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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

청카바의 디스커버리 채널 '거북이의 생애'


호주 다윈에서 2000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포트헤드랜드....
관광지는 아니다. 캐라반을 끌고 여행하는 호주 사람들이 간간이 들리는 곳이다.
광산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꽤 번성하는 편인듯 도시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캐라반 파크도 굉장히 성업중이어서 다른 도시보다 훨씬 시설이 좋은편이었다.
저녁늦게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주인장이 밥을 먹다 나왔는지 조금 뾰루통한 얼굴이다.
"이쪽에 저녁에 좀 볼만한게 있나요?" 하고 물으니
"글쎄요...거북이.."
"엥? 뭔 거북이가 있나요?"
"캐라반 파크 뒤편에 거북이를 볼수가 있죠...지금 산란기인가?"

허거덕 ..산란기의 거북이 ..그러니까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그 장면을 ...볼수 있단 말이지...

서둘러서 텐트를 치고 아내에게 ..
"트래시야...저기 거북이 알 낳는데 .."
"그럼 거북이가 알을 낳지 ..서방님은 엉뚱해!"
"아니 지금이 산란기래 ..그걸 볼수 있다는데 .."

만삭의 아내의 발은 퉁퉁부어서 제대로 걷는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럼 나혼자 갈까? 라고 물으니 그것은 또 싫은지 ...
"알았어 ..가자구.."
못마땅한듯하다.

주인장이 알려준대로 지도를 따라가보니 망망대해다. 칠흑같은 어둠에서 해변만이 조금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돌이 많아서 걷다가 아내에게 ..넌 차를 타고가 내가 거북이를 발견하면 전화를 해줄께 하고 후레쉬를 들고 해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과연 있을까?
봤던 동물의 왕국을 다시 상기해 보니 거북이는 모래 백사장에 알을 낳았던 것을 기억해냈다. 보름달이었다. 그 보름달을 감상하며 한 커플이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난 그 커플들을 보지 못했는데 "좋은 밤이죠!" 라고 말했을때 주저 앉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거북이를 찾고 있는데 어디에서 볼수 있나요?"
"아 거북이요 ..저쪽으로 올라가다가 보면 빨간 랜턴들이 보일겁니다. 그럼 그곳으로 가보세요!" 빨간랜턴?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뭔가가 보이겠지 ..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백사장에서 다시 만났다.
바람이 새찼다. 그래도 보름달이라 천만 다행이었다.
백사장은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모래들이 작은 구릉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방님 저기에 뭔가 발자국이 있어"
가보니 거북이 패들 (다리) 자국이다. 자국을 따라서 가다가 나도 모르게 "헙' 하는 소리를 냈다.
가마솥뚜껑만한 거북이 엄마가 모래 구덩이를 파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북이 크기는 상상보다 훨씬 컸다. 게다가 알을 낳으려고 모래를 파내는 모습이라니 ...
랜턴을 얼른 빨간 불빛으로 바꿨다. 혹시 랜턴빛에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달빛에 비추는 거북이의 눈을 봤다. 전에 동물의 왕국에서 알을 낳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북이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거북이의 눈은 뭔가 보고 있었지만 초점이 흐려보인다.
그래 제정신이 아닐테지....
조용히 앉아 아내와 함께 느린 거북이의 삽질을 지켜봤다.
멀리서 누군가 빨간 랜턴을 가지고 다가온다.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거북이가 알을 몇개나 낳는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북이의 뒷다리를 잡고서 누웠다.
그러자 거북이는 삽질을 멈추고 알을 낳기 시작했다. 당구공 크기만한 하얀 알들이 두개씩 떨어져 나왔다. 나와 트래시는 놀란 입을 닫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신비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또다른 자원봉사자에게 물으니 어쩌면 부화한 거북이 새끼들을 볼지도 모른다고 귀뜸해준다. 안타깝지만 아내의 발이 너무 많이 부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또다른 거북이가 바다에서 해변으로 알을 낳으러 올라오는 중이었다.
밤에 비디오로 조금 찍었는데 어두어서 확인이 힘들다. 그래도 마음이 콩닥콩닥 하고 뛴다.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다. 해변에는 어미 거북의 패달자국 그리고 작은 거북이들의 앙증맞은 패달자국들이 사방에 나있었다.
도로의 불빛이 멀어 다행이다. 티비에서 거북이 새기들이 도로 불빛을 보고 그곳으로 가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다가 가깝고 보름달이 휘영청 밝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 싶었다.

다음날 텐트를 정리하고서 바다에 나갔다
몇몇 자원 봉사자들이 거북이 감시를 하고 바다 청소를 하고 있다.
백사장에 거북이 한마리가 올라와있다.
뛰어가 보니 어제 본 거북이보다 훨씬 작은 크기다.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패달이 하나 없다. 옆에서 보던 자원봉사자가
"상어에게 공격당한것 같아요...껍질에 이빨 자국도 있구요..."
거북이는 죽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게 '동물의 세계' 가 아니던가!

스노클링을 하다가 퀸즈랜드에서 본 엄청나게 커다란 거북이가 생각이 났다.
놀라서 그대로 멈춰버렸던 그 순간!
그리고 해변에서 눈물을 흘리며 알을 낳던 그 거북이....
부은 아내 다리를 이끌고 해변을 걷다가 알을 낳으러 올라오던 커다란 거북이...
그리고 다리 하나를 잃고 해변에 올라와 죽은 또다른 거북이...

거북이를 우연치 않게 보게 된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게다가 알을 낳는 모습이라니 ..
이거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나 보던 풍경이 아닌가.
그리고 인상깊은 자원 봉사자들 ...
자기 앞마당처럼 쓰레기를 줍고 관광자들에게 친절히 거북이가 있는 장소까지 알려준다.
"스트레스 받지 않게 카메라는 켜지 마시고요...조용히 보기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아니 몸소 보여준 자연이란 "공생" 이었다.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안심이 된다.

바다에서 알을 낳으려고 올라온 거북이의 발 자취
자세히 보면 새끼 거북들의 작은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나 있다.
상어에게 공격당해 한쪽 패달을 잃고 죽은 거북이! 명복을 빈다.
죽은 거북이를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는 자원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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