....

차가 한대 겨우 지나갈 만한 오솔길을 따라서 한참 나아갔다. 오솔길은 언제 달려도 기분좋은 경험이다. 한국의 가을과는 다른 오묘한 유럽만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네비 아가씨는 나를 또 다른 길로 안내를 해서 그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숲이 우거진 방향이다. 시간이 오후가 되면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유럽의 겨울은 낮이 지독히도 짧아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오후 네시가 되자 마자 어둠이 깔리기 일쑤다. 아직 어둠이 깔리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는 듯했다. 숲길로 들어서고 포장도로가 끝났다. 
'어...이건 좀 아닌데 ...'
차는 경차에다가 길은 아직 마르지도 않았고 군데군데 웅덩이도 있었던 것이다. 
네비에는 3키로만 더 가면 된다고 써있었다. 
'까짓거 ...3키로 쯤이야...'
난 심각한 상황에도 지나치게 긍정적인게 문제다. 물론 그때까지도 희망에 가득 차서 유럽의 오솔길을 드라이브하는 상쾌한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절반 정도 갔을까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어 다시 돌아갈 마음이 생겼다. 차에다 후진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는 순간 바퀴가 헛돌았다. 앞으로 다시 전진.....그리고 다시 후진....다시 전진....후진...그리고 바퀴는 말할수 없이 깊숙히 땅에 박혀 버렸다. 차체 사방에 진흙이 튀기고 열린 지붕으로 흙탕물이 튀어들어와 청카바며 차 시트며 모두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주변에는 푸른 보리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고 농가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보았지만 허사다...아무리 경차라고 하나 차는 차다. 
우선 걸어서 가까운 마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골이니 트랙터는 쉽게 빌릴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이놈의 희망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챙겨 놨는지 모를 일이다)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근 2키로정도를 걸었다. 바람이 생각보다 상쾌했다. 지나가는 차도 많이 없는 지방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까운 마을이 어디에 있냐고 묻고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은 꽤 멀리 있었다. 주변에 트랙터가 있는 농가가 있었지만 그냥 들어가다가 개가 마구 짖으며 달려와 도망가느라 바빴다. 어릴때 당숙이 키우던 개에게 물린후 난 개 공포가 조금 있다. 게다가 프랑스 농가에 독일 세퍼드라니....귀여운 푸들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송아지 만한 녀석에게 물렸다가는 엉덩이살 반쯤은 날아갈꺼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아무집 초인종을 눌렀다.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며 바퀴가 헛돈다는 제수처를 취했다. 의외로 쉽게 이해한다. 웃으면서 트랙터가 있는 집을 알려준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가끔 있었던 모양이다. 
알려준대로 가보니 아저씨 한명이 트랙터에 짐을 싣고 있다. 
짧은 영어 그리고 다양한 제스처로 상황을 설명했다. 의외로 쉽게 이해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여행을 근 3개월째 하면서 바디랭귀지에 능통하게 된 모양이다. 바로 트랙터에 몸을 싣더니 내게 타라고 한다. 
"어디에?"
바퀴 커버를 가르켜 그곳에 앉아 걸어온 길을 찬바람 맞으며 가니 눈물이 절로 흐른다. 빗방울이 wh조금씩 드문드문 휘날리기 시작했다.호랑이 장가가는 날이었나 보다.  찬바람에 ......내가 처한 알량한 상황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한참 그렇게 가니 멀리 농장 길 한가운데 쳐박힌 차가 보인다. 덩치도 작은데다가 색도 회색이라서 그런지 더욱 처량하게 보인다. 
"어디를 가는 중이었어?"
"물하우스(mulhouse)요!"
"이길이 아닌데...."
"저도 이길이 아닌거 같더라구요..."
차에 로프를 연결하면서 레미(Remy)아저씨는 씩하고 웃는다. 
나도 웃었다. 이런 상황에 웃음만큼 마음의 안정을 주는게 있을까!
트랙터도 미끌어진다. 그렇게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차의 앞부분에 로프를 연결하고 비포장 도로 1.5키로 정도를 질질 끌려 나왔다. 
포장도로에 들어서자 마자 레미 아저씨는 로프를 풀면서 남은 여행을 잘하라는 덕담을 던진다. 
아저씨의 집까지 내내 트랙터 뒤를 쫄래 쫄래 따라갔다. 차가 농장길 한가운데 쳐박혔다고 말하자마자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가보자고 한 아저씨도 고마웠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아저씨의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아저씨의 집에 도착하니 아저씨는 물 호스와 솔을 내민다. 차에 범벅이 된 진흙탕을 닦으란다. 
간단하게 세차를 하고 아저씨에게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여행이 마칠때쯤 엽서를 한장 보내드리겠다고 ...그리고 지갑을 열어 몇장의 지폐중 20유로를 꺼내어 드렸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는 아저씨에게 트랙터 기름값이라며 드렸다. 
고맙다며 맥주 한잔 해야겠다며 함박 웃음을 지으신다. 
마을을 떠나면서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제나 오만 방자한 프랑스인들만을 생각해왔었는데 ...사람의 고정관념과 편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시간쯤 운전을 해 루네빌레(Luneville)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멋진 성당과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저택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고 있어 들러보니 주변 학교 학예회쯤 되는 모양이다. 흙이 곳곳에 묻은 청카바와 양말 목에다 청바지 밑단을 집어 넣은채로 어린이 합창단의 화음을 감상했다. 소리는 의외로 대단했다. 아마 웅장한 홀에서 울리는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첼로와 오르간 그리고 어린이들의 맑은 음색은 내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밖에 나와 저택을 구경하고 교회를 구경하고 작은 시골 마을의 한가한 길을 걸으며 문이 닫힌 상점의 진열대를 구경하기도 했다. 

참 긴 하루였다. 기분이 좋았다가 꼬장꼬장한 노인네를 만나 당황했다가 차가 농장한가운데 처박혀 버려 좌절했다가 어찌할바를 모르다 길을 헤매다 마음씨 좋은 프랑스 아저씨 때문에 천당간 기분을 느꼈다가 맛있는 개구리 반찬에 저녁을 먹고 누우니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도 하나 배웠다. 내가 가진 오만과 편견은 세상 그 어느것 보다 편협한 후세인 콧털같은 것이라고 ......

일요일 아침 마차를 타고 성당에 가는 부부.....프랑스 동부 어느 시골....
요때부터 '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함....
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ㅋㅋㅋ
트랙터가 구세주입니다. 
조그만 창문들이 참 인상적이었던 루네빌레(Lun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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