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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짧은 생각

흑싸리 껍데기 같은 나의 인생에서 마치 국자 쌍피 같았던 빨간책방

나는 해외에서 10년째 건축업을 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혼자 일을 하고 손님과 만나서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나면 오롯이 나만의 작업이라서 이어폰을 내내 꼽고 일을 한다. 

길게는 하루 8시간 10시간을 빨간책방만을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이 어떤 에피에서 어떤 농담을 했는지 오프닝이나 내가산책 조금만 들으면 모든 에피가 줄줄이 딸려 나올 정도로 들었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개그맨 이휘재가 가수였던 적이 있다. 

blessing you라는 곡이었는데 고등학교때 친구가 자취방에서 주구장창 듣던 노래다. 

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노래였지만 덕분에 가사를 다 외우고 잘 부를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노래를 다시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에서 듣게 되었다. 

슬퍼 말아요 힘들겠지만~~~노래가 클라이막스로 가는 순간  별안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때 그 시절 1998년 자취방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마치 실제로 자취방에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열고 나가면 자취방 주인 할머니 오산댁이 마당에서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있는 풍경이 있을것만 같은 ...그때 그시절.. 그렇게 나의 그때 그시절의 냄새는 나의  룸메이트의 최애곡이었던 이휘재의 블레싱유에 봉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다음해인 99년도에 나는 입대를 했다. 밀레니엄 버그네 어쩌네 호들갑들을 떨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시계는 버그없이 잘 돌아가서 2001년도 중순에 제대를 했다. 

제대하기 한달전 부터 사회 나가면 노래를 잘 불러야 여친이 생긴다더라 그런 카더라로 인해 최신곡을 배워가는게 유행이었다. 그때 배운 노래가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이다. 아마 내가 가사를 외우려고 노력해 본 마지막 노래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bts 나 블랙핑크는  듣기만 할 뿐 감히 부르려고는 엄두도 못내는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문득 문득 난다. 허세 가득하고 제대만 하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때 

정말이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경계 근무 초소에서 담배 하나 꼬나 물고 옆에 있는 후임에게 벌써 일년 부를테니 박자에 맞춰 비트박스 하라고 시키고 있는 내 뒤통수를 한방 갈기면서 한마디 하고  싶다. 너 대학 생활 내내 여친  못 만든다고  니 후임한테 비트박스 시키는 지금이 최고 전성기라고 그냥 말뚝 박으라고 말이다. 글쓰는 지금 벌써 일년을 들으면서 눈감고 빌어 봤는데 실패했다. 

그래 결심했어! 이휘재의 인생극장처럼 말뚝박지 않은 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배경음악 이휘재의 blessing you

 

그렇게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제대를 했다. 

전성기가 짧은 만큼 바닥에 내려쳐지는 것도 빨랐다. 거의 패대기 처지는 수준으로 말이다.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그렇게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도 해봤으니 흑싸리 껍데기는 면한 셈이다 싶었다. 뭐 흑싸리 껍데기를 면하는 동안에 생긴  피박에 광박은 3년 거치 무이자에 5년 상환이었으니 잠시 숨을 돌렸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거기에다가 뭐라도 흔들기 까지 했음 정말 인생 일찌감치 손절 할 뻔했다. 

 

해외생활은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혈혈 단신이라 등등으로 

해외생활이 힘든점은 실제로 여러가지가 있다. 누구에게나 제각각의 이유로 

누구는 김치가 너무 그립고 누구는 엄마가 보고프고 누구는 그냥 한국의 모든것을 그리워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부모 형제도 그립고 한국 길거리 음식도 그립고 열혈강호도 보고싶고 한국의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서비스도 가끔은 그립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한 3회때쯤부터 들었나?

아직도 그들의 초창기때의 어색함은 항상 신선하다. 

서로 친하지 않음이 느껴지던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

그리고 김중혁 작가의 거친 숨소리 

그때 그들은 알았을까? 7년을 웃고 또 웃고 웃길거라는 사실을...

난 처음부터 좋았다. 그들의 실없는 웃음들이 그들의 어색함이 그들이 나누는 지적 만담들이 

정말이지 홀딱 반했다. 

그들의 허술함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들의 허술한 농담이란 못 배운(나같은 사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분만에 책 한권을 다 읽은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이동진 작가의 줄거리 소개와 김중혁 소설가의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가다운 상상력으로(혹은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  다재 다능한 언변의 마술사 이다혜 작가 초반기의 니나 피디 마지막까지 함께 한 최피디 

그리고 빨간책방의 아름다운 오프닝 아 오프닝의 피아노 소리를 지금 들으면 눈물이 날것같다.

그리고 요조님의 “이동진 짱”

그리고 능청스러운 임자는 뉘시우 나의 최애캐 시인 허은실 작가

그리고 수많은 농담들  웃겼든 안웃겼든 즉석에서 빵터졌든 아니면 한참 뒤에 빵 터졌든 셀수 없이 많았던 농담들 ...

개인적으로는 이동진 작가의 개그 최고 전성기는 그리스인 조르바때 이대근 성대모사 였지만...

정말이지 그날은 농담 하나하나가 일타 쌍피였다. 

 

이런 빨간책방이 7년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의 해외생활 10년중에 7년을 꽉 채워 주웠던 빨간책방이다. 

1회에서 3회를 들으면 호주 퍼스의 베이스 워터라는 동네가 생각이 난다. 

내가 빨책을 처음 듣던 날이다. 욕실 방수 작업을 하러 갔었는데 그집의 타일색, 비오던 날 처마 밑에서 담배 피우던 주인 아저씨 첫 방송이라서 특별한게 아니다. 빨책 4회는 호주 퍼스의 몰리  5회는 호주 준달럽  등등 그리고 최근의 300회 특집까지  빨책 매 회마다 나의 작업의 냄새가 묻어 있다. 매너 좋은 손님들과의 아름다운 인사 그리고  품위있는 대화들 심지어는 깍쟁이 손님들과 막무가내의 못된 손님들의 무례함 마저도 빨책에 봉인되어 있다. 

빨간책방은 해외에서 사는 이방인으로서 나 자신이 흑싸리 껍데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국에서 버틸수 있게 해준 큰 힘이었다. 

그냥 돈이 없어도  몸이 조금 아파도 피박에 광박은 면할 수 있을것 같은 그런 믿을 만한 보이지 않는 버팀목, 배운 형 누나들이 내게 힘내라고 토닥 거려주는 그런 존재 였다. 

게다가 다음엔 더 잘한다잖아 말해 무얼해 !

해외 생활에서 이런 방송은 그냥 흔들고 피박에 광박이지 아차 이번엔 내가 나는 거야!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나에게는 항상 좋았다 

그들의 겸손함은 얼마나 멋진가? 배운사람들의 겸손함이란

이건 일제 강점기 윤동주 시인 이후에 조선 땅에서 사라진 미덕이 아니었던가?

왠지 이동진 작가가 부끄러워하면 19금 같긴 한데....어쨌든 약속도 잘 지키고 매회 다음에 더 잘한다는  공약을 하고 오롯이 7년 세월 그 공약을 지켜내온 빨간책방 

너무 고맙다. 

앞으로도 빨간책방을 간간히 잘 들을거다.

뭐 지금까지 못 읽은 책은 앞으로도 못 읽겠지. 내 책임이 아니다. 배운 누나 형들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서 괜히 책보고 실망할까봐 안 읽는 거다.  에헴 

거울 보고 맞고를 쳐도 판돈은 비는 법이다. 

 

어디서든 다시 볼거다. 그들이 나오는 티비에서도 라디오 에서도 팟캐스트 에서도 블로그에서도 트위터에서도 빨책의 모든 멤버가 다 모이는건 쉽지 않겠지만 one for all all for one 아니겠는가?어라 이거 반대 상황에서 써야 하는 건가? 어쨌든 하나면 하나지 둘이 겠느냐? 랄라랄라 랄라랄라 라랄라.....난 사실 빨간책방이 이렇게 마침표를 찍어줘서 조금은 고맙다. 

이건 분명 분홍책방으로 다시 돌아오려는 음모같은 거라고 ...

빨간색이 한 10년쯤 지나면 분홍색이 될테니까!

아디오스 빨간책방

사요나라 빨간책방 

안녕 빨간책방

아듀 빨간책방

흑싸리 껍데기 같은 나의 해외생활에서 국자 쌍피처럼 나를 위로해 주었던 빨간책방  꾸뻑….

그리고 언젠가 어디서든 우연하게 see you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