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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짧은 생각

미래의 나의 아들에게 ...

흠흠.....언제고 이런날이 올줄 알았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일을 마치고 집앞 입구에서 신발끈을 풀때 달려와 먼지묻은 작업복 품에 안기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구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에 망설이는 너의 모습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지금 생각해보니 망설이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가끔 호주인야?한국인이야?라는 질문으로 널 곤란하게 할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설령 호주인이라고 해도 난 별로 실망은 하지 않으련다. 니가 한국말로 귀찮게 내 귀에 쫑알 댄다면 ...

사실 이글은 니 엄마의 힘든 임신 기간중에 뒷바라지를 하면서 쓰는 글이 아니란다. 
아들 네가 생긴지 20주가 채 되지 않아서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실로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다. 
여행을 계획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단다. 
태어날 네가 소중한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니가 엄마 뱃속에 잉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허나 니 아빠가 될 나에겐 나의 20 대의 소중한 꿈이었다. 
자유롭게 이 세상을 방랑하며 새로운 도시에서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기억을 남기는 행위가.여행은 거의 막바지란다. 이제 3주정도 더 하면 네 엄마를 볼수가 있다. 그럼 남산만한 뱃속에 니가 있겠지!니 엄마는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었다고 매일 걱정을 한단다. 니가 태어났을 때 부디 그 몸무게가 함께 줄어들기를 바랄뿐이다.

알다시피 니 아빠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호주인이다. 
아빠는 한국에서 30년을 살았고 엄마는 호주에서 그만큼 살아왔다. 
아직 너에게 '문화차이'를 설명하는것은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니가 넘어야할 벽이기에 미리 설명해 주는게 좋을것 같다. 
니 엄마는 매일 아침 빵을 먹는단다. 점심으로는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요거트를 먹기도 한다. 
저녁으로는 대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거나 피자를 먹는다. 
생각만해도 김치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보통 호주인의 식단이다. 아마도 너도 그렇게 먹겠지. 한국 사람들은 그에 비해 훨씬 간단하다. 삼시세끼 밥을 먹는단다. 
호주인들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고 지루한 식단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맛에는 훨씬 깊이가 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5000년의 역사와 300년의 역사의 차이쯤으로 말해두고 싶구나. 
니가 성인이 되었을때 먹는 음식과 3개월째 먹는 음식에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너에겐 다행이다. 아들의 입맛이 엄마를 닮아 짧지 않다면 그 깊은 맛을 꼭 보여주고 싶구나.음식은 다양하게 즐기면 좋은 것이니 더 이상 강조는 하지 않으마 다만 니 아빠는 빵 사이에 김치를 끼워 넣어 먹는것도 곧잘 한다는 것 정도는 알려주고 싶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달팽이 요리와 개구리 뒷다리 요리도 아주 맛있게 먹었단다. 이 말을 엄마에게 하니 혀를 쑥 빼 물고선 아빠랑 다시 뽀뽀도 안한다는 구나. 

네가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엄마는 한국의 너의 고모와 사촌 누나들과 함께 살았단다. 
사촌 누나들이 호주에서 1년간 공부를 했기 때문이지.넌 처음부터 복을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너희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국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든 내가 보기엔 최소한 엄마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들을 일은 없을 듯하다. 
사실 니 아빠도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진 않았다. 너희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하지 않으셨단다.
할아버지는 공부하라는 소리 보다는 소똥 치우란 말씀을 더 자주 하셨다. 

너에게 있어서 모국어는 어떤 언어가 될지 그것도 참 궁금한 일이다. 
사실 너에게 난 아빠지만 니가 어떻게 부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듣는 말이 대디든 아빠든 상관하지는 않으마.
아빠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언어를 참 재미있게 공부를 했다. 영어를 배우면서 많은 유럽 친구들 호주 친구들을 사귀었고 일본어를 배워 일자리를 갖기도 했다. 게다가 니가 뱃속에 있는 동안 약간의 스페인어도 익혀서 남미 여행을 재미있게 하기도 했다. 
난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너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병아리 눈물 만큼도 없다
내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서울대 가라고 너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절대 들을 일 없을테니 안심하려무나! 아빠의 고향에서는 이런 일이 사실 비일비재 하단다. 
자기들은 절대 그렇게 공부를 해보지도 않았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서울대 가라며 잔소리를 하곤 한단다.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되면 너희 사촌 형 누나들의 고충을 들을수 있을게다. 
다만 한글은 꼭 배워주길 바란다.한글을 쓰고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전 세계에 1억명이 채 안된다. 그에 반해 영어는 거의 전세계 사람들이 쓰고 있지. 
하지만 아들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너의 뿌리가 절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 가끔 한국말을 못하는 교포 2세들을 보곤 한다. 참 안타깝기 그지 없단다. 양쪽 부모가 한국인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는 사실 아주 흔하단다. 아들이 한국에 가서 할아버지와 전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빠의 입장에서 굉장히 슬픈일이 될것 같다. 좋은 기회잖니 아빠가 한국인이니까! 공짜로 가르쳐주겠다는 뜻이다. 쉬는날에 한글을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신발 정리 따위는 절대 시키지 않으마 약속한다.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민감한 군대 이야기를 해보자..
난 니가 아들이라는 것을 7개월째에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자꾸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8개월째에 하자고 했지만 여행지에서 니 선물을 사는것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먼곳에서 내가 산 바비 인형을 들고 있는 아들 녀석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앞을 가려 나도 궁금해 지지 않을수 없었다. 사내녀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난 참 기뻤다. 물론 네가 여자아이였다해도 물론 기뻐했을테니 그 점은 걱정 말아라. 
그 반면에 바로 군대가 떠오르더구나. 물론 너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호주인이 될테지. 
하지만 너희 아빠는 아직도 한국인이란다. 니 엄마는 아직도 그게 불만인 모양이다. 호주인과 결혼했고 호주에서 살면서 왜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지 말이다. 그럴때면 난 '한국인이니까'라고 대답한단다. 한국은 아주 특수한 환경에 처한 나라다. 같은 민족이 싸우는 통에 서로 삐쳐서 아직까지 다투는 중이지 그래서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간단다. 니가 군대를 안가려고 어금니를 다섯개쯤 뽑는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잘 생각해봐라. 2년동안 옷도 주고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운동도 시켜준단다. 남들은 그 시절이 참 힘들고 잊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 친구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다. 내 인생에 그만큼 신나던 순간이 없었다. 젊은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 나를 갈고 닦아준건 오히려 군대가 아니었나 하는 고마운 생각마저 가지고 있단다. 너에게 한국 군대를 강요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느 군대든 너에겐 선택권이 별로 없을 것 같구나. 니가 운이 좋다면 니 엄마가 그때까지 군복을 입고 있을테지! 군대에 관해서라면 니 엄마도 대 환영이란다. 호주군이든 한국군이든 말이지.그러니 한국말 열심히 배우는게 좋은 일일거다. 선임들에게 귀여움 받으려면 말이다. 한국에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를 아주 질색 하거든...

여행중에 이런 글을 적고 있는 니 아빠가 이해가 잘 가지 않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사실 이곳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마자 여행할 기운이 쏙하고 빠져버렸단다. 
그동안 유럽 여행을 자동차로 하면서 그 추운 겨울에 캠핑을 하면서 '집 나와서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니가 볼때 개의 팔자가 아주 좋아 보일수도 있겠지만 호주개보다 한국개의 인생은 훨씬 거칠고 척박하단다.)하고 혼자말도 무수히 되뇌었단다. 엄마는 임신중이고 집의 정원에 잡초는 허리만큼 자라있고 잔디깍기는 고장이 났다더구나. 내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여행이란 아주 고집스러운 구석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줄을 모르거든 이건 언젠가 너도 꼭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럼 이 아빠의 심정을 십분 이해 할거다. 그때도 엄마가 너에게 신용카드를 줄지는 의문이지만 지금 아빠는 운이 좋게도 엄마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단다. 거듭 말하지만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는 아빠의 20대의 꿈이었단다. 언젠가 그곳에서 일기를 적고 커피를 마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언제나 꿈꿔 왔단다. 굳이 니가 엄마 뱃속에 있는 시기를 선택한 이유는 앞으로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나 싶어서였다. 넌 밤새도록 배가 고프다고 옆에 고양이가 니 얼굴을 핧아댄다고 울어대겠지 그럼 난 엄마가 깨기전에 너를 달래줘야하고 우유도 먹여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 입혀야 할 테니말이다.사실 니 엄마는 니가 태어나면 뒷바라지는 내가 할거라고 이미 못을 박았단다. 니가 커서 아빠의 직업을 '주부' 라고 할수도 있겠구나!

이 세상은 재미있는 일 투성이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운동을 잘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란다. 넌 참 다행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 아빠여서 공부를 잘 못해도 아빠 핑계를 댈수 있겠구나. 어쨌든 미리 재미있는 세상에 나오는것을 축하하마!....터키 이스탄불에서 미래의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