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워킹홀리데이2010. 4. 5. 19:44

워킹홀리데이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아닌 현지에서 돈을 합법적으로 벌수 있는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배우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한국사람 밑으로 들어가 돈을 버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영어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요?"
라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할것이 있다.
'과연 외국에서 외국인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까?'
뭐 영어가 안된다고 핑계대는 사람보다는 잘할거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자신감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지역커뮤니티를 이용하라
현지에 도착하면 수퍼마켓이나 쇼핑몰에서 흔히 볼수 있다. 중고물품을 사고 팔기도 하지만 가끔 구인광고를 하기도 하고 간큰친구들은 직접 광고를 적기도 한다.
"여기 힘센놈 하나 기다리니 연락달라"이런식이다.
가끔 이런 글을 보면 그냥 전화해 보고 싶어진다 ...진짜 힘이 센지 안센지......시험해 보고 싶어서


신문과 인터넷을 120%활용하라....
한국에는 공짜 신문이 널려 있지만 호주나 캐나다는 대부분 돈을 주고 사서 본다.
나에게도 신문은 절대적으로 재미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신문에 내가 하는일을 광고를 하기도 하고 가끔 일을 광고에서 찾기도 한다.
대부분의 광고주는 그렇게 일을 찾는다.
신문에서 보이는 구인구직란을 쉽게 넘기지 마라....급해서 광고낸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고 금방 채용할 가능성도 높다는걸 명심해라.
인터넷은 어디에서도 뗄레야 뗄수가 없다 구인이면 구인 구직이면 구직....모두에게 한번 해보지뭐 돈도 안드는데 ...정도의 도구다.
하지만 의외로 경쟁이 치열해서 연락이 안오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시도는 해볼것 ....


잡에이전시를 이용하라.
어디에나 널려있는게 잡에이전시다. 먼저 잘 다듬어진 이력서를 제출하라. 운이 좋으면 당장에라도 채용이 된다.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과 이야기 할때 면접보는 기분으로 임할것
그들이 먼저 구직자를 체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수료를 제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일을 잡을수 있는 방법중 하나다.
가끔 선 수수료를 제하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일을 확실하게 주는지 먼저 확인해봐야 한다.


찌라시를 직접 돌려라.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다.
특히 식당이나 조그만 일자리에서는 이만한 효과가 없다.
열장 돌리면 5장에서 연락이 올정도다.
여기에서 명심할점은 반드시 메니저를 만날것!
메니저가 아닌 보통 직원에게 이력서를 전해주고 오면 거의 연락이 안온다.
아마도 메니저에게 전해지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자신들의 일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어떤일이든 직접 두들기지 않고서 열리는 일은 없다.
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호주나 캐나다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면 바로 일어나 이력서를 출력하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아차 잊지말것 영어못하는게 꿀릴게 아니라 한국말도 할줄 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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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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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워킹홀리데이2010. 4. 1. 23:49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만 서른 전의 워홀러들에게 올해 만 서른인 형이 개인적으로 영어에 대해 진지하게 말할게 잘 들어 !

힘들지?

내발로 스스로 고집피우며 집 떠나 이역만리에서 생전 해보지도 않은 농장일 해보려니 엄마 생각 절로 나지?

나도 힘들었다. 진짜 힘들더라 ~

줄어드는 한국어 늘지 않는 영어 끼어드는 일본어

집에다 전화하면 엄마는 이제 영어 잘하니?”하고 물으면 스스로는 멋쩍어하면서도 머 그냥 먹고 살 정도라고 얼버무리고 그러지?!

친구 사귀는 것도 중요하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이라도 해야 하지?!

근데 하나만 절대로 잊지 말자 난 지금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야 ~

말 그대로 24시간 귀만 열어놓으면 듣기공부를 하는 중이며 책에 써 있는 거 읽기만 하면 회화 공부하는 중이라고

한국에서 영어공부 해봤잖아 10년 했어도 안됐잖아!

현지에서 못하고 한국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잘할 것 같니?

아니다! 절대 아니니까 초반 3개월 바짝 기합 넣어서 공부하고 나머지 일자리 찾을 때도 영어로 찾고 친구도 영어로 사귀고 그러면 1년 뒤에 동생님은 바로 워홀로 성공한 케이스가 되는 거야!

알겠지? 자아….파이팅.


나는 지난 10년간 워홀에 미쳐있었다.

군대를 제대하던 2001년에 한 호주로의 배낭여행에서 만난 유럽아해들의 자유로움의 냄새에 취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돈 없고 빽 없고 가진 건 무식한 용기라고 포장된 무대포 정신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득권이 허용되며 심지어 밥그릇 지키기가 당연시 되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휴학을 해서 워홀을 떠났고 방학을 이용해서 워홀을 떠나기 시작해 나의 20대는 4개국(호주,일본,캐나다,뉴질랜드) 워홀로 점철된 청춘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 밥 그릇을 제 발로 차고 나와 호주에서 정착해 살면서 많은 워홀러들을 보게 된다.

꼭 그때의 나의 모습이다. 마냥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일어서고 안타까우면서도 자랑스럽기도 한 후배님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맨 먼저 해주는 충고는 다름아닌 영어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한국 워홀러들은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호주 현실사회에서 멀어져 어설픈 한국친구들 사이에서 헤맨다.

조금 영어를 잘하는 한국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정작 본인은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것 같다. 그 영어를 조금 잘하는 친구도 어설프기 그지 없지만 본인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착각에 그만 의지를 하고 만다. 현지인이 보기엔 둘 다 어설프며 창피당해보지 않은 영어는 영어도 아니고 얼굴 벌개지도록 창피당하면서 배우는 영어가 영어공부에 왕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일본에서 워홀을 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쳤었다.

그때 학생들에게 내가 제일 처음으로 해준 말을 다름아닌

일본사람이 영어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해요!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일본말을 못하는 것처럼 그런데 어설프게라도 하면 귀엽고 그렇잖아요?! 창피한 게 아니라 2개 국어를 하는 첫 단계니까 대단한 거라 생각하고 말을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남들보다 회화가 조금 빨리 늘었다면 바로 이런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주는 자유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무엇을 먼저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현지에서 인터넷을 뒤늦게 뒤지고 시내를 두리번거리는 친구들에게 주저 없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준비 좀 하고 오지라는 이 말은 쓰레기 통에나 처박으라고 하고 일단 왔으니 무엇이던지 시작은 해보라고!

돈이 없으니 돈 벌기 쉬운(?) 농장엘 들어가시겠다고?

머 한국인 컨츄렉터들도 많다는데……

제발 영어공부 좀 하고 가기 바란다. 학원 다니란 소리가 절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학원이란 데를 한번도 다녀보질 않았으니 그리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의지의 문제이니까!

참고로 난 스타벅스나 커피숍에서 혼자 독학하는 것을 선호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사전 찾는 것보다 옆에 있는 사람한테 직접 묻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며 덤으로 친구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 벌어서 영어학원 다니려고 농장에서 열심히 돈 벌어 괜히 학원에서 한국친구들만 사귀어 한국말 연습만 하는 친구들 많이 봤다.

학원을 다니든 독학을 하든 초반 3개월 영어공부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 영어를 활용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면 한국 들어갈 때쯤에는 스튜어디스에게 영어로 작업 맨트 정도는 날릴 수 있을 있을 것이다

초반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본인이 영어공부를 해본 결과 일본어를 공부해본 결과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집중을 하기 가장 알맞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영어실력도 대부분 3개월 안에 느는 속도가 가장 빨랐으며 일년 공부했을 때의 대부분의 회화능력이 그 기간에 늘었었기 때문이다.

일본워킹홀리데이 히라가나도 제대로 못해서 맥도날드 흡연실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삼개월 동안 공부만(?)해야했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 리브와 아담 등등등....영어가 되면 "외국인 친구사귀는게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것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사귄 영국인 친구 아담과 친구집에 초대받아서 저녁을 먹고 한컷!
첫 워홀을 떠나서 못알아 먹으면서 예스를 연발하던 그때 내친구 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번만 못알아먹고 예스하면 때려줄거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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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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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u당

    그러고 보니 청카바님 약간 타이거 우즈 삘~...
    와잎께서 좋아하시겠어요

    2010.06.03 18:08 [ ADDR : EDIT/ DEL : REPLY ]
  2. 물푸레나모

    아 지금 호주서 워홀로 공부중인데 피가되고 살이되는 말들이네요. ㅠㅠ

    2010.06.29 21:43 [ ADDR : EDIT/ DEL : REPLY ]
  3. 콜라한잔할래

    한번씩 여기들어와서 글보는데. 감만에들어와 읽네요. 지금 호주 퍼스에서 워킹하고있습니다. 대학 뒤늦게 졸업하고 예전에 못간 워킹 왔어요. 다포기하고요. 영어 공부좀 햇지만 현지인집에 사는데..아는것 마저 잘 안들리네요. 발음도 억양도 귀에 익숙치않고, 공부해야하는거 절실히 느낍니다. 오늘도 책 두장보고, 아저씨 아주머니가족과 크리스마스 바베큐 파티하고, 이렇게 글봅니다. 제게 영어가 절실히 필요하기때문인데. 전 운이좋아 현지인들과 잘만나는데. 늘 주눅드네요.. 아저씨랑은 잘대화가 되지만 다른사람말은 잘 안들리네요..결국 아저씨가 제수준에 맞춰 애기한다는것, 그리고 모르는 단어와 익숙치 않은발음.. 이 글 읽고생각나는건.. 한달전에 브리즈번에 아저씨랑 보트고치러갔는데. 거기 있는 딘이라고 사우스아프리카에서 온 아저씨가 !! 커피마실래하면? 항상 노, 예~~ 그렇게 대답햇는데... 그 딘이 나중에 하는말이 먹을려면 예스 커피, 안먹을려면 노 커피 라고 확실히 대답해라네요. 그이후로 대답 잘하고있습니다.ㅋㅋㅋ 2학년 끝나고 뉴질랜드 비자 받고 안간게 제일 후회 스럽네요. 두려운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가면 그 환경에 적을 할수있으니 자신감 갖고 도전하세요... 영어공부는 필수입니다...

    2010.12.26 03:24 [ ADDR : EDIT/ DEL : REPLY ]

  

4학년 일학기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게 늦어져 결석이 많아 지면서 학점 관리가 도저히 안된 것이다.

결과는 2.48의 평점으로 이제까지 대학생활의 성적 중 최악이었다. 공부 못하기로 소문난 내 친구들 중에서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 이었다.

물론 1,2학년도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항상 중간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너무 심각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1학기 수강과목을 필사적으로 정정했다. 그 결과 화려한 교양과목으로 4학년 1학기 수업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때문에 전공과목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영어회화수업을 두 개를 집어넣고 기초 일본어를 집어넣었다.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교양과목이 전공과목에 비해 학점관리가 쉬웠기 때문이다. 
교양과목을 선택하면서 은근히 상대적으로 결석이 잦은 1학년들이 나를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학점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어학실력을 넓히려는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  거의 20학점을 4일 동안 다 들어야만 했는데 어떤 날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도 있을 정도로 타이트한 시간표였다. 3학년 2학기 성적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수고쯤은 필수 불가결 이었고 뿌린데로 거두는 거리고 자책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이다. 그 희망은 바로 개근이었다.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난 초중고 대학을 거의 개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근은 내가 가진 능력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었다.시험을 필사적으로 치르게 만드는 상대평가는 동급생들이 적으로 까지 보이게 하는 아주 몹쓸 제도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상대평가는 대학생활을 상당히 전투적으로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4학년 일학기라고 해서 남들처럼 취업을 걱정하며 도서관에서 토익을 공부하거나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눈곱만큼도 생기질 않았다.

도서관에서 여느 학기처럼 여행서적을 뒤적거리거나 수업이 없는 3일은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1년에 4번 분기별로 모집을 했는데 2분기에 서류를 집어 넣을 생각이었고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다 마감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준비 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 우선 언어적으로도 히라가나밖에 모르는 상태였고 비자 에세이 작성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언어는 큰 걸림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작성할 때처럼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서 내가 생각하는 일본에 대해 마인드맵을 작성해 보았지만 평범한 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서 당시 읽고 있었던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류에 대해서 영어로 작성 하기로 했다.

대사관에서 일할 정도의 직원이라면 영어는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영어로 작성해서 합격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일본어로 부탁을 하면 내 생각이 잘 전달 되지 않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귀찮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는 게 정석인 법이다.

고등학교 때 정석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이었지만 정석대로 승부를 낸 내게 일본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발급 되었고 세 번째 워킹홀리데이는 그렇게 시작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에 여행을 한적이 있어서 조금 만만하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여행과 사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은 건축적산 계산 시험이었는데 숫자는 언제나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공부를 안 한 채 강의실에서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리 없었고 난 예제 문제 답안을 숫자 하나 안틀리게 적고 나왔다. 백지로 냈다가는 필수과목이 빵구 날 터였고 그러면 졸업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냥 교수님에 대한 성의 표시로 문제와 상관없는 답으로 빼곡히 채운 것뿐이다.

서둘러 답안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벗어났다.

시험문제가 어려운지 미간에 내천자 () 깊은 주름을 잡고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낭을 매고서 곧장 강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그날까지 마감인 독도에 관한 일본어 리포트를 작성했고 중간 버스 휴게소정류장에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비로소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다 끝마치고 일본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래간만에 부산에 사는 친구를 만나 회한접시에 소주 한잔을 들이켰고 잠시 바다 구경을 했다. 그리고 해운대 가까운 곳의 찜질 방에 자리를 잡고서 축구를 보며 잠을 청했지만 한참 독일 월드컵 중이었고 찜질 방의 열기와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일본 여행의 설렘에 이래저래 좀처럼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배를 타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서둘러서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의 아침은 엄청난 습기를 머금은 더위로 찜질 방의 사우나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비틀 카운터에 가서 이름과 여권을 제출했더니 창구 직원이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손님 내일 예약하셨는데요?"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조금 당황해 하며 예약하던 날을 돌이켜 생각했다. 한참 기말고사 시험기간 이었고 도서관 로비에서 전화로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이내 유난히 짧은 치마의 여대생들이 기억났다.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웃으면서 가장 빠른 배로 예약을 변경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이제 방학이 시작된 대학생들이 여행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성수기도 아니었고 바로 출발하는 배로 변경할 수 있었다.

나의 무계획성 여행이 여실히 탄로나는 지점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아직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다.

아니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그리고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침 튀는 데로 가볼 요량이었다. 어떻게든 일은 풀리게 마련이라는 게으른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머니에 200만원이라는 쾌나 큰돈이 있었기 때문에 여느 여행보다 훨씬 게으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돈의 출처는 다름아닌 쿨하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간곡하지도 못하고 성의 있는 부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똥을 한번치우는 대가로 흔쾌히 받아들여 송아지 한마리 값을 내주신 거다.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웰컴투동막골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고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보면서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참 좁은 세상이다. 일본까지도 배로 2시간 반이면 도착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부산사람들은 서울 가는 것보다 일본에 가는 게 더 짧은 게 되지 않은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반이 걸렸는데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2시간 반뿐이 안 걸린다니 일본이 한국의 지방처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입국심사대에서 역시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섰지만 다행스럽게 무사 통과했다.

입국심사대를 나오니 찌는 듯한 일본의 여름에 혀를 내밀며 담배를 하나 피우기 시작 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담배 하나가 끝이 날 즈음 우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정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거기서 생각하면 될 것이었다.

텐진 버스 센터에 도착하니 규슈지방의 지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그곳에 서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했다. 무라카미류의 고향인 사세보로 갈까 하다가 책 내용을 생각해 내고 이내 접었다.

그의 책에서 사세보는 엄청난 시골로 묘사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가사키를 생각해냈다. 무라카미류의 책에도 자주 등장한 도시고 언젠가 나가사키 여행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영어로 불라불라 티켓을 한 장 달라고 했을 뿐인데 한국사람이냐고 묻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전화를 걸더니 한국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약간의 상황설명이랄 것도 없이 영어로 했던 말을 똑같이 한국말로 나카사키행 표를 한 장 끊었다. 일본 사람들은 과하게 친절했다.

콜라를 뽑아 마시면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본콜라는 최악의 맛이었다. 먹어본 콜라 중 제일로 맛없는 콜라였다.

더운 인도에서 마셨던 인도 펩시를 생각해 냈다.

콜라 병에 빨대를 꽃아 마시던 마셔본 콜라 중 제일 시원하고 맛있었던 콜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나라마다 콜라 맛이 틀린 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에 올라서 한가한 버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나의 일본여행은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물론 아는 사람도 가이드북도 정보도 아무것도 없이 가는 나가사키행 버스에 몸을 싣고서 회색 빛 도시 후쿠오카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마자 잠이 들었다. 각오를 다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잠에 골아 떨어지는 건 단순한 성격인 내게 너무 쉬운 일이다.

누구나 낯선 곳에 오게 되면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전날에 월드컵 열기 덕분에 제대로 잠을 못 잤고 배 안에서도 영화를 보며 오느라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피로가 쌓였나 보다.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나가사키 시내에 들어서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도시는 엄청난 습도를 품어내고 있었다.

버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바깥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쾌지수가 읽어질 정도의 엄청난 습도였다.

나가사키 역에 도착해 배낭을 짊어진 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현란한 문어 다리처럼 펼쳐진 육교를 바라보고 그 밑을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이

유유히 지나가는 노면전차를 바라봤다.

우선 단기 여행자가 아님에 분명 방이 필요할 것이고 일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여행자 센터에 들러 지도를 한 장 얻고서 나의 상황을 간단히 영어로 설명했고 일본어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몇 마디 못 알아 들었지만 필요한 정보는 한가지도 없는 것 같았다. 관광객을 위한 여행자 센터였을 뿐이다. 나 같은 워홀메이커에게 유용한 정보는 한가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워홀메이커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 듯 했다.

지나가는 몰몬교 선교사들이 보여서 무거운 배낭을 들쳐 업고 구세주라도 만난 양 그들에게 뛰어가 영어로 물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상황설명을 간략하게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일본에 와서 미국인 몰몬교 선교사에게 정보를 묻고 있는 내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유창한 일본어로 여행자 센터에 들러 부동산의 위치를 물었다.

역 근처의 부동산에서 그들은 나의 설명을 부동산 사장에게 농담까지 곁들이며 설명을 해줬다. 부동산에서는 나에게 직업을 묻고 직업이 없다고 하자 보증인을 물어본다. 오늘 도착한 내게 보증인이 있을 리 없었고 난 그때까지도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에서 방을 얻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동산 사장은 친절하게도 시청에 전화를 걸어 한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이곳 저곳 전화를 해서 알아봐 주기까지 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방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나가사키 노면 전차처럼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몰몬교 선교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부동산 사장은 근처 유스호스텔로 나를 인도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인상 좋은 호스텔 주인은 내게 침대를 기꺼이 허락했다.

하루에 3000엔씩 하는 호스텔비를 오랫동안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일은 그렇게 돈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채 넘기지 않았다.

호스텔 근처 공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한가치 빼어 물었다. 공원에는 축구와 야구를 하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본에도 월드컵 열기로 한창이었다. 옆에 축구공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 커플이 있길래 인사를 했다. 축구공을 들고 있던 일본 청년은 영어로 내게 이것 저것 물어왔다.

그의 영어는 완전한 일본식 영어 발음이었지만 대화는 꽤 능통하게 이루어 지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이었고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그에게 축구를 권했고 한 시간 정도 축구를 했다.

축구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종교라는 어느 다큐멘터리 멘트가 생각났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첫날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낯선 곳에서 도착한 첫날 10분만에 밥을 먹어 치우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호스텔에 있는 유럽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고 마침 특별한 계획이 없어서 함께 가까운 곳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난 그렇게 가까운 이자까야에 그들과 함께 동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줄로 알았단다.

호스텔의 바로 옆에 있던 아운정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펼쳐 들었는데 사진 하나 없이 한자가 빼곡한 메뉴에 난 심각하게 당황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그들은 그제서야 내게 국적을 물었다.

서로가 당황했다. 당황한 순간 오후에 함께 축구를 했던 대쯔시라는 친구가 들어왔고 그가 설명해 주는 메뉴를 듣고 있자니 더욱더 어려워졌다. 일행 중 일본 음식에 대한 지식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맥주에 가장 만만한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곳에서 함께 낯선 메뉴에서 친숙한 샐러드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취기가 조금 올라올 즈음 호스텔로 돌아왔다.

공공원 공중전화에서 집에다 전화를 하고 낮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분위기의 공원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일본 생활의 막막함을 실감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가는 코비 쾌속선 내가 일본에 갈때 애용하는 배다.
일본이 멀고도 가까운 나라임을 정말 실감나게 해준 쾌속정이다.
배멀미가 걱정이라고? 천만의 말씀 배멀미를 느끼기도 전에 목적지 도착이다

후쿠오카 하카타 국제 여객 터미널 모습이다.
이사진을 보기만 해도 습도가 피부에 느껴지는것 같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텐진 버스터미널로 이동.

터미널 모습 한국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거슬리게 줄을 잘선다는것 빼고 아차 또 조용한거하고 ...

나가사키 시내 풍경 도로한가운데에 전차가 다니는 길이다. 나는 이 전차가 되게 좋았는데 운전하는 친구들은 운전할때 음청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100엔의 낭만이 있는 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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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톰이

    청카바님은 학원이나 학교는 따로 들어가지 않고 독학으로 하셨나 보네요~
    :) 거의 동경쪽으로들 많이 추천해주시던데, 호스텔이나 알바가 지방쪽은 구하기 힘들거라고..
    고민이네요~

    2010.09.06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2. 마남

    얼마전에 제대하고 몇달 일하다가 워홀 준비하고 싶음 마음에
    이렇게 글올려봅니다.
    문의하고싶은게 많은데 답변가능하시면 댓글좀 달아주세요 ^^

    2010.09.06 19:35 [ ADDR : EDIT/ DEL : REPLY ]

준비했던 뉴질랜드 비자와 호주비자 사이에서 갈등했다

한국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난 또다시 싱글로 돌아왔다. 아마도 난 커플이 어울리지 않는 인간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씁쓸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우선 무작정 한번도 가보지 않은 뉴질랜드의 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물론 식구들은 내게 근심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내 여행을 격려해 주었지만 혼자 떠나는 인천공항행 버스에서 난 절실한 외로움을 느꼈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나는 무슨 자유를 위해서 이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냥이곳에서 자유대신이 주는 가족의 따뜻함과 친구들의 즐거움과 회사의 안정적인 월급통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것들과는 거리가 먼 단하나의 목적을 생각했다.

자유가 주는 선택의 방황을 선택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를 거치고 난 10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으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오클랜드에 착륙하면서 본 공항은 내 상상이상이었다. 너무나 작은 공항은 뉴질랜드에서 제일 큰 공항이었으며 그곳은 심지어 붐비지도 않았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서 비가 흩날리고 있었고 난 인포메이션 센터에가서 간단한 정보를 물었다.

우선 시내에 가기 위한 버스를 30분정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담배를 피우면서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내 모습에서 여행정보에 대한 나의 무지를 비웃었다.

배낭에서 점퍼를 하나 꺼내 입고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오클랜드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30분정도 버스에서 본 창밖의 모습은 시드니와 밴쿠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4백만의 인구의 뉴질랜드를 생각해냈다. 비록 이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역시 비교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도시 였다.

시내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그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 차가운 몸을 녹이면서 백패커스를 찾고 있었다.
생각보다 백패커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백패커스 거리라는 포트스트리트를 걸으면서 가장 먼저 만난 퀸스트리트백패커스에서 짐을 풀었다.

역시 제일 처음으로 한일은 택스 번호를 신청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는 워킹이 주목적인 내게 텍스 넘버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뉴질랜드의 모든 행정은 우체국에서 가능한 점이었다.

텍스번호도 신청이 가능했고 자동차 등록도 가능하고 핸드폰 요금 수납도가능한 점이었다.

다양한 우체국 기능에 감탄하면서 택스넘버 신청을 하고서 호스텔에 돌아와 또다른 여행자들과 여행 정보를 공유한다는 목적하에 수다를 떨었다.

나는 어느도시에 도착하건간에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도서관이다.

목적은 간단하다. 공짜 인터넷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클랜드 도서관도 공짜 인터넷이 가능했고 내가 방문한 어떤 도시보다 무료 인터넷 시스템이 잘되어 있었다. 물론 인터넷 비교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과 비교해서는 안될일이지만 다른 여행했던 도시와 비교해서는 가장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오클랜드시내 관광을 나름대로 하면서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할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꽤 많은 호텔도 보이고 레스토랑도 있었다.

우선 가볍게 몇장의 이력서를 작성해서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다지 큰 기대를 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전화가 오지 않음에 실망한건 당연한 일이었다.호스텔에도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곳에도 공급과 수요중에 수요가 단연 우위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또한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한고용주 밑에서 삼개월밖에 일을 할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그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 비자 컨디션이기도 하다.

몇군데서 연락이 와서 전화를 받아보면 한결같이 비자 컨디션이 일을 할수 없는 상황이 되기 일쑤였다.

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고 오클랜드를 뜨기로 70프로 정도 마음을 가다 잡고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했다.

우선 차를 한대 사기로 했다. 이곳도 역시 공공교통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귀찮은 것을 하지 않는 것부분에서 세계 챔피언일정도의 귀차니즘에 젖어 있어서 차를 한대 사기로 했다.

함께 머물던 형과 함께 차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간단히 테스트 운전을 하고 1000불에 가볍게 1990년식 토요타 콜로나 스테이션 웨이건은 간단한 서류작업으로 나의 차가 되었다.

오클랜드의 주차난은 이미 서울을 넘어선 것 같았다.

서울처럼 불법주차가 허용되지 않는 이도시에서 주차료를 감당해 내기 힘들어서 무료로 주차가 가능한 호스텔을 찾아 파넬이라는 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곳에서 난 이미 오클랜드가 아닌 다른도시로 마음을 먹었다.

차를 사기로 하면서 만난 원영형이랑은 또다른 인연이 있었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의 친구였던 것이다.

친구중에 호주에서 만난 영국인 여자와 결혼한 친구가 있는데 원영형은 그 영국여자의 친구 였던 것이다. 참 세상 좁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산 기념으로 오클랜드 북쪽 바다구경을 하기로했다.

처음으로 오클랜드를 벗어나 본 바다와 초원은 말그대로 동화속의 자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풍경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녹색이었다. 말그대로 한점 티끌없는 곳에 잔디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한가롭게 양떼가 잔디를 뜯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리와이 비치에서 차에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서로를 껴않고 자면서 캠핑은 아직 무리라는 점을 실감했다. 등골이 사무치게 추운 겨울바다였던 것이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서 원영형과는 다음을 기약했다.

난 오클랜드에 온지 이주만에 차를 사서 헤밀턴으로 향하는 엑셀을 밟았다.

머물렀던 52번 방의 룸메이트들을 생각해 냈다.

영국출신의 앤디 미국의 멜리사 그리고 이탈리아의 에밀리오 인도 출신의 리 다양한 인종구성이었고 모두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 들이었다.

52번방의 특별한 방분위기는 다름아닌 모두 여행을 막 시작한 사람이거나 여행을 마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모두 금방 떠날 사람들이었는데 떠나기 하루전에는 모두 함께 펍에가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우정을 나누니 어느새 서로의 경계가 모호해 졌고 우리는 모호한 경계를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음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엠피쓰리 음악을 공유했다.

심지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행자들이지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해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떠나고 나도 드디어 그곳을 떠나는 엑셀을 밟았다.

엑셀을 채 밟기도 전에 나의 라디에이터는 심각한 열에 엔진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정비사에 들러서 가볍지 않은 500불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새로운 라디에이터로 여행을 시작해야만 했다.

가까운 헤밀턴에 가서 일을 한번 알아볼 작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때 까지도 아직 급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가까운 호스텔에 배낭을 풀고서 가까운 시내의 잡에이전시에 들러 이력서를 돌렸을  뿐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머물렀던 숙소는 굉장히 호스텔 답지 않은 분위기의 민박집 분위기의 호스텔이었는데 헤밀턴이라는 도시의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의 도시에는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듯 백패커스 조차 희귀했다.

조금의 재미를 위해 캠핑을 하기로 했다.

처음 헤밀턴을 갔을때는 당분간 머물 요량이었는데 캠핑을 하던날 비가 왔는데 히터없이 자다가 추위에 바들바들 떨다가 아침에 조금 따뜻한 지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들긴다. 히터키고 자다가 죽는다며 담요를 하나 갔다준다. 겨울이지만 아주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뉴질랜드에는 아직 시골스러운 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난 죽기싫어 시동을 걸고서 조금 따뜻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무작정 차를 몰아서 타우포라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보이는 풍경들은 마치 동화속에 들어온것처럼 온통 녹색이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축복 받았다. 그 자연을 오염시키는 사람조차 드문 이나라는 자연이 보호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자연 덕분에 그들은 먹고 살고 있고 난 그 자연만을 만끽하기엔 지갑이 가벼워져 가고 있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타우포에 도착해서 강가에 앉아 점심과 커피를 한잔 하면서 잠시 앞길을 생각했다.

조금더 차를 밟기로 했다. 아직 타우포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타우포의 강가의 바람은 정말 매섭도록 차가운 것이어서 커피 한잔에 손을 겨우녹이니 이곳보다는 조금더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리워졌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내피어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엑셀을 다시 밟았다.

몇시간의 운전으로 내피어에는 해가 지기 직전에야 도착할수 있었다.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틀어져 있던 라디오를 끄고 도로를 달렸다.

그어떤 음악보다 내 심장을 고요하게 만들어주다가 쿵광거리게 만들어주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끝없는 수평선에 반해 버렸다.

바다에서 제일 가까운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 메니저와 잠시 일에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이곳도 아직 겨울인지라 바쁜시기는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했지만 그것보다도 난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다. 그순간 지갑의 가벼움따위는 내 머리속에 들어설 틈이 없었을 것이다.

호스텔 앞에 있는 벤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듣는 파도소리는 나의 심장을 녹였고 잠결에 듣는 파도소리는 내 영혼을 씻어주는 것 같았으니까.

이력서를 몇장 복사해서 주변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돌렸다. 내피어의 분위긴는 상당히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적될 것이다.

호스텔 메니저에게서 몇가지 정보를 물으니 주변의 잡에이전시와 카페들이 많은곳을 지도에 표시해 준다.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히고 여행의 여독이 풀리면 슬슬 살아가기 위한 준비들을 해야할것이다.

내피어의 비치에 앉으니 파도소리가 나를 한없이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

모래 해안이 아닌 둥그런 조그만 자갈들이 내 모난 성격을 더욱더 모나게 보이게 한다.

그동안의 나의 생활들을 돌아본다.

결코짧지 않은 29살이라는 나이를 먹어오면서 느끼던 생각들이 파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쓸려간다. 아 옛날이여

결국 다시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생각해내려 애를 썼다.

결국은 다시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갈사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워있는 나의 뺨을 부딪치는 바람은 아직도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햇살은 서서히 봄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잡에이전시와 몇개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뿌리고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여전히 호스텔에 돌아와 바다를 바라보며 기타를 쳤다.

책을 읽고 엠피쓰리로 존레논의 이메진을 들으면서 자갈비치에서 낮잠을 잠시 즐겼다.

뉴질랜드에서 나의 애마였던 90년식 도요타 코로나 해치백 수동기어지만 클러치면 클러치 브레이크면 브레이크 거의 완벽한 차여다. 30만 키로를 넘게 탄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1000키로 이상을 주행했을때에도 끄떡없었던 짱가 차였다.
뉴질랜드를 떠나면서 스위스 여행자에게 1000불에 팔고 어찌나 아쉽던지 하지만 그 친구는 땡잡은것 마냥 들떠하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무리와이 비치는 오클랜드에서 한시간 가량 북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만날수 있다. 믿을 수 없을만큼 광활한 바다와 멋진 검은 자갈 사장을 볼수 있다.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무리와이 비치에서 낙시하는 사람이다. 무리와이 비치는 서핑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갔을때는 겨울의 끝자락이었기에 서핑을 하진 못했지만 .....
오클랜드 파넬이라는 곳의 백패커다. 시내에 있는 백패커에는 주차를 할수 없기 때문에 시내에서 걸어서 20분거리에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호스텔은 말그대로 따뜻한 분위기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주인 내외도 상당히 친절하며 90프로가 독일인이다. 뉴질랜드에 오는 대부분의 워홀러는 독일인이다. 그들에게 물으니 독일에서 땅파서 지구를 가로 지르면 나오는 곳이 뉴질랜드란다.즉 독일에서 뉴질랜드가 가장 먼것이다.

타우포 가기전에 있는 폭포 이멋진 광경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담배와 커피를 마시며 감상했다.
뉴질랜드의 자연 광경은 뭐라 설명할 수식어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마치 현실이 아닌 동화의 세계같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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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 너무 멋져요! ㄷㄷㄷ
    저도 훌쩍 해외로 나가고 싶은데,
    마음만 한가득이네요 ㅜㅜ

    2010.03.08 06: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청카바의 여행기2010. 3. 7. 15:44

퍼스부터 론체스톤까지 30여키로 구간은 히치하이크 구간...
Day 5 2009 12 23일 수요일

코나라========론체스톤=========== 웨스트뷰리 23도 맑고 쾌청한 날씨


느즈막히 7시쯤 눈을 떠서 멍하니 텐트안에서 슬리핑백을 감싸고 앉아 있다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다.
텐트밖은 꽤나 싸늘하게 찬 이슬로 흠뻑젖어 있었다. 일어나 지난밤 내내 잠을 방해한 차도를 향해 스트레칭을 하며 졸린 눈을 비벼 겨우 떴다.

오늘 갈곳은 지도로 계산하니 80키로 정도에 그리 부담스러운 거리도 아닌데다 커다란 오르막도 없었다.
우리 양순이의 몸상태는 어제 밤보다는 조금 더 부었지만 어제 아침과 비교해서는 조금 나아진듯 보였다.

아마도 감자의 효력이 아닐까 싶었다. 약혼자의 지고지순한 정성이 90프로 정도 되겠지만 에헴...
텐트를 접고 가방에다 내스타일 데로 마구 쑤셔넣고서  트래시가 만들어준 밀크쉐이크를 흔들어 마셨다.

몸은 어떠니? 어제보다 나은거 같니?

아마도 조금 나아진것 같은데 아직도 움직이면 아파 그리고 여기저기 부엇다구

perth에 점심때쯤 도착할수 있을것 같은데 …’

오예 오늘 점심은 아주 거대하게 하자구

야호

그리고 페달을 밟았다. 아직 엉덩이가 뻑쩍 지근 했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도 이제는 거의 자전거 여행에 적응 하고 있었다.

길은 평탄했고 언덕길도 그리 가파르지 않았고 도로는 말그대로 일자로 론체스톤을 향해 뚫려 있었다. 그냥 똑같은 지루한 풍경에 트럭과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커피마시자

오예 오예 난 케익

내 아나콘다가 꿈틀대고 있다.

“아후 드러워

주유소에 들러 커피와 케익을 먹었다. 담배를 끊으면서 니코틴대신 카페인이 가득찬 커피를 선택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자전거 페달을 밟노라면 담배따위는 생각도 나질 않았지만 

화장실에서 아나콘다 한마리 잡고 트레시와 함께 페달을 밟았다.

모든것이 너무 순조로웠다. 내몸은 아나콘다 한마리 푼 직후라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오늘 델로레인에 도착하면 계획한 스케줄대로 하루 약 50-60 키로만 달리고도 여유있게 타지메니아 완주가 가능할터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침이었다. 그리고 퍼스를 6키로미터 남겨두고 트레시가 쉬자는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 내리면서 패달에 잠시 내체중을 실어서 태권도 뒤돌아차기 교본대로 다리를 높이 들어올려 물찬제비(?)처럼 착륙했다.

잠시 자전거가 기우뚱했다.

뒷바퀴가 조금 이상한듯 보였다. 그리고 바로 확인하며 난 경악했다.

자전거 뒷바퀴가 완전히 휘어져 버려서 굴러가지도 않게 생겨버린 것이다.
으아악!겨우 내 몸무게는 90키로그램이란 말이다.

야 담배 어딨냐? 으아아아아앙

무슨일이야 ? 엥 어찌된거야 이렇게 지금까지 탄거야?

지금 내릴때 잠깐 기우뚱했는데 그렇게 된것같아!아침에 아나콘다도 배출했는데?

어휴 골치 덩어리

어쨌든 우리는 조옷됐다.

다행인것은 다음 도시인 퍼스까지  6키로밖에 안남은것이었다. 뒷바퀴를 뒤집어놓고 손으로 펴보았지만 이미 휘어버린 휠을 다시 편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모든 짐을 트래시의 자전거에 실고서 난 뒷바퀴를 들고 앞바퀴로 굴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고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퍼스에 자전거 샾이 없으면 30키로 이상 떨어진 론체스톤까지 가야할 상활이었다. 타즈매니아 일주는 이대로 물거품이 되는가 싶었다.

그렇게 거의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면서 1키로 정도를 앞으로 나아가다 트래시가 우선 전화로 퍼스에 자전거 샾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상쾌한 아침이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날개조차 없었지만 우리는 거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전거를 아예 어깨위로 들어올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트럭 한대가 앞에 멀찌감치 서있다. 무슨 문제냐고 묻길래 뒤틀린 뒷바퀴를 보여주니 인상을 구기면서 한숨을 쉰다.

퍼스에 자전거 샾이 있을까 ?있으면 그곳에서 고치고 싶은데

퍼스는 자전거 샾이 없을거야 아주 작은 도시라구

오 노노노노 타즈메니아 자전거 일주 해야 하는데?

그럼 론체스톤에는 자전거 샾이 많이 있나요?

우선 내가 알기론 서너군데 있으니까 고칠수는 있을거예요

론체스톤 가는건가요?

자 자전거 실어요 뒤에다

우리를 도와준 그의 이름은 스캇이었고 조그만 동네의 초등학교의 정원사였다. 그날 론체스톤에 볼일이 있어 올라가는 중에 자전거를 들고 가는 나를 보도 손도 흔들지도 않은 우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호의를 베푼것이었다.
론체스톤까지는 30여키로를 그렇게 그의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전거로 올랐으면 턱이 숨까지 차고도 못올랐을 언덕을 금세 넘어 저전거 숍에 도착했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례금을 지불하니 한사코 손사례를 쳐서 내 명함을 주며 다윈에 혹시 올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자전거를 등에 메고서 자전거 숍에 들어갔다

고치러 온거니

뒤쪽으로 가봐

이거 고치는데 얼마 걸려

한시간이면 돼 간단하니까?

? 이거 빵구난게 아니라 뒷바퀴가…”

으엑 어떻게 된거야?

글쎄 난 90키로밖에 안될뿐이고 아침을 얼마 먹지도 않았다구

하하하하

잠시 뒤에서 바퀴사이즈를 체크하더니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고친댄다 아마 며칠기다려야지 사이즈를 찾을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절망했다. 그가 가르쳐준 자전거 샾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마음을 비웠다. 여행은 이렇게 끝나나 싶었으니까 !

그가 알려준 다음 자전거 샾에서는 내자전거를 확인하더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휠이 이렇게 휘나 하고 오히려 내게 묻는다.

90키로밖에 되지 않아

라는 궁색한 변명을 할뿐이고 트레시는 웃고 있을뿐이고

다행히 그샾에는 똑같은 사이즈의 휠이 있어서 1시간도 채 되지않아 휠을 교체하고 여행의 불씨는 꺼지기는 커녕 다시 원래 대로 돌아왔다. 주변 타겟마켓에서 트레시는 긴팔 하나를 사고 점심을 먹고 물을 카멜백에 채웠다.

점심을 먹으면서 다시 여행계획을 세웠다. 점심이 훨씬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델로레인가지 60키로밖에 되지 않으니 가보는 만큼 한번 가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론체스톤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벗어나야만 했다.

고속도로는 재미없고 심지어 생생 달리는 트럭때문에 조금은 위험하기까지 했지만 시간을 절약하는데는 최고의 지름길이었다.

이미 몇시간을 버린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오늘만 고생하면 내일 부터는 스케줄데로움직이면 별 무리 없이 일주가 가능할 것이고 조금 여유까지 생기기 때문이었다.

더웠다. 그리고 트럭이 생생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일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워야 되는 일이었으므로

델로레인이 16키로 남겨둔 웨스트 뷰리에서 우리는 하루를 묶기로 했다.

캐라반 파크도 있었고 16키로정도야 한시간 반이면 도착할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전거가 고장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웨스트뷰어리에는 꽤 큰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캠핑을 하고 샤워를 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계획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여행이 될듯했다.
우리는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아주 긴 하루 였으므로
dfdfdfdfdfdfdf

이때까지만 해도 아나콘다 풀어주고 커피한잔 마시며 지도를 살피는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나오는데 ....
상황 뒤집히는 데는 불과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 휠이 완전히 휘어버려서 아예 굴러가지도 않는다. 아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 머리털을 다뽑아버리고 싶었다. 담배는 왜끊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고급자전거라면 난 못믿겠다. 난 겨우 90키로일뿐인데 말이다.

손가락을 들지도 않았는데 세워진 차 타즈매니아의 풍성한 인심이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를 백번쯤은 마음속으로 세겨 넣었다.
론체스톤에 도착해 우리의 구세주 스캇과 함께 사진한장을 찍었다.

론체스톤에서는 자전거를 메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여행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
나와 트래시는 절망의 순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타즈매니아의 따뜻한 인심과 아름다운 날씨 그리고 이모든것이 거쳐과는 과정임을 알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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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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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포일러

    저도 그런적있어요. 전 60KG박에 안되지만 내리막에서 속도 좀 내다가 브레이크잡으면서 커브를 돌았는데;;

    바퀴가 휘어버렸더라고요. 그건 몸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운이 나빳던거 같아요^^:

    저도 내년 이맘떄는 호주로 날아가고 있겠네요.^^

    2010.04.07 11:18 [ ADDR : EDIT/ DEL : REPLY ]
    • 제 몸무게가 무거운게 아니라 휠이 불량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ㅋㅋㅋ 호주오시면 타즈매니아 자전거 강추요

      2010.04.07 13:49 신고 [ ADDR : EDIT/ DEL ]
  2. 휠 문제는...

    휠 문제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데요...옆방향으로는 굉장히 약한게 자전거 휠이죠....
    내리시면서 옆쪽으로 휘두른 힘으로 밀려버리면서 휜 걸 겁니다.
    그리고 비싼 자전거일 수록 약해요.....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 때문에....필요 최소한의 강도로 가볍게 만들죠...
    젤 튼튼한건 역시 시골에 많이 다니는 삼천리표 아저씨 자전거....무겁고 무지하게 튼튼하죠...^^

    2010.05.27 21:13 [ ADDR : EDIT/ DEL : REPLY ]
    • 삼천리 타고 자전거 일주 할순 없잖아요--' 근데 정말 비싼 자전거 휠 약하더군요

      2010.05.28 19:27 신고 [ ADDR : EDIT/ DEL ]
  3. 삼천리 자전거라면.

    그리고 삼천리는 가겠죠.. 설마 삼천리 자전거가 그정도도 못가나요..
    그리고 자전거도 자가용처럼 항상 예비용품을 가지고 있는게 좋을듯싶어요!!
    도중에 체인이 끊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2010.06.14 00:17 [ ADDR : EDIT/ DEL : REPLY ]
청카바의 여행기2010. 3. 5. 09:10


Day 4 2009 12 22일 날씨 기가막힘 최고기온 25도정도

Swansea==========Campbell town==Conara

고요한 아침 파도소리에 잠에서 깨 반쯤 졸린 눈으로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바다를 보니 바다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 넓은 텐트장에는 우리 텐트와 유럽 여행자처럼 보이는 두 커플뿐이었다.

바다는 드넓은 수평선까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텐트를 접기전 트래시의 몸을 점검해봤다. 어깨의 화상은 조금 나아졌는데 팔은 더욱더 부어서 제대로 접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먹도 제대로 쥐지 못해서 병원부터 가자고 하니 오후 지나보고 판단하잔다.

참 그녀의 참을성에 혀를 내두른다.

썬크림을 듬뿍바르고 손가락을 자른 면장갑을 끼게 하고 긴팔을 입혔다. 벌써 입이 반치나 나왔다. 덥다며 투덜댄다.

야 긴팔입어라

명령하는 거야?

그래 명령하는 거다. 니가 내말 안듣고도 화상 안입었으면 암말 안한다

알았다 알았어

지금더운게 문젠가 지몸이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이 좋겠냐 말이다.

캐라반 파크를 나와서 아침을 먹기 위해 빵집에 들렀다. 물은 두통사서 카멜백에 가득채웠다. 아침은 블랙커피 한잔과 샌드위치로 떼우고 점심을 위해  몇개의 쿠키를 사서 챙겼다.

27불정도 나왔는데 트레시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베이커리라며 투덜댄다.

켐벨타운으로 가는 도로까지는 10키로 정도 남짓이었는데 오르막 없이 아주 상쾌한 도로였다.

이런 도로라면 언제라도 기쁜 마음으로 자전거 탈수 있을것 같아

나도 역시 그럴것 같아 근데 이런 도로를 달려도 금새 오르막이 나올것 같은 두려움

저기 옆에 보이는 산이 오늘 우리가 해야할 숙제같은데 ..

지셔스 크라이스트

산에 입성하기 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트래시도 벌써 기운이 빠졌는지 오르막이 보이면 아예 페달을 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려서 걷는다. 몇개의 언덕을 넘으며 난 굉장히 희망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산만 넘으면 내리막이 나오지 않을까?

헤이 서방님 언덕 얼마나 남았어?

이거 꽤 높으니까 이거 마지막이지 않을까?

그건 큰 오산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린 그때 이제 막 뱀의 아가리에 이제 발을 디딘 것이다.

그말을 하고 아마도 100번도 넘는 오르막을 올랐고 앞으로도 몇십개의 언덕을 더 올라야 하는 것인지 알수 없었다. 내려오는 차도 올라오는 차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잠시 힘이 난다. 0.5

내려가는 차가 클락션을 울리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이게 열정인가 보다

무슨말이냐

저렇게 누가 손을 흔들어주면 마음속에서 5초정도 힘이나잖아

니 열정은 나보다 10배다 난 딱 0.5초만 힘이나거든

어쨌든 양순이의 열정이 나보다 10배는 더 뜨거운가 보다

그렇게 오르고 올랐는데도 중간지점인 lake leak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진짜 언덕길 중간에서 주저 앉을 판이다. 트래시는 이미 나보다 1키로 이상 뒤쳐져 버렸다.

그녀의 페이스에 맞춰주기 보다는 내페이스대로 그녀를 이끌어 가는게 나을 터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언덕 정상에 오자마자 긴팔을 벗어던지며 선크림을 더욱 듬뿍바른며 잠시 그늘에 앉아 쉰다.

완전 오버 히팅되어 버렸어

선크림 더바르고 긴팔 벗고 올라가자

여전히 지나가는 차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린눈빛으로 보고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아직 우린 절반도 오질 못했는데 체력은 이미 바닥이 보이고 물조차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아직도 오르막이었다는 점이다.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구상했던 지름길이 지름길이 아니라고 자전거를 끌고 겨우 올라간 커다란 오르막위에는 해발 640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640미터라니 어째 언덕치고 끝이 없더라 이제부터 신나게 640미터 내려가는 일만 남은걸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오르막 1시간에 내리막 5분이었잖아 4시간 오르막이었으니 20분정도가 아닐까?

에이 설마 말도안된다

내리막이 보이기 시작한 정상에서 2분만에 다시 오르막이 보였다. 욕이 나오기 전에 쉬기로 했다. 이미 문을 당은 주유소 옆집에서 빵과 몇가지 케익으로 배를 채웠다.

아침에 화장실을 가지 않아 화장지를 빼들고 조금 가려진 주유소 벽 옆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양순이가 크게 웃으며 그집 굴뚝에서 연기 난다며 사람 살고 있는 집임을 알려줘서 똥 누는걸 포기했다. 남에집 벽에다 똥누다가 큰 망신 살뻔했다.

다시 헬멧을 뒤집어 쓰고 조그만 둔덕을 오르니 lake leak가 나왔다. 이로서 59키로에 32키로를 왔으니 절반을 조금 더 온셈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내리막이 더 많을테니 적어도 세시간이면 캠벨 타운에 도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난 언제나 희망적이었다.

몇개의 작은 구릉을 넘으니 드디어 기나긴 내리막이 나왔다. 이제까지 지나왔던 어떤 내리막보다도 길고 쭉뻗은 아름다운 내리막이었다.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뻥하고 뚤려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작은 구릉과 평지 그리고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자전거도 탄력을 받아 캠벨타운까지 거리를 더욱 좁혀가고 언덕을 올라오면서 소진했던 에너지는 다시 충전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내리막에서는 손가락이 시려워 잠시 쉬기로 했다.

가슴이 뻥뚤려버렸어 아주 시원히

내리막만 같으면 다윈까지도 자전거 타고 가겠다

그리고 거의 내려오는 내리막은 30분이 넘도록 계속 지속되었다.

30분은 4시간 오르막에도 그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이었다.

짜릿하고 아름다운 내리막의 온바람을 가슴에 맞으며 내려오는데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자전거 여행자를 봤다.

오 마이 갓

우리가 이렇게 신나게 내려온 내리막을 그들은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주 아주 긴 오르막이 될거예요 힘내요

고마워요 재밌는 여행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것이 공감되는 대화였다.

난 죽어도 오늘 우리가 내려온 내리막을 올라갈순 없어

헤이 트래시 하지만 저들은 우리가 힘들게 올라온 오르막을 내리막으로 갈거라구

멀리 타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운에서는 무슨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불이 났나라고 생각을 하고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갔다.

마을 초입에 목공소에서 나는 연기였다. 기계들이 아직도 나무를 태워 증기로 동력을 쓰는 모양이었다.

캠팰타운은 타즈매니아의 정중앙에 위치한 바쁜 조그만 도시였다.

도착한 시간은 거의 4시간 다 되어서였다.

우선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커피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캠벨타운에는 캐라반 파크가 없었기 때문에 어쟀든 괜찮은 캠핑 장소를 찾아야만 했기때문이다.

몇몇 현지인에게 물으니 그곳에서 10키로 떨어진 코나라에 캠핑을 하기 좋은 공원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버거는 달콤했다. 전화를 켜서 가족들의 메시지를 확인했고 고객들에게 온 전화를 받아 스케줄을 조정했다.

IGA에 들러서 내일먹을 음식과 물 그리고 몇개의 감자를 샀다. 트레시의 화상에 감자 마사지가 필요할듯 싶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코나라까지 10키로를 이동했다 처음으로 이동하는 중앙 고속도로였다.

말그대로 평평한 도로였다. 시속 10키로는 무난한 도로였지만 트럭들이 이동할때는 바람에 휘청거려 겁이 날 정도였다. 한국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코나라에는 넓은 공원과 화장실이 있었고 한팀의 캠핑팀이 우리보다 먼저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트래시에게 감자 마사지를 해주고 여행계획을 다시 세웠다.

우리의 여행계획은 급물살을 타고 변경되고 있었다. 내일을 아마도 델로레인까지 도착할수 있을것이었다. 100키로 정도 되는 거리였다. 론체스톤은 뻔한 도시일것 같아서 지름길로 다음 목적지인 델로레인까지 가기로 한것이다. 내일은 그다지 오르막이 없을 것이었다.

내리막도 없겠지만 어쨌든 별부담없이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점점 자전거 여행에 흠뻑 젖어 들어 가고 있었다.

스완씨에서 비시노 방향으로 가는 아침풍경 양들도 아침을 먹느라 분주하다.
아침의 풍경사진은 11월달 달력 그림으로 쓰면 되겠다. 너무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아침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감탄과 찬사르 쏟아 부을수 있는 그런 아침!

동부해안에서 왼쪽으로 꺽어서 타즈매니아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목 멀리보이는 산이 오늘 넘어야 할 산이었다. 평평하게 보이는 것이 산처럼도 안보였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양순이와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상쾌한 아침을 만끽중이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 이사진은 내리막을 찍은 사진이다. 이런 길을 오전이 다가도록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헥헥.......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다.

마침내 우리가 지셔스 크라이스트를 백번쯤은 외치고 올라선 정상이다. 이런 니미귀럴....
정상에 오르고 내리막길을 가는데 2분도 안되어 다시 오르막 나옴.--;


캠벨타운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에서 양 똥을 팔고 있었다. 아마 화단용으로 파는 것일거다. 자급자족의 타즈매니아다.
인도에 이런 적벽돌에 글씨가 새겨져 몇키로가 연결되어있다. 모두 죄수들의 이름이다. 캠벨타운은 호주 타즈매니아의 배꼽에 위치해 있는데 죄수들이 이 타운을 건설했다. 어쨌든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그들의 신상과 범죄항목을 나열
몇개 보다 보면 하찮은 소매치기도 끌려와야 했다.

캠벨타운에 도착해서 먹은 저녁 난 치킨버거와 롱블랙 커리를 마시고 트래시는 감자 에쥐와 치킨버러를 먹었다. 여행중 먹은 가장 맛있었던 만찬이었다.

코나라에 도착해서 캠핑 중 자전거에 저렇게 두개씩 매고 그 높은 산을 올랐다. 지셔스 크라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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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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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2세 예비역 2년차 대학교 2학년 일학기 그시절의 나는 뜨거웠다. 뭐든 화끈하고 싶었다.
돈따위는 필요 없었다
. 여자친구도 필요없었다.

다만 넘쳐나는 젊음의 시간을 떼울수 있는 무엇인가 의미있고 가슴뜨거운 것이 필요했다.

나의 일기장에 이외수의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라는 시를 프린트해서 새겨넣었다.

그리고 세상으로의 가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배낭메고 한 가출 -

이미 마음속에서  장기여행을 구상하고 있는 내게 공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원래 공부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수업 후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여행서적을 읽기 일쑤였다. 그 당시 방값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 4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4발가락이라는 별명처럼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의 주말처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셔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세 명 모두 외출복장으로 갈아 입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데이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외출한 큰방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난 이제까지 주말에 데이트할 사람 하나 안 만들고 뭘 했담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티브이를 켜니 토요명화로 파이란이 방영되고 있었다. 민식의 삼류인생이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비참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다른 채널로 돌리니 박하사탕이 하고 있었다. 설경구의 마지막 대사 '나 돌아갈래' 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 머릿속에 메아리 쳤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친구들에게 박하사탕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 호주갈래하고 외쳤다.

결정해버린걸 시작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침 온라인 비자로 바뀌어져 있었고 비자는 학교 컴퓨터로 간단히 몇번의 클릭질과 타이핑으로 끝내고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종로 하나로 병원에 들렀고 비자 신청 2주 후에는  별 문제 없이 발급 되었다.


시골에 잠시 내려갔다
.

꽤나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내가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것은 모르고 계셨다.난 생각보다 효자인셈(?) 아시면 걱정하시니까!
내려가서 며칠 농사일을 도왔고 소 똥을 치웠다. 아버지는 내가 시골에 올 때마다 소 똥을 치우거나 경운기 운전하는 일을 굉장히 뿌듯해 하셨고 나는 호주에 가는 계획을 말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점수를 딸 요량이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내려온 막내를 위해 푸짐하게 저녁이 차려졌다. 낙지며 생선들이 가득한 호화스러운 산해진미의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아버지 저 호주 좀 잠시 다녀올게요

학교에서 보내주는 거냐?

머 비슷해요.

그렇게 난 호주 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주머니에는 달랑 호주 달러 500불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나의 세계여행은 시동을 걸었다.  사실 2년 휴학을 결심했다. 1년은 호주에서 돈을 벌 작정이었고 또 다른 1년은 그 돈으로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 보스톡에서 속초로 돌아오는 하루밤만에 계획한 통큰(?) 밑그림이었다.

호주는 이미 두 번째 여행이었고 두 번째 라는 건 그만큼 시행착오도 또한 적어 진다는 의미였기에 조금은 건방지게 공항에 도착했다.개기름 낀 얼굴에 썬그라스까지....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내 이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다름아닌 내이름 원선 중에 원과 선 사이에 하이픈을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역시 주의 성 없는 성격을 탓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방법이 없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울상을 짓는 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체크인 수속 창구는 나 때문에 분주 해졌다. 내 여권과 비자에 적힌 이름을 복사하고 캔버라에 팩스를 집어넣어 다시 허락을 받아야 해야 한다고 해서 난 배낭을 매고 카운터 구석에서 나의 부주의를 반성하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오랜만에 보는 스튜어디스 누나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 출발 삼십 분전에 답신이 왔고 난 배낭을 매고 뛰기 시작했다

2d2열  종대로 쫘~악 줄을 서있는 출국 심사대에서는 심지어 새치기까지 해야했고 뒷사람들의 뜨거운 눈총을 받으며 비행기 창구로 뛰기 시작했다.
담배 한 보루를 급하게 사고 잔돈을 받지도 못
한 채 비행기에 뛰어들었다. 그런 급한 순간에도 호주의 비싼 담뱃값을 걱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는 신중함이 엿보였다.

일본을 경유하고 10시간의 비행으로 간단히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은 입국심사대에서 우물쭈물 묻는 말에 대답했고 배낭을 찾아서 공항을 빠져 나왔다.

아직 몇 개의 한국 담배가 남아있는 담배 케이스를 꺼내어 한대 피웠다. 시드니의 계절은 한국과는 정반대인 겨울이었지만 햇살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나를 비춰주고 있었다.

지갑에는
300불의 호주 불이 있었다.

시작한 돈이 적었기 때문에 불안하고 힘들었다고 하면 조금 사치스러운 표현이었고 오히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서 앞으로 돌진하는 것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때의 심정이었다. 300불이라는 돈을 들고 킹스크로스에 도착해서 시드니 센트럴 백패커스라는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6인실의 도미토리에 묵고 있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일주일 숙박 할인이
있었기 때문이 150불이 지불되어 내 지갑에는 100불이 조금 넘는 돈이 남게 되었.
리셉션에서 시내 지도를 한 장 얻어서 호주 이민성을 방문해 비자 라벨을 받았
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택스 넘버를 신청했다.

시내의 맥도날드를 지나치고 있는데 도미토리에서 인사한 조라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햄버거를 먹었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돈도 100불이 채 되지 않았고 일을 찾고 있었다. 며칠 전에 스리랑카에서 도착했다고 하는 그에게 난 알수없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그것은 빈민 한 자들끼리만 통하는 특별하고도 각별한 그 무엇이었다.
그날 저녁 난 조와 특별한 동지애를 확인하기 위해 나이트를 갔고 문제는 가지고 있는 100불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조라는 친구와 만남은 시작되었다.

지난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좀처럼 머리가 흔들려서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조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운다.

눈곱도 채 떼지 못한 내게 조는 아주 빠른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고 내게 그 소리가 들어 올 리가 없다. 설령 귀에 들어 왔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빠른 영어를 이해할 리도 없었다.

멍한 상황에서 조의 태도는 내게 세수할 시간도 없이 리셉션으로 뛰어가게 만들었다. 리셉션에는 한 명의 호주 인이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오케이' 라고 말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조가 천천히 이삿짐 나르는 일이라고 설명을 해줘서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는 면접이 있다며 다시 씻으러 갔고 나는 바로 모자를 뒤집어 쓰고 호주인 사장을 따라 그의 트럭에 올라 탔다.

트럭으로 한참을 가더니 이사할 집이란다. 으리으리한 집에 조금 기가 눌렸다.

함께 간 유럽친구들도 조금은 위축된 모양인지 우리는 정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담배를 한대 태웠다. .

그리고 이사 짐을 나르기 시작했는데 한국처럼 간단한 가구들이 아니었다.

오래된 가구들은 아예 들어지지도 않았다. 애초부터 바닥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그런 가구에 손잡이가 제대로 있을 리도 만무했다.

직접 만든 가구들이라 그 무게 또한 어마어마했는데 힘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 있던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점심은 10불이나 하는 커다란 햄버거를 먹었다. 돈이 없어서 사장에게 가불해서 햄버거를 먹는 내 모습에서 어제의 나이트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조와 나이트를 3군데 간 것까지 기억나는데 돌아온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을 쥐어짜고 있는데 짧은 점심시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날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바로 정원에 있는 돌을 쪼아서 만든 화분이었다.

잡는 것도 용이 하지 않을뿐더러 그 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데 손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고 손가락이 가을바람의 나뭇잎처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다리도 역시 후들거렸고 먼지를 뒤집어쓴 내 몰골은 하루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로비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흙 먼지를 뒤집어쓴 조를 만났다.

조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건축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비볐다는데 하루 만에 십 년은 더 늙어 버린것같다.

우리는 서로의 피폐해진 몰골을 보고 한참이나 웃었다.

손에 쥔 150불은 꽤나 큰돈이었지만 노동의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손에 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조와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이삿짐을 나르고 핸드인캐쉬로 꽤 큰돈을 쥐게 되었다.

처음에 올 때 가지고 온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지금 은행잔고로 있으니 천군마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조와 가까운 한국식당엘 갔다. 젓가락질이 꽤나 능숙한걸 보니 꽤나 해본 솜씨다.

그리고 묵이 나왔을 때 몇번 팅글팅글 젓가락으로 건드려 보더니 뭐냐고 묻길래 베지터블 젤리라고 말해줬다.

묵이 팅글팅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조는 묵을 한번도 먹지 않았다.

며칠전 내가 해물라면을 먹고 있는데 봉지의 그림을 보더니 낙지가 들어갔냐고 물어본다. 맛있다고 했더니 자기가 스쿠버 할 때 본 낙지는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예쁜 생물이라며 손으로 낙지가 헤엄치는 모습을 흉내 낸다.

라면을 먹으면서 나한테는 네가 매일 먹는 소가 더 예쁘다고 했다.

맨날 라면만 먹던 내게 조는 누들 보이 란 별명을 지어줬다.

그리고 이삿짐 일이 힘에 부치고 일이 많이 없어서 다른 일을 찾고 있는데 호스텔 핸디맨과클린어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잠시 2주간 대타를 뛰기로 했다. 대타로 일하면서 이력서를 뿌린 식당에서 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인이 사장인 보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저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웨이트리스에게 테이블 세팅 지시를 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식사가 공짜였기에 난 누들보이에서 해방이 되었다.

2주간의 대타가 끝나고 밤에는 호스텔 리셉션을 지키게 되었다. 그 덕에 난 호스텔에 공짜로 머물며 급료를 받을 수 있었고 낮에는 보디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레스토랑 복장은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남방을 입어야 했는데 그런 옷이 있을 리 만무해서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자기 옷을 선뜻 빌려준다.

궁하면 어디든 통하는 법이다. 그렇게 호스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어갔다.


조는 바로 옆 건물로 이사를 갔다
. 조의 룸메이트였던 필립과 조와 나는 쉬는 날이면 함께 술을 마시고 나이트를 탐방(?)하며 시드니 킹스크로스에서 방탕(?)의 길로 접어 들었다.
시드니에서 생활한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 동안 호스텔에서 매니저와의 암묵적인 협의 하에 무료로 머물고 있었는데 사장은 급료를 받는데 왜 공짜로 머무느냐고 물었다. 나는 원래 내 급료에 숙박비가 포함된 거 아니냐 하고 반박했다.

사장은 앞으로 일을 계속 하려면 숙박비를 지불하란다. 난  이스라엘 빨간 머리 아줌마에게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니저와 상의해봤지만 그도 괴팍한 사장 성격을 어쩔 수는 없었다. 보디 레스토랑에서는 다섯 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았고 숙박비까지 지불하게 되면 생활이야 되겠지만 돈을 모으기는 힘들어 질게 뻔했다. 나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꽤나 방탕하게 지낸 삼 개월 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돈이 은행잔고로 있었던 것이다.
호주 대박신화의 근원지인 농장 일을 찾기로 했.
내가 농장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조는 굉장히 서운해 했다.

자기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장에게 말해서 일을 찾아 보자고 한다. 하지만 난 이미 마음을 굳혔고 배낭을 챙겼다.
 떠나기 전날 조와 필립과 함께 킹스크로스의 스포츠 바에서 평소보다는 조금 조용하게 권투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


다음날 아침 조가 아침 일찍 호스텔로 왔다
. 평소 아침잠이 많은 조가 나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 호스텔 스텝들에게 인사를 했고 조는 내 배낭을 들어주면서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따뜻한 말을 해준다.

나는 크리스마스쯤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대답하고 우린 킹스크로스에서 하이파이브를 올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호주 시드니 백패커스에서 나이트 메니저를 하면서 메니저 숀과 함께
조와 함께간 조의 친구집에서 신년파티 중
조,필립과 함께간 한국식당 지금도 가끔 조와 메일을 주고 받는데 서른이 훌쩍넘은 나이지만 여자가 너무 많아서 장가를 못가고 있다는 핑계로 현재 프랑스 어딘가에서 여자를 꼬시고 있을거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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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2010. 3. 4. 09:26


Day 3  2009 12 21

파란색선 Orford===============Swansea 날씨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23

잔잔해진 파도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기 귀찮아 발을 꼼지락 거리며 늑장을 피우고 있는데 옆에서 양순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7시가 넘어 버렸다. 해는 그렇게 늦게 지더니 뜨는 것은 일찍도 떠서 벌써 중천이다.

일어나서 밖에 나와 보니 텐트 곳곳에 달팽이 천지였다. 아마도 텐트가 따뜻하니 달팽이들이 텐트 사이사이로 끼어든 모양이었다. 조심히 몇마리의 달팽이를 치우고 텐트를 접어 자전거에 실었다. 

피곤해서 풍경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어제 저녁에 본 풍경보다 캠핑장은 훨씬더 평화롭고 고즈넉한 모습이었다.

비록 화장실과 캠핑장 시설들은 이끼와 비바람에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모습이어서 마치 폐가에서 하룻밤 지낸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햇지만 바닷가의 풍경은 고즈넉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양순이의 화상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

여태까지 보아온 어느 화상보다 발갛게 부어오른 것이 훨씬 심각해서 조금 더 큰 동네에서 약국이라도 서둘러 찾아보아야할 형편이었다.

양순이의 손등 마저도 화상을 입고 부어서 핸들을 잡는 것 조차도 불편해 하고 있었다.

어제의 목적지였던 트리뷰아나까지는 고작 3키로 정도였다.

배신감까지 밀려왔다. 어쨌든 고즈넉한 캠핑장에서 평화로운 밤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것도 공짜로.

트리뷰아나는 조그만 낚시마을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동네에는 고작 베이커리와 주유소만이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를 한잔 마셨다.

담배를 끊어서 무엇보다도 내게는 진한 카페인이 필요했다. 아침에 마시는 진한 에스프레소한잔은 당분간 나의 금단 현상을 막아줄 터였다.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점원이 트래시의 화상을 보더니 입을 쩍 벌린다.

세상에 어쩌다 이런 화상을 입은거예요?

자전거로 여행중인데 날씨가 선선해서 나도 모르게 화상을 입었지 뭐예요?

차팩을 우려낸 수건을 조금 올려 놓으면 괜찮아 질거예요

어제 와 달리 싱글넷(소매가 없는옷)이 아닌 반팔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팔과 손등의 화상이 도드라질 정도로 심한 화상이었다.

근처의 약국은 10시가 되어서야 여는 것을 빵집 점원에게 물어 알게 되었고 베이커리 앞에서 한가로이 커피와 빵을 먹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자전거를 구경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멋진 캠핑카를 렌트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리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스완씨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은 지금 출발하면 점심전후로 도착할수 있을 50여키로의 거리에 있었다.

아침에 확인해본 지도에 의하면 가파른 언덕은 한군데뿐이었다.

양순이가 화장실에 간사이에 주유소에 잠시 들러 장갑을 두개 사왔다.

우선 트래시의 손등이 조금이라도 보호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선크림은 그다지 효과가 없어보였고 더이상 군대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선크림을 신뢰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서 스완씨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나의 엉덩이는 조금 적응을 했는지 어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

아마도 적응을 하고 약혼자 앞에서 안 퍼지려고 내몸은 어제 자는 사이에 발버둥을 쳤을것이리라.

양순이도 나도 어느새 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높은 언덕보다 자그마한 둔덕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속 10키로 이상으로 나아갈수 있었다.보이는 해안도로의 풍경은 말그대로 달력에 나올듯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선과 파란물감을 그대로 풀어놓은 듯한 바다색 그리고 푸른하늘에 뭉개구름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을 모아놓은 달려에서 정확하게 5월달 사진에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록키힐이라는 150미터 고지는 가파랗지만 어제에 비하면 찬밥에 물말아먹기였다.

그곳에서 본 풍경은 아직 5월달 달력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가 그 높은 오르막길조차 즐길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이 가파른 오르막 위에는 이에 상응하는 시원한 내리막 길이 기다 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제 하루의 자전거 여행은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스완씨까지는 계속해서 달려그림의 연속이었다. 말그대로 달력그림을 연속 넘기고 있는 기분

스완씨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 iga 편의점에 들려서 간단한 식료품과 양순이의 알로에크림을 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비치노까지 갈 예정이었다.

점심은 편의점 직원이 추천해준 동네의 유명한 호텔펍에서 먹기로 했다.

시내에서 1키로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다시 힘을 내서 갔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버려 점심을 먹을순 없었다. 다행히도 펍 옆에있는 베이커리에서 간단히 점심을 구할수 있었다.

점심은 샌드위치였다. 가격은 보통 베이커리보다는 약간 비쌌지만 허기진 우리에게 그런 볼멘소리를 할만큼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편의점에서 사온 알로에를 우선 보이는 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화상입은 부분이 부어오르기까지 했고 손을 댈때마다 그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점심을 마치고 자전거의 열쇠를 푸는데 4명의 캐라반 여행객들이 우리를 보더니 반가운 인사를 한다.

선 번(화상)무지 조심해야되요 여기 특히 타즈매니아

네 그런거 같아요 제 다리랑 팔이 아주 랍스타가 되어버렸다구요

아까 오다가 당신들을 봤어요 여자친구는 한 500미터 뒤쳐져서 힘들게 언덕길을 올라가고 앞에 남자친구는 울루룰루 가더군요

울루룰루는요 제가 앞에서 페이스 조절하고 가는거뿐이라구요

하하하하하 즐거운 여행하세요

남들한테는 아마도 피앙세를 혹사시키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화상입은 트래시가 더욱더 애처러워보였다.

트래시한테 오늘 오후에 갈거 포기하고 그냥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는걸 생각해보자고 했다.

어제 샤워장도 없어서 샤워도 못하고 잤기 때문이고 아무래도 화상때문에라도 하루는 푹쉬어야 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래 처음의 계획대로라면 스완씨에서 하루 머물 예정이었었고 근처에 예쁜 캐라반 파크도 있었기 때문이다.

스완씨의 바다는 에메랄드 쪽빛의 아름다운 동화속의 바다였고 달력그림의 정확히 8월쯤을 채울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캐라반 파크는 그 8월달 달력 바다의 해변과 밀접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샤워도 하고 내일의 여행을 준비도 할수 있었기에 그곳에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쳤다.

텐트를 간단하게 치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시내 구경을 위해 바다 해변을 걸어 시내로 향했다.시내상점에서 긴팔이 있으면 긴팔을 살까 했는데 시내에는 몇개의 커피숍과 레스토랑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선 시내에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동네 이쁘네 이런데서 한번 살아볼까?

꼭 타즈메니아에서 살고싶다는 뉘양스네

아냐 아냐 그냥 살아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는것 뿐이지! 이런곳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찾니?

그래 넌 일이 없으면 손부터 떠니까!

그랬다. 난 일이 없으면 도무지 불안해서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다윈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용할 뿐이었다.

다시 캐라반 파크로 돌아와서 우리는 밀린 빨래와 샤워를 했다.

나는 내친김에 리셉션에서 인터넷까지 하는 호사를 누리면서 오후를 보냈다.

캐라반 파크의 파라솔 밑에있는 벤치에 앉아 지도를 한장 꺼내놓고 다음 계획을 세웠다.

헤이 트레시 난 진짜로 타즈메니아 일주를 하고 싶어. 우리가 내일부터라도 조금 서두르면 1 2일까지 충분히 호바트에 도착할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어깨 화상은 점점 심해져서 움직일 수도 없다구 뭔가 다른방법이 필요해

지름길로 가자 우선 이틀안에 론체스톤에 도착하면 충분히 가능할거야

그래 어차피 동해안 바다 풍경은 오늘 볼만큼 보았으니까

지도상으로는 그랬다. 동해안을 돌아 북쪽에서 내려가는 것보다. 중간의 고속도로를 통하는게 훨씬 간편하게 타즈메니아 일주를 할수 있게 하는것 처럼 보였다.

그 지도에는 물론 등고선 따위는 그려져 있지 않은 관광용 지도 였다.

우리는 우리가 타즈매니아에 올때처럼 간단하게 계획했고 그 계획은 아마도 별다른 변동이

없는한 내일 그대로 실행이 될터였다.

잠들기 전에 시내에서 사온 즉석 복권을 한장씩 긁었다.

난 복권 당첨되면 타즈메니아 택시타고 관광할거야

난 복권당첨되면 하루에 50키로씩만 자전거 탈거야

간절히 기도했지만 역시 우리는 하루에 100키로씩 타야만 했다. 하지만 복권긁는 10분동안 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하루에 50키로씩만 ……

그날 밤도 여전히 파도소리에 취에 잠에 들었다.

마치 내가 뉴질랜드에서 살때 네피어에서 듣는 파도소리처럼 평온했다

 

도로에서 만난 신발을 모아놓은 곳에서 눌라보를 건널때에는 속옷만 걸어놓은 나무도 있고 패트병만 걸어놓은 나무도 있었다.
스완씨에서 시내나가는 도중 나와 트래시는 점프 사진 잘찍는게 소원이다. 이것도 실패!
스파이키 브릿지 호주에 죄수로 온 사람들이 만든 다리 위가 축구화 스파이크처럼 뾰족해서 스파이키~~`
이사진은 7월달 달력그림 하면 되겠다.

우리가 하룻밤을 지낸 스완씨 캐라반 파크 뒤에 파도는 아침이 되니 잔잔해졌고 옆에 텐트와 우리 텐트 뿐이다. 나란히 놓인 자전거가 사이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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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점프 사진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사진을 보니 갑자기 여행가고 싶네요~ ^^

    2010.03.04 1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싸 나도 댓글 친구 생겼다. ㅋㅋㅋ 안녕하세요 유부빌더님 블질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요 .남한테 먼저 글로 인사하는거 엄청 힘들더라고요 유부빌더님의 글에 첨으로 댓글 남겼는데 글보고 재밌어서요 점프할때보다 지금은 10키로 뺐어요 몸이 무거워서 지금은 180에 80키로 왕짜는 언제 나오나 하면서 이러고 있죠 ㅋㅋㅋ 키보드질 열심히해서 꿀손가락 만드는 그날까지 조은하루 하셔요!

      2010.03.04 10:50 신고 [ ADDR : EDIT/ DEL ]
청카바의 여행기2010. 3. 1. 11:20

나의 20대에는 온통 머릿속이 여행으로 가득 찼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잘 몰랐던 애송이었었다.

남들이 하는것처럼 따라하고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던 아웃사이더였다.

매 방학때마다 난 베낭을 메고 어디든 가야만 직성이 풀렸다.

난 그제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아직 에너지 넘치는 20대임을 실감하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여행에 대해 곱씹어보고 난 뭔가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매우 조그마한 움직임이었다.

처음에는 인식조차 되지 못한채 그저 여행의 설레임의 일종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 존재가 윤곽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동안 그토록 알수 없었던 하고싶은 이었다.

구체적인 형상이없는 그것이었지만 점차난 그것을 형상화 시키고 싶었다. 잠시 여행을 접고 대학을 졸업하던해 남들처럼 면접을 보고 회사에 입사했다. 연봉이라는 것으로 차도 구입했고 월셋방도 얻었다. 그때까지 난 그것이 내가 하고싶었던 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안정이라는 이름의 무엇은 생각보다 기대보다 훨씬 형편없는 것이었다. 무엇을 보고 내가 짖어대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마치 동네의 어느개가 짖기 시작했을 때 따라 짖는 것처럼 나도 상사가 하는 말을 따라서 짖어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1년이 조금 넘는 회사생활에서 천만원이 약간넘는 현금과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신용 대출을 받고서 피폐해진 내 영혼에 달콤한 물을 주기로 했다. 그것은 친구들과 동기들의 표현에 의하면 과감한 결단이었고 신속한 행동을 필요로 했다.

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이내 난 내가 무엇을 갈구 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자유였다. 돈도 자유롭게 벌고 싶었다.

어쩌면 어설픈 결단에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나 난 내 자신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꼈다.

그것으로 난 된것이었다.

가슴속에 어렴풋이 꿈틀대던 것은 어떤 이아니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20대의 꿈이자 열정.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0대가 된 지금도 그것은 내마음속에서 아직도 꿈틀대며 나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내가 청카바인 이유는 바로
단지 내가 즐겨 입기 때문이다. 일년 365일을.....
대학 3학년 엠티때 여자 후배가 술을 이빠이 먹고 소리를 질렀다.
"거 누구야 ...있잖아 왜 일년내내 청카바만 입고 다닌갸 오라구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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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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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캐나다,일본,뉴질랜드 4개국 워킹을 마치고 호주에 안착한 청카바입니다.
워킹비자중에 가장 까다로운 일본비자를 준비하신다면 당연히 에세이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쓰고 있을까?
어떻게 합격할수 있을까? 하구요
2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도 없는데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나마 제가 생각했던 방법들을 알려 드리기 위해 몇자 적습니다.
카페나 블로그에서 다른사람이 쓴글을 참고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남의것을 따라하지 마십시오 설령 참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비슷한 내용들이 접수되겠습니까?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금방 압니다. 얼마나 많이들 읽어봤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첫 문장만 읽어도 통밥이 나올겁니다.

두번째는 진부한 주제는 피하라 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일본은 바로 에니매이션과 경제대국 뭐 이랬습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더군요 애니메이션과 ....뭐뭐뭐......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대부분의 지원자가 한번쯤은 생각해본 주제들입니다.

일본어로 써야 가산점이.......
글쎄요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입니다.
합격자들의 몇몇은 영어로 접수하고 합격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구요 하지만 절대 내용은 일본스러워야 하겠습니다.
가급적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열정정도를 언급하시는것도 좋을것 같구요

에세이가 중요한 이유는 다른 서류들은 거기서 거깁니다.
말그대로 결격 사유만 없으면 통과하죠 경쟁률이 심하기 때문에 에세이에서 당락이 좌우가 되는 겁니다.

이제 슬슬 궁금해 지시죠 '지는 얼마나 잘쓴거야?'
저는 영어로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에 대해 적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꽤 유명해 졌지만 일본내에서는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음을 착안한거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써내려 간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열 종대로 세번 쯤 왕복하는 길이겠죠!
내용자체는 A4 반장도  되지 않았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일본적인 생각을 해볼까하고 만화책 50권을 하루에 다 읽었습니다. 새우깡 3봉하고 오징어 5마리 먹었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 읽고 나니까 이제 써야겠다라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아 그리고 영어 교수나 영어 잘하는 친구한테 한번 보여주고 교정은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수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감을 잡으셨나요?
결론은 남과 다르게 ....대사관에 일하는 직원에게도 흥미로울 주제로....그리고 일본어가 안된다면 영어로 가장 일본스럽게 ......그리고 간단 명료하게...가 포인트 되겠습니다.
그 다음은 운에 맡기세요 .....
일본 신주쿠에서.
나가사키 글로버 가든가는 길목에서

일본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관련글은 ....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1편 (일본에 워킹으로 가게 된 이유 ?)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2편 (비자 신청)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4편 (현지적응하기 上)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4편 (현지적응하기 下)
[각국 워킹홀리데이] -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들이 가져야할 영어에 대한 자세!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낭만이 있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에서의 워킹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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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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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4.05 02:18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유서나 이유서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진부한 형식보다는 내가 왜....내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적는게 최고지요..짧고 명쾌하게 ...이게 포인트인것 같아요!

      2010.04.05 11:0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