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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떡실신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한국 물건들! 평소 내눈에는 '당연'한 것들도 호주인 와이프의 입장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져 놀래는 경우가 가끔있다. 서로다른 문화에서 20년 이상씩 살다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살고 있으니 서로 달리 보이는 것들이 오죽 많을까? 그렇게 호주에서 결혼을 하고 한국에 결혼식을 하러 갔을때 호주 식구들이 놀라던 '한국의 물건들' 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본다. 한국인 가정에 필수품인 '김치냉장고'트래시도 한국인의 김치사랑 만큼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내가 김치를 담글 때면 어김없이 "우 매워 매워 ....근데 또 담그는거야?" "다 먹어가니까! 김치냉장고만 있다면....." "뭐? 김치 냉장고가 뭐야?" 간단하게 설명하니 눈이 똥그래져서 다시한번 묻는다. "그래! 그러니까 냉동고 만한 냉장고가 모든 가정에 다 있단 말이지?.. 더보기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서양인'에 대한 착각 내가 처음 외국인을 만난것은 중학교 3학년 영어시간이었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던 내게 그 영어선생님은 한달에 한번 우리 중학교에 와서 한시간씩 영어회화를 가르치시는 분이셨다. 키가 190이 훌쩍 넘는 키에 한국에서는 맞는 신발이 없어 가죽으로 직접 만들어 신고 수업에 들어왔다. "허거덕 ...크다." 퇴근할때는 한국형 할리데이비슨인 00오토바이를 타고가는데 오토바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 아마 그때 부터인가 보다, 외국인에 대한 착각이 시작된것이.... 노홍철이 어렸을때 더빙된 외화를 보고 이런 명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난 노랑머리 애들도 한국말을 잘하는줄 알았어 ....우와!" 키가 나보다 훨씬 클줄 알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시작한 배낭여행! 첫 목적지는 호주였다. 왜 호주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캥.. 더보기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착각! 호주 여행중에 백패커에서 친구가 없이 혼자서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할일이 정말로 없었고 친구도 없었기에 ... 그러다 벽에다 빵 하고 공을 세게 질렀는데 ...... 그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나도 놀랐지만 주변에 있던 유럽아해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눈빛들....... '이런 친구도 없는 녀석.....' 동양인은 근엄하고 과묵하고 심지어 부끄럼까지 많다?나는 술을 왠만큼 먹어서는 취하지도 않는다. 내가 술을 잘먹어서가 아니라 술마시면서 하는 말이 워낙에 많아서 마셔봤자 말하는 에너지로 이내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내가 과묵하다고? 단지 분위기가 니들끼리 똘똘뭉친 분위기라 친해지기 힘든것 뿐이라구! 영어하는 아해들이 내 블로그 와서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일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 더보기
외국인이 떡실신 하는 한국의 것(?)! 그동안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에 대해 포스팅을 하면서 열렬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그냥 있는 그대로 쓴것 뿐인데 ....아직 못쓴이야기가 훨씬 많은데......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글을 적는 나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 뭐! 회사 입사 면접에서도 제일 못한게 자기소개 였지만......어쨌든 내용을 이해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친환경 청정 농업군에서 태어나..... 전남 함평이라는 친환경 청정농업군 출신 백씨 집성촌에서 2남 4녀중 막내로 촌놈중에 촌놈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한민국의 노멀한 청년으로서 군에 입대를 하였다. 군대를 입대하고 나서 내 인생이 크게 바뀌었는데 다름아닌 군단위의 행정단위를 최초로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제대후 3달 .. 더보기
호주인 신부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무(無)주례 결혼식! "윌 유 메리 미?"라고 지금의 신부에게 묻고 대답을 채 듣기 전에 나의 고민은 다름 아닌 주례였다. 크리스찬이 아니라서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패스하고 ~ 대학교를 열심히 다닌 종자도 아니라서 대학 교수님도 패스~ 내가 아는 정치계나 공무원은 우리동네 이장님이 다였으니 주례는 결혼식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한국사회에서는 주례도 사서(?)할수 있다니 놀라운 일일 뿐이었다. 평생에 한번인 결혼식에서 처음보는 사람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다짐할수는 없는일~ 그래서 결정했다. 초특급 버라이어티 무주례결혼식으로 어찌되었든 장소는 필요했으니 예식장을 대관했다. 당시 한국에는 만삭인 우리 셋째누나가 몇군데 예식장을 돌아다닌 결과 앞으로 6개월간은 예약이 차 있을정도로 예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