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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짧은 생각

그리고 모든것이 새로 시작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재회를 하고 신발끈을 풀고 집에 들어서자 마자 이삿짐을 싸야 했다.

이삿짐을 싸는 것은 배낭을 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당최 정리 할수 없는 복잡한 항공기 배선같은 모양세다.

아내는 그런 복잡한것을 처리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천천히 하나하나 정리하고 전화를 걸어 날짜를 조정하고 가격을 협상하고 내게 알려준다.

그럼 심오하게 콜라를 마시면서  하고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이다.

 

호주에서 이사를 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복잡한 절차도 절차지만 나가면서 집을 아예 새집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눈에도 굉장히 부당해 보일 정도로 부동산의 행패가 심하다. 지은지 10년이 되어가는 집인데 새집처럼 청소를 해놓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증금에서 따로 청소비용이나 수리비용을 청구한다. 물론 사는 동안에도 페인트가 벗겨지지 않게 노심초사해야하고 벽에다 못하나 박는 일에도 부동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말그대로 렌트 하우스 잠시 집을 빌리는것 뿐이다.

한국의 전세처럼 생각했다간 부동산 블랙리스트 이름이 올라가 다시는 렌트를 못해 평생 캐라반 파크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페인트에 묻은 때를 제거하느라 머리가 움큼은 빠졌고 청소 화학용품에 손가락에 피부들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해야 이유를 찾을수 있어야지….’ 동기가 없이 사는 것은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드디어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와서 짐을 싸고 컨테이너에 집어넣었다.

짐들은 3개월 정도 에들레이드 창고 어딘가에  쳐박혀 잠수를 탈테다.

마치 심해에서 잠을 자는 커다란 수염고래처럼 깊은 정적속에서 ….

 

내차는 헐값에 다윈에 사는 차량정비사에게 넘겼고 아내의 마쯔다 세단에 절반 가득 창고에 들어가지 못하는 식료품이나 캠핑 장비가 가득 실어졌다.

아내는 임신 33주차인데 다윈에서 퍼스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겠다고 우긴다. 물론 언성까지 높여가면서 비행기를 타고 가라고 설득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황소 고집도 저리 가라 정도인 아내의 고집을 꺽는데는 당연히 실패했다. 어쨌든 여행이란 우리에게 허락된 최고의 시간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2년간 살면서 정들었던 다윈을 떠났다.

눈물이 찔끔나고 마음이 텅하고 빈것 같아 떠나는 차에 시동을 걸기 전에 서운함에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사실은 아주 홀가분해서 고속도로에서 만세까지 불렀다. 그동안 습기가 많은 혹독한 더위에 아주 지칠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4500키로미터를 3 반만에 주파했다. 저녁에는 캥거루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았다. 밤에 특히 야생동물들이 날뛰기 때문이다. 어른만큼 덩치를 자랑하는 캥거루를 차로 치었다가는 범퍼가 온전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맘대로 차로에서 누워있는 소들까지 생각하면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는게 낫다.  계산해 보니 하루에 거의 1200키로 넘게 운전한 셈이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차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보통은 트럭이나 캐라반들로 도로는 붐빈다. 트럭과 캐라반은 거의 시속 90키로로 가기 때문에 이것들을 추월해야하는 일은 여간 성가신일이 아니다.

오는 내내  3일동안 캠핑을 했다. 첫날은 전에 퍼스에서 다윈으로 올라오면서 머물렀던 홀스크릭(halls creek)에서 텐트를 쳤다. 비가 왔는데도 땀을 흘리면서 잠을 잤다. 그만큼 습하고 기분 나쁜 날씨였다.

둘째날은 포트헤드랜드에서 캠핑을 했는데 상당히 멋있는 캐라반 파크였다.

유명한 광산 도시여서 멋진 풍광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멋진 바다가 있는 곳이었고 캐라반 파크는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운이 좋아 멸종 위기에 있는 보호종인 거북이까지 봤다.게다가 산란중이어서 알을 낳는 모습까지 볼수 있었는데 이일은 자세히 나중에 블로깅을 해보려고 한다.  셋째날은 미카라싸라는 내륙에 있는 도시에서 텐트를 쳤다. 도시는 에버리진으로 가득 찼고 뜨네기로들로 가득찬 탓인지 캐라반 파크의 시설은 조잡했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텃새로 가득했다. 잔디위에 차를 주차했더니 주인도 아니면서 그곳에 주차를 하지 마라고 명령조로 말을 해서 일단 째려보고 텐트옆에다 주차를 했다. 그래도 성에 안찬 모양이다. 허리에 손을 얹고서 나를 본다. 시동을 끄고 차문을 열고 더원 하나하고 인상을 쓰며 물으며 차문을 닫고 돌아섰다. . 덩치에 아니 험악한 인상에  흠칫한 모양이다.

그대로 등을 돌리고 자기 케라반으로 돌아가 창문으로 흘끔하고 쳐다본다.

아무튼 기분나쁜 캐라반이다. 게다가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일찍 길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퍼스에 도착하기 전에 피나클스를 보고 퍼스에 도착했다. 피나클스는 풍화된 돌들이 사람키만하게 서있는 돌들인데 기이한 자연 경관중 하나여서 언제나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역시…..그림엽서가 훨씬 좋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스펙타클한 풍광은 아니었다. 여전히 신기하기는 했지만

불과 일주일만에 다시온 퍼스다. 퍼스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화창했다.

도대체 어떻게 거의 일년내내 이런 아름다운 날이 계속되는지 의문이다. 내가 이런곳에 살게된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다음날 병원에 들러 임신한 아내와 검진을 받고 병원 예약을 하고 처갓집으로 향했다. 처갓집은 퍼스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고향 함평까지 가는 거리다. 갈때마다 비교를 하는데 아내는 호주에서는 이건 근거리라구라며 비웃곤 한다.

다행히도 거의 차는 막히지 않고 풍경도 좋다. 그래서 항상 중간에 멈춰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곤한다.가끔은 한국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맥반석에 구운 오징어가 굉장히 그립기도 하다.  

 

작년에는 아내와 함께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을 했기때문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했다. 올해는 가족 모두가 처갓집에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아주 시끌벅적 할테다. 4자매와 부모님 그리고 4명의 조카들…..게다가 조카들은 미운오리라고 불리우는  7살에 접어들었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일년중 가장 휴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장장 2주일을 인터넷도 되지 않고 핸드폰 따위는 터지지 않는 곳에서 보내야 한다. (처갓집은 목장을 한다. 굉장한 시골이다.)

조금은 답답할지도 모르지만 가끔 인생에서 이런 생활이 필요할 때도 있다. 종종 이런 생활을 하면서 풍요로운 삶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로 결정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이 정말로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처가 식구들은 언제나 이벤트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캠핑이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10일간은 처갓집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덴마크라는 시골마을에서 해수욕을 하면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나에게 캠핑과 호주는 뗄려야 뗄수 없는 단무지와 자장면 같은 관계인 모양이다.

 

가족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항상 내게 한국의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묻곤한다. 벌써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지 3년째이지만 질문은 거기서 거기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이곳과는 많이 다르지요연인들의 날과도 다름없어요! 그런날은 가족과 함께 있는게 아니라 연인과 보내는 날이죠! 아이가 있으면 놀이동산을 거나 조금은 특별한 공휴일이라고나 할까 조금은 낭만적인 개념이죠!  석가탄신일도 공휴일이지만 그때하고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니까요!” 정도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새해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연휴이니 이곳의 크리스마스와 비슷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질문은 거의 매해 듣는다. 대부분의 외국사람들은 한국인들이 기독교가 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놀라워 한다. 그건 한국사람인 나도 놀라운 일이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려한다.

아마도 내년 1 초까지는 블로깅을 하지 않고 쉬려고 한다. 인터넷이 되지도 않고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이나 읽으면서 아내와 수다도 떨고 조카들과 재롱도 떨어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재롱은 조카들이 떤다. 그런면에서 나도 어른이 되어버리긴 모양이다. 아차 내년이면 서른 둘이 된다.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다. 책임도 아니고 ……그리고 아빠가 된다.

아빠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 진다. 그건 책임이다.

그리고 모든것이 새로 시작된다. 다윈에서 이사오면서 하던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이곳 서호주에서도 2개월 뒤에는 다시 에들레이드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전에 했던 일을 계속하는 거도 힘들테다. 게다가 장비도 에들레이드로 죄다 보내버렸다.  지금 걱정을 한다고 기도를 한다고 해결될 일들은 아니다. 일단 책을 읽고 누워서 낮잠을 자고 해수욕을 하고 선텐을 하고 나서 생각해 봐야겠다.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피 크리스마스그리고 해피 이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는 뭐를 했더라….하는 잡념이 들지만 역시 그런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번쩍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