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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

오리엔탈 특급작전으로 벗어난 이스탄불..

독일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도착한 이스탄불 공항은 국제공항 답지 않게 한산했다. 비성수기 일까? 라는 기대감을 한껏 품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상쾌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서 반팔 차림으로 전철에 올라타 여기저기 구경하며 시내에 도착했다. 
사람은 만원이어서 전철에서도 사람에 치이고 시내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인 관광객과 세계에서 온 관광자들 
난 이 도시의 매력에 다가가기도 전에 학을 떼고 말았다. 
도시의 활력 보다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이글 거리는 눈빛에 기가 질렸다. 
이런 눈빛은 이슬람국가에서만 나오는 눈빛이다. 인도나 남미도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이글거리는 '사기성'눈빛은 이슬람 국가의 특징인 듯 하다.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달라붙는 '뭘 도와주겠다는 사람들' 
도대체 뭘 도와 주겠다는지 모르겠지만 호의를 거절하는것도 지친다. 
우선 적어온 호스텔을 찾아서 걷기로 했다. 처음엔 걷다가 보이는 호스텔에 짐을 풀 작정이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르케지 역 근처에 짐을 풀기로 했다. 
호스텔은 나쁘지 않았다. 싼 가격에 비교하면 훌륭하다 못해 감탄이 나올 만한 멋진 옥상 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그곳은 마치 섬 같았다. 
시끄럽고 귀찮고 냄새나는 이스탄불에서 그나마 조용히 도시를 감상할수 있는 곳이었다. 
여전히 정해진 시간마다 들려오는 기도 소리는 어디서도 피할수 없다는데는 별 변화가 없었지만 
어차피 마이크에서 들려나오는 기도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러려니 했다.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봐도 모스크를 구경하는것 보다 가는 도중에 사람들 뒤통수를 보다가 질려버렸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이렇게 번잡한 도시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삼일밤을 그곳에서 보냈다. 사람이 적은 아침 이른 시간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를 시작하기도 전에 산책을 하기도 하고 근처 모스크들을 구경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잽싸게 쿠션이 좋은 카페에 들어가거나 호스텔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결정했다. 

불가리아로 가는 거다. 아무것도 볼것 없고 할일도 별로 없는 소피아로 가는 거다. 
오리엔탈 특급열차를 타고 말이다. 시르케지 역에서 베오그라드까지 가는 열차가 있었다. 
순간 '베오그라드'가 마음을 흔들었지만 가격만 비교해 보고 소피아행 열차를 탔다. 
동유럽 수도 이름에는 뭔가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파리...런던.....베를린 에 비해 ....더욱더 심오한 울림이 느껴진다. 베오그라드. 부다페스트. 프라하. 소피아. 그렇지 않은가 ?
오리엔탈 특급은 낡고 느렸다. 같은 칸에 탄 호주 친구에게 얼마 걸리냐고 물으니 역에서 12시간이라고 들었단다. 난 14시간이라고 들었다. 옆방에 있던 호주 여자는 16시간이라고 들었단다. 
세명이서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스탄불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도 역시 다들 '멋진 도시였으나....'로 시작되는 혹평이다. 그곳은 사실 엄청난 에너지가 있는 곳이었지만 가끔은 위협적이고 비위생적이며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료하기까지 한 곳이었다. 오리엔탈 특급열차엔 20명도 채 타지 않았다. 터키 출국 심사를 마치고 기차에 올라와 다시 침대에 누우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불가리아 입국 심사원들이었다. 
여권을 내밀고 침대에 누워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는 동안 도장을 찍어 내게 건낸다. 
생전 처음으로 누워서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아봤다. 
불가리아 입국 심사대는 말 그대로'누워서 도장받기'가 아닌가!
그리고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오래된 기차는 덜컹거리고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도착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차는 동유럽의 풍경(?) 을 반복했다. 회색빛 공장 그리고 깨진 유리창 고장나서 녹슨 기차 를 하염없이 지나치며 유지보수가 전혀 되지 않은 듯한 페인트가 헐벗은 건물들 ...

차장은 아무말 없이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와 호주친구 랜스에게 20분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을 한다. 소피아는 5분뒤에 도착했다. 그들의 시간개념이 이상한 것인지 숫자개념이 이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기차에서 아래 위 침대를 사용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랜스라는 친구는 영국에서 테니스를 가르치는 친구인데 호주로 돌아가기 전에 런던에서 부터 이스탄불 까지 16000키로를 자전거로 여행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적어온 호스텔로 함께 가기로 했다. 소피아 중앙역은 상상 보다 훨씬 열악하고 조잡했다. 커다란 두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지만 이미 녹이 슬어 멈춰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인포메이션'이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달라붙는다. 
랜스 그리고 앤과 함께 트램을 탔다. 불가리아 돈 레바가 하나도 없어서 앤이 우리 표까지 끊었다. 전철은 100년쯤 되었는데 유지보수는 공산당 시절 몇번 하고 한번도 되지 않은 것처럼 녹슨 고물이었지만 사람들은 만원이었다. 

비까지 내려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는 조금은 우울해 보였지만 우리는 신이났다. 길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사람들은 우리를 한번 흘겨볼뿐 '하우캔아이헬프유'따위의 호객행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이 마치 지옥처럼 느껴졌던 순간이다. 
전철을 타서 매표원이 우리에게 오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돈을 더 내라고 한다. 표를 가지고 있던 앤은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세계 각국의 돈이 보인다. 한국을 다녀온 그녀의 지갑에서 1000원짜리도 보인다. 매표원은 몇장의 돈을 돌려보다 10유로를 꺼내 가며 아주 약간의 레바를 돌려줬다. 
우리는 그냥 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말도 통하지 않았으며 불가리아 돈의 가치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옆에 있는 아줌마가 조용히 우리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검표원은 앤의 돈을 갈취하고 있는게 분명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별수 없이 내렸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마자 직원이 묻는다. 
"트램에서 별일은 없었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임이 분명했다. 첫 경험은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지만 우리는 지도 한장을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시내를 탐방했다. 소피아는 멋졌다. 볼것이 아무것도 없고 텅빈 불가리아의 수도는 보잘것 없었지만 이스탄불 보다는 훨씬 평화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할수 있을게 분명해 보였다. 
아주 아주 값이 싸고 함지박 만한  햄버거와 요거트를 마시면서 난 불가리아에 빠져 들고 있었다. 




어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열차 살인사건이 시작되는 곳이죠!!!
난 이제까지 무지개는 저 너머 산 속에 있는 거인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생긴 무지개를 볼줄이야!!!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에서 제일 큰 알렉산더 네스키 성당입니다. 겨울에도 맑고 청명한 날씨가 기분을 업 시켜 줍니다. 
소피아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간 수도원입니다. 1000년이 넘은 유서넘는 곳입니다만 관광객은 거의 저희 뿐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만난 렌스와 앤과 함께 수도원에서 이스탄불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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