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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낭만이 있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에서의 워킹체험기

  

4학년 일학기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게 늦어져 결석이 많아 지면서 학점 관리가 도저히 안된 것이다.

결과는 2.48의 평점으로 이제까지 대학생활의 성적 중 최악이었다. 공부 못하기로 소문난 내 친구들 중에서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 이었다.

물론 1,2학년도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항상 중간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너무 심각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1학기 수강과목을 필사적으로 정정했다. 그 결과 화려한 교양과목으로 4학년 1학기 수업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때문에 전공과목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영어회화수업을 두 개를 집어넣고 기초 일본어를 집어넣었다.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교양과목이 전공과목에 비해 학점관리가 쉬웠기 때문이다. 
교양과목을 선택하면서 은근히 상대적으로 결석이 잦은 1학년들이 나를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학점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어학실력을 넓히려는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  거의 20학점을 4일 동안 다 들어야만 했는데 어떤 날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도 있을 정도로 타이트한 시간표였다. 3학년 2학기 성적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수고쯤은 필수 불가결 이었고 뿌린데로 거두는 거리고 자책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이다. 그 희망은 바로 개근이었다.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난 초중고 대학을 거의 개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근은 내가 가진 능력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었다.시험을 필사적으로 치르게 만드는 상대평가는 동급생들이 적으로 까지 보이게 하는 아주 몹쓸 제도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상대평가는 대학생활을 상당히 전투적으로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4학년 일학기라고 해서 남들처럼 취업을 걱정하며 도서관에서 토익을 공부하거나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눈곱만큼도 생기질 않았다.

도서관에서 여느 학기처럼 여행서적을 뒤적거리거나 수업이 없는 3일은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1년에 4번 분기별로 모집을 했는데 2분기에 서류를 집어 넣을 생각이었고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다 마감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준비 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 우선 언어적으로도 히라가나밖에 모르는 상태였고 비자 에세이 작성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언어는 큰 걸림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작성할 때처럼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서 내가 생각하는 일본에 대해 마인드맵을 작성해 보았지만 평범한 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서 당시 읽고 있었던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류에 대해서 영어로 작성 하기로 했다.

대사관에서 일할 정도의 직원이라면 영어는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영어로 작성해서 합격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일본어로 부탁을 하면 내 생각이 잘 전달 되지 않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귀찮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는 게 정석인 법이다.

고등학교 때 정석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이었지만 정석대로 승부를 낸 내게 일본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발급 되었고 세 번째 워킹홀리데이는 그렇게 시작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에 여행을 한적이 있어서 조금 만만하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여행과 사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은 건축적산 계산 시험이었는데 숫자는 언제나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공부를 안 한 채 강의실에서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리 없었고 난 예제 문제 답안을 숫자 하나 안틀리게 적고 나왔다. 백지로 냈다가는 필수과목이 빵구 날 터였고 그러면 졸업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냥 교수님에 대한 성의 표시로 문제와 상관없는 답으로 빼곡히 채운 것뿐이다.

서둘러 답안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벗어났다.

시험문제가 어려운지 미간에 내천자 () 깊은 주름을 잡고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낭을 매고서 곧장 강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그날까지 마감인 독도에 관한 일본어 리포트를 작성했고 중간 버스 휴게소정류장에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비로소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다 끝마치고 일본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래간만에 부산에 사는 친구를 만나 회한접시에 소주 한잔을 들이켰고 잠시 바다 구경을 했다. 그리고 해운대 가까운 곳의 찜질 방에 자리를 잡고서 축구를 보며 잠을 청했지만 한참 독일 월드컵 중이었고 찜질 방의 열기와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일본 여행의 설렘에 이래저래 좀처럼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배를 타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서둘러서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의 아침은 엄청난 습기를 머금은 더위로 찜질 방의 사우나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비틀 카운터에 가서 이름과 여권을 제출했더니 창구 직원이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손님 내일 예약하셨는데요?"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조금 당황해 하며 예약하던 날을 돌이켜 생각했다. 한참 기말고사 시험기간 이었고 도서관 로비에서 전화로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이내 유난히 짧은 치마의 여대생들이 기억났다.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웃으면서 가장 빠른 배로 예약을 변경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이제 방학이 시작된 대학생들이 여행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성수기도 아니었고 바로 출발하는 배로 변경할 수 있었다.

나의 무계획성 여행이 여실히 탄로나는 지점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아직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다.

아니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그리고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침 튀는 데로 가볼 요량이었다. 어떻게든 일은 풀리게 마련이라는 게으른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머니에 200만원이라는 쾌나 큰돈이 있었기 때문에 여느 여행보다 훨씬 게으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돈의 출처는 다름아닌 쿨하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간곡하지도 못하고 성의 있는 부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똥을 한번치우는 대가로 흔쾌히 받아들여 송아지 한마리 값을 내주신 거다.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웰컴투동막골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고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보면서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참 좁은 세상이다. 일본까지도 배로 2시간 반이면 도착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부산사람들은 서울 가는 것보다 일본에 가는 게 더 짧은 게 되지 않은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반이 걸렸는데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2시간 반뿐이 안 걸린다니 일본이 한국의 지방처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입국심사대에서 역시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섰지만 다행스럽게 무사 통과했다.

입국심사대를 나오니 찌는 듯한 일본의 여름에 혀를 내밀며 담배를 하나 피우기 시작 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담배 하나가 끝이 날 즈음 우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정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거기서 생각하면 될 것이었다.

텐진 버스 센터에 도착하니 규슈지방의 지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그곳에 서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했다. 무라카미류의 고향인 사세보로 갈까 하다가 책 내용을 생각해 내고 이내 접었다.

그의 책에서 사세보는 엄청난 시골로 묘사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가사키를 생각해냈다. 무라카미류의 책에도 자주 등장한 도시고 언젠가 나가사키 여행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영어로 불라불라 티켓을 한 장 달라고 했을 뿐인데 한국사람이냐고 묻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전화를 걸더니 한국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약간의 상황설명이랄 것도 없이 영어로 했던 말을 똑같이 한국말로 나카사키행 표를 한 장 끊었다. 일본 사람들은 과하게 친절했다.

콜라를 뽑아 마시면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본콜라는 최악의 맛이었다. 먹어본 콜라 중 제일로 맛없는 콜라였다.

더운 인도에서 마셨던 인도 펩시를 생각해 냈다.

콜라 병에 빨대를 꽃아 마시던 마셔본 콜라 중 제일 시원하고 맛있었던 콜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나라마다 콜라 맛이 틀린 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에 올라서 한가한 버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나의 일본여행은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물론 아는 사람도 가이드북도 정보도 아무것도 없이 가는 나가사키행 버스에 몸을 싣고서 회색 빛 도시 후쿠오카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마자 잠이 들었다. 각오를 다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잠에 골아 떨어지는 건 단순한 성격인 내게 너무 쉬운 일이다.

누구나 낯선 곳에 오게 되면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전날에 월드컵 열기 덕분에 제대로 잠을 못 잤고 배 안에서도 영화를 보며 오느라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피로가 쌓였나 보다.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나가사키 시내에 들어서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도시는 엄청난 습도를 품어내고 있었다.

버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바깥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쾌지수가 읽어질 정도의 엄청난 습도였다.

나가사키 역에 도착해 배낭을 짊어진 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현란한 문어 다리처럼 펼쳐진 육교를 바라보고 그 밑을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이

유유히 지나가는 노면전차를 바라봤다.

우선 단기 여행자가 아님에 분명 방이 필요할 것이고 일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여행자 센터에 들러 지도를 한 장 얻고서 나의 상황을 간단히 영어로 설명했고 일본어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몇 마디 못 알아 들었지만 필요한 정보는 한가지도 없는 것 같았다. 관광객을 위한 여행자 센터였을 뿐이다. 나 같은 워홀메이커에게 유용한 정보는 한가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워홀메이커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 듯 했다.

지나가는 몰몬교 선교사들이 보여서 무거운 배낭을 들쳐 업고 구세주라도 만난 양 그들에게 뛰어가 영어로 물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상황설명을 간략하게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일본에 와서 미국인 몰몬교 선교사에게 정보를 묻고 있는 내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유창한 일본어로 여행자 센터에 들러 부동산의 위치를 물었다.

역 근처의 부동산에서 그들은 나의 설명을 부동산 사장에게 농담까지 곁들이며 설명을 해줬다. 부동산에서는 나에게 직업을 묻고 직업이 없다고 하자 보증인을 물어본다. 오늘 도착한 내게 보증인이 있을 리 없었고 난 그때까지도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에서 방을 얻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동산 사장은 친절하게도 시청에 전화를 걸어 한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이곳 저곳 전화를 해서 알아봐 주기까지 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방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나가사키 노면 전차처럼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몰몬교 선교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부동산 사장은 근처 유스호스텔로 나를 인도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인상 좋은 호스텔 주인은 내게 침대를 기꺼이 허락했다.

하루에 3000엔씩 하는 호스텔비를 오랫동안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일은 그렇게 돈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채 넘기지 않았다.

호스텔 근처 공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한가치 빼어 물었다. 공원에는 축구와 야구를 하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본에도 월드컵 열기로 한창이었다. 옆에 축구공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 커플이 있길래 인사를 했다. 축구공을 들고 있던 일본 청년은 영어로 내게 이것 저것 물어왔다.

그의 영어는 완전한 일본식 영어 발음이었지만 대화는 꽤 능통하게 이루어 지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이었고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그에게 축구를 권했고 한 시간 정도 축구를 했다.

축구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종교라는 어느 다큐멘터리 멘트가 생각났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첫날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낯선 곳에서 도착한 첫날 10분만에 밥을 먹어 치우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호스텔에 있는 유럽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고 마침 특별한 계획이 없어서 함께 가까운 곳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난 그렇게 가까운 이자까야에 그들과 함께 동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줄로 알았단다.

호스텔의 바로 옆에 있던 아운정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펼쳐 들었는데 사진 하나 없이 한자가 빼곡한 메뉴에 난 심각하게 당황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그들은 그제서야 내게 국적을 물었다.

서로가 당황했다. 당황한 순간 오후에 함께 축구를 했던 대쯔시라는 친구가 들어왔고 그가 설명해 주는 메뉴를 듣고 있자니 더욱더 어려워졌다. 일행 중 일본 음식에 대한 지식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맥주에 가장 만만한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곳에서 함께 낯선 메뉴에서 친숙한 샐러드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취기가 조금 올라올 즈음 호스텔로 돌아왔다.

공공원 공중전화에서 집에다 전화를 하고 낮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분위기의 공원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일본 생활의 막막함을 실감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가는 코비 쾌속선 내가 일본에 갈때 애용하는 배다.
일본이 멀고도 가까운 나라임을 정말 실감나게 해준 쾌속정이다.
배멀미가 걱정이라고? 천만의 말씀 배멀미를 느끼기도 전에 목적지 도착이다

후쿠오카 하카타 국제 여객 터미널 모습이다.
이사진을 보기만 해도 습도가 피부에 느껴지는것 같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텐진 버스터미널로 이동.

터미널 모습 한국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거슬리게 줄을 잘선다는것 빼고 아차 또 조용한거하고 ...

나가사키 시내 풍경 도로한가운데에 전차가 다니는 길이다. 나는 이 전차가 되게 좋았는데 운전하는 친구들은 운전할때 음청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100엔의 낭만이 있는 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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