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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

여행은 마음의 거울이다.

여행이란 결국은 또 다른 곳으로의 끊임없는 이동이다. 나의 첫 배낭여행이었던 호주에서 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난 진정한 자유의 냄새를 맡았다.

군대생활의 22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게 자유란 곧 희망이라는 단어와 동급이었다.  

호주에서 만난 유럽인들과 일본인에게서 난 자유의 냄새를 맡았다. 그들은 한국인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색다른 냄새를 내게 전달해 준 셈이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여행이란 바로 타인의 자유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라고 나름 궁색한 정의를 내렸다.

한국에서의 대학4년의 꽤나 즐거운 것이었다.

꽤나 자유로운 학사시스템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공대생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실컷 놀고도 학점 따위는 벼락치기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방학이 되면 언제나 배낭을 짊어졌다. 중국 시안에서 카슈카르까지 가는 60여 시간이 넘는 기차에 앉아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그들의 목적지에서 배웅했다.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옥편을 찾아가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많은 시간에 난 한곳에 앉아서 뷔페처럼 돌아가면서 차례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난 여행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내렸다.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커뮤니케이션이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몇 번의 여행으로 나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갔다.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라는 대학생활은 취직과 동시에 끝이 나버렸다.

신입사원이라는 딱지를 가슴팍에 붙이고서 시작한 2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은 친구의 자살과 함께 끈 떨어진 연처럼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다. 그 동안 갈망했던 자유를 떠나 떠나기 시작했다. 끈 떨어진 연처럼 일본에서 3개월 뉴질랜드에서 4개월 그리고 다시 도착한 호주 호주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호주를 떠날 때마다 난 다시는 이곳을 올 일이 없겠지 하는 상념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어떤 질긴 인연인지 모르지만 호주는 나를 또다시 불러들였다.

뉴질랜드에서 나의 여자친구가 된 트래쉬와 함께 시드니에서 한달 그리고 다시 그녀의 전근에 맞춰서 퍼스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호주의 눌라보 평원을 건너는 것은 두 번째였다.

4000키로가 넘는 거리를 자동차로 여행한다고 하면 누군들 미친 것 아니냐고 되묻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두 번째였고 내게도 두 번째였다. 우리는 지루한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직진에 또 직진 어쩌면 할말이 다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거리다.

그레이트 오션 리프에 들렀고 멜번에서 회사 동기였던 친구도 만났다. 그리고 또다시 지루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광대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서쪽을 향해 엑셀을 밟을 때면 어느새 석양이 지는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석양이었다. 밤에는 캥거루와 야생동물들이 난리를 치기 때문에 일찌감치 운전을 포기하고 가까운 캐라반파크에서 캠핑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걸려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보더에 도착해 음식물을 신고 하고 또다시 이틀을 더 달려서 웨이브락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또다시 반나절을 더 운전해서 여자친구 집 맨지멉에 도착했다.

참 지루한 여행이었다. 서로가 지치도록 운전을 했다. 기름값만 거의 700불 가까이 소비되었다. 우리는 그 지루한 여행을 마치고 나자 마치 진정한 커플이 된 듯 했다. 그리고 맞이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의 환대에 배부르게 먹고 오랜만에 등 따신 침대에 누워 한가로움을 즐겼다. 그리고 다시 퍼스로 와서 그 동안 쓴 돈을 충전해야만 했다.

바쁜 생활을 했다. 그 동안 떨어진 돈을 모으기 위해서 신문에 광고를 내가면서까지 인테리어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8개월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버렸다.

 

또 다른 여행을 위해 배낭을 메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군인 트래쉬의 예고에 없던 전근

퍼스에서 다윈까지 이동을 해야만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또다시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다윈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

지름길은 4000키로 해안을 따라 돌면 5000키로

지도를 보며 가고 싶은 곳을 몇 군데 찍어보니 당연히 해안가 쪽으로 방향이 나왔다.

이번 여행은 차량 두대로 이용한 이동이 될 것이었다. 여행경비가 두 배가 되겠지만 다윈에 도착해서 엉뚱한 중고차로 고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여나 중간에 차가 퍼지기라도 하면 도저히 방법이 없긴 했지만 그렇게 퍼스의 트래쉬 가족들과 손을 흔들고서 운전대를 잡았다. 트래쉬가 앞장을 서고 나는 뒤에서 운전을 하면서 서서히 퍼스를 벗어나가 시작했다 고작 20분여를 운전하니 벌써 사막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트래쉬의 표현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진정한 호주라고 한다.

주유소에 들러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제랄드톤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제랄드톤에서 다시 연료를 채우고 북쪽으로 향했다. 도로에 치여 죽은 캥거루와 소가 드러누워있다. 내가 처음 호주에 와서 본 캥거루도 살아있는 캥거루가 아닌 아스팔트에 차 바퀴에 수백 번 밟혀 납작해진 캥거루였다.


10
시간의 운전으로 오버랜더라는 조그만 주유소 뒤편 캐라반파크에서 텐트를 쳤다.

다음날 멍키마이아까지는 150키로 거리다. 가져온 버너에 물을 끓여서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노곤한 몸을 조그만 텐트에 뉘였다. 마치 내가 직접 달려온 것처럼 사지가 노곤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멍키마이아에 돌고래를 보기 위해 서둘러 운전을 했다.

 멍키마이아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돌고래가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수십 마리가 직접 해안가까지 오기 때문이다.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해안가에서 카메라를 들고 신기한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도 그 무리에 끼어 사진을 찍고 잠시 해안가를 거닐며 오늘의 여행계획을 세웠다.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코랄베이가 목적지였다. 코랄베이는 400키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운전을 하면서 코랄베이에 정오가 약간 넘어 도착했다. 서둘러 스노클링을 준비했다. 아직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스노클링을 하기엔 충분한 수온이었다. 동부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보다는 탁하지만 바로 손이 닿는 거리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물고기에 내가 겁을 먹을 정도로 커다랗고 겁 없는 고기 떼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코랄베이의 캐라반 파크에서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서 조그만 텐트에서 트래쉬와 내일 여행을 계획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텐트를 접고서 카라타라는 곳으로 다시 엑셀을 밟았다.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에서 보던 사람 키만한 개미집들이 군집해 있다. 그곳은 마치 태곳적 시절부터 사람의 손은 닿을 수 없는 개미들의 신성한 곳처럼 개미집은 완고한 성처럼 보였다. 그런 개미집을 수 만개쯤 지나쳐 카라타에는 오후 다섯 시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몇 주전에 여행을 시작한 트래쉬의 언니 세라가 텐트를 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바비큐로 포식을 하고 근처 산책을 하면서 이틀동안 에너지를 충전했다.

 
세라는 그곳에서 차 앞 유리에 금이가 교체를 하고 목적지인 이름 모를 국립공원으로 캠핑을 준비했고 우리는 다시 브룸을 향해 북쪽으로 엑셀을 밟았다.

브룸은 호주의 유명한 휴양지다. 특히 석양을 보며 해안가 낙타 산책이 유명한 곳이었다.

석양이 지기 30분전에 우리는 도착해 피쉬엔칩스를 사서 해안가에 앉았다. 석양은 대단했다. 인도양의 석양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다 마침내 바다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날 머문 브룸의 캐라반파크는 70년대 히피족의 본거지처럼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다. 트래쉬는 샤워조차도 거부한 채 브룸에 치를 떨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다음날 서둘러 일어나 지저분한 캐라반 파크를 서둘러 떠났다. 이제부터는 동쪽으로의 여행이다. 점심때쯤 크나나라에 도착해서 연료를 충전하고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웠다.

그리고 드디어 노던테리토리에 입성했다. 미처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와와 인사도 제대로 못나눈채 그렇게 노던테리토리의 최대 차량속도인 130에 맞춰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홀스크릭이라는 조그만 에버리지널의 동네에서 텐트를 쳤다. 여기저기서 개 짓는 소리와 에버리지널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잠시 놀래다가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도 역시 동쪽으로 엑셀을 밟았다. 수십 개의 강을 건넜다. 다리 위에는 차선이 한 개밖에 없어서 마주 오는 차에게 양보를 해야 했다. 물에 잠긴 도로도 한번 건넜다.

노던테리토리의 도로사정은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로드트레인이라고 불리는 트래일러 세대짜리의 대형 트레일러 트럭들이 여기저기서 오고 간다.

 빅토리아 리버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강가를 거닐었다. 울창한 수풀을 지나칠 때 지나가던 왈라비가 혹시나 악어일 까봐 어찌나 서로 겁을 먹었던지 신발끈을 꽉 조여 맸다. 여차하면 36계 줄행랑을 칠 예정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하늘에 가득 찬 별을 보며 맥주한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6시간의 운전으로 드디어 다윈에 도착했다.

다윈의 백패커스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해 보였다. 성별 각방을 쓰고 있는 호스텔에서 남자는 자리가 없어 난 여섯 시까지 기다려 겨우 체크인을 하고 트래쉬와 8일간의 긴 드라이브를 마쳤다. 평균 하루에 800키로 정도 운전을 했다. 둘이 한 여행이었지만 각각 운전을 해서 혼자 한 여행처럼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나왔던 과거들 지금의 상황들 그리고 가까운 미래 머나먼 미래 혼자 하는 여행은 언제나 조금 스스로를 성숙시키는지도 모른다. 트래쉬에게 이런 말을 하니 트래쉬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든단다.

나와 트래쉬는 이번 여행으로 이렇게 조금 더 성숙한 커플이 되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여행은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정의가 조금 변했다.

여행은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마법의 거울이다. 라고 말이다.


호주 노던 테리토리의 어느 캐라반 파크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
쉘비치에서 미친척하고 귀여움 떠는 사진 찰칵 보이는 해변은 모래가 아닌 조개가 부서져 만들어진 비치 그래서 이름하야 Shell beach....


트래시 키만한 개미집 뒤로 보이는 조그맣게 보이는 수많은 돌들이 개미집이라는 거.....
다윈으로 올라오는 길목에서 혼자 수퍼맨 놀이 하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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