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휴학 했던 학교로 복학을 했다.
나른한 가을 오후였다.
등나무 아래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빨아 먹고 전공책 베개 삼아 잠이나 잘까 하다 늦가을 따가운 햇살에 포기하고 담배 한대를 피우고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당시의 나는 군대도 제대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일년 휴학마저 한 늦깍이 학생(?)이었다.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몇 명의 얼굴 아는 후배들만이 있었을뿐.
이외수 소설속의 장외인간이 되어가는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아웃사이더라고 불리우는 모습이었고 스스로 왕따를 자칭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이름인 '뽕따'를 닮아 귀엽다고까지 생각을 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 시니컬 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시니컬한 첫 만남!
룸메이트는 조기 취업을 해서 덩그러니 나 혼자 방을 쓰고 있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룸메이트의 공간마저 혼자쓰고 있었으므로 불편하다고 불평하기엔 오히려 호사를 누리는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휴게실에서 담배를 몇대 더 피우고 다 식어 빠져 표면 위에 하얗게 프림이 굳어버린 커피를 홀짝거리며 니코틴의 씁씁함을 커피의 밍밍함으로 달래고 있었다.
"형 뭐하세요?"
"응! 만화책이나 빌리러 갈까 생각중이야."
"뭐야? 책빌려오는 길이야?"

이것저것 많이도 빌려왔다.
후배는 키가 190 가까이 되는 친구였다.
키 큰놈들이 싱겁다더니 이 친구도 꽤나 싱거운 편이어서 평소에 말을 걸어도 대꾸는 "네 ,아니오"로 간단한 편이었다.
"나도 좀 빌려줘 만화방까지 걸어가기가 귀찮네"
"형 이거 보세요! 형이 좋아할것 같은데요?"
"왜? 야한 삼류야? 69? 제목에서 이거 양아치 3류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후배가 나가고서도 한참을 휴게실에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손때를 탈 만큼 타서 앞 표지 몇 장이 떨어져 나간 너덜너덜해진 만화책 몇 권을 더 읽고서 방으로 돌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기숙사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들은 황량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것이었고 나는 한 살을 더 먹을 것이었다.
"다 조금씩 변해가는데 나는 도무지 나아가질 않네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대 이상의 후폭풍!
기말고사가 돌아왔다. 정신없이 바빠졌다고 말하면 새빨간 거짓말 이고 여전히 여기저기 정처없이 어슬렁거렸다. 
"남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면 장학금도 받고 그런다는데 ....."누나가 중얼거린다.
"학교도 국립 다니는데 장학금까지 받으면 사립 다니는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안돼!"
공부에 취미도 없었고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초겨울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표류하고 있었다.
등나무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기에는 날씨가 추었고 도서관에 가자니 시험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로 붐벼서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기숙사로 돌아와 담배를 몇대 피우고서 며칠 전에 후배에게 빌린 69를 펼쳐 들었다.
3류급의 야한 소설을 생각하며....
'어라 이거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잖아? 이거 생각보다 센데...!'
나의 바램(?)은 머지않아 깨어졌다.
69는 작가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69년도를 뜻하는 것이었고 그때 있었던 작가의 학창시절의 작은(?) 헤프닝들을 적은 것이었다. 어쨌든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내용이었지만 몰입도는 굉장한책이었다. 단숨에 읽어나갔다. 시대가 다를뿐 주인공인 겐과 나는 비슷한 점이 꽤 있었다.
지나친 깡촌이라는 설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버스가 들어와 동네 어르신들이 신작로에서 고사를 지낸 나의 고향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억압받는 소설속의 그들의 모습은 나의 고등학교와도 별다를 바 없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작은 반란은 언제나 선생들의 몽둥이 세례로 막을 내리는 것 또한 일치했다. 주인공인 겐과 단짝친구인 아다마는 학교 바리게이트를 계획한다.
동기는 베트남전을 반대를 하고 시대 상황에 저항하는 반공이 아니라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끌다"가 목적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불순(?)했지만 결과는 그리 불순하지만은 않았다.
기성세대의 안일함에 똥침을 놔주었으니까!.
그들은 실제로 거사(?)를 진행중에 교장선생님의 책상에 실제로 똥을 누기도 했다.
누군가가 아침에 깨끗이 치워 그들이 계획한 기성세대에 대한 똥침이 우스워 지진 않았지만
'똥' 이란 왠지 진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약같은 성분이 있기에..
어느때처럼 선생에게 몽둥이 세례를 받고 교실로 돌아와 앉은 겐은 신나게 무용담을 친구들에게 전파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즐거운게 이기는 거다.'
아무리 고개를 수그리고 선생님에게 미안한 척 해봐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뿐더러 1엔어치 동정조차 받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주인공 겐은 반성보다는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떠벌리는 편을 선택하고 주위의 친구들은 그의 반란으로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대리만족의 통쾌함을 느낀다.
그렇게 아다마와 겐은 무기정학을 먹고서 집에서 근신을 하게된다.
그리고 원래 반공 정신과 반전에 관한 정신 따위는 멸치똥만큼도 없던 그들은 페스티벌이라는 희망 하나만으로 무기정학이라는 지루한 형벌을 버텨낸다.
그들에게 있어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가진것 없는 양아치가 신념을 갖게 되는 건달이 되기 위한 도움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역시 건국적이지 못했다.
그 나이 때의 또래들은 이해 하겠지만  모든 관심사와 에너지의 소비 근원은  "아리따운 여학생" 이었다. 책은 페스티벌을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 작가로 꽤나 이름을 날리는 겐 그리고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아다마와의 2번의 만남을 적는다. 작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려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성을 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나에게 한때 그렇게 소중했던 친구 아다마가 나를 보러 왔는데 결국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술한잔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라는 독백을 할때 나의 학창시절에 엉망진창으로 선생님들에게 몽둥이 세례를 받고 좌충우돌했던 청춘과, 함께 우왕좌왕 했던 친구들이 떠올라 눈물마저 고일뻔했다.
책을 덮고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 달빛 마저 스산하게 황량한 가을 들판을 비추고 있었다.
이미 식어 버려 창가에 버려져 있던 커피의 밍밍함으로 담배를 한대 피웠다.
다음날 난 도서관에서 무라카미류의 책을 몽땅 빌려왔다.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69라는 책은 내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게 만들었다.
프로필에 적힌 그의 또 다른 책을 읽으면서 대학에 입학하고서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유쾌한 청춘을 꿈꾸다.
그리고 난 일본 여행을 준비했다.
목적지는 작가의 고향인 규슈였다.
당시의 나는 나가사키에 머물고 있었는데 틈만 나면 미군기지가 있는 류의 고향인 사세보까지가서 그 동네 명물인 햄버거를 먹기도 하고 술집들을 전전하며 무라카미류에 대해 묻곤했다.
그렇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무라카미 류와 함께 학교를 다닌 "못생긴 여학생" 을 만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굉장히 특이했어! 음악이나 책에대해서 굉장히 박식하면서도 못된 짓을 골라서 했지"
라는 대답을 들었다.
씨익 웃음이 나왔다.
그는 현재 작가뿐만이 아니라 영화 감독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영화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스폰서 만은 언제나 줄을 서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류의 "유쾌한 에너지에 반한 사람들' 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여행은 즐거웠다. 마치 무라카미 류의 장난스러움처럼 가볍고 건전하지 못한 동기였을지언정 결과는 즐거웠다.
"즐거운게 이기는거다" 라는 무라카미 류의 69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쾌함을 원하는자 손가락 추천 발사!

큐슈 사세보 서점에서 만난 69 책은 마치 명동 한복판에서 시골 동네 형을 만난 반가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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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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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하르

    심심해서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또하나의 재미있고 유익한 블로그를 찾았네요.

    이렇게 내맘에 드는 블로그찾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서...

    혹자는 블로그리스트나열해서 베스트부터 하나하나 찾아보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절대 그렇게는 찾을 수 없다는 내 경험.

    주인장께서는 굉장히 주의력과 관찰력이 있으시네요.

    즐겨찾기에 추가해서 아마도 이 블로그에 뻔질나게 드나들것같은 예감 흐흐흐흐흐.....

    2010.06.03 10:34 [ ADDR : EDIT/ DEL : REPLY ]
  2. 지구인

    오늘 아침 발견한 청카바님의 블로그....근무 중 틈틈이 잘 읽고 있어요...즐겨찾기 추가요~

    오늘 하루 읽는 즐거움을 주셔 감사합니다... ^^

    2010.06.03 11:21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지구인님 제가 활동했던 동호회에도 지구인님이 있었는데 ..혹시...

      2010.06.03 20:05 신고 [ ADDR : EDIT/ DEL ]
  3. 뚜비

    정말 재밌는 블로그.단숨에 모든것을 읽게한...ㅋㅋ 청카바님이 하루에 하나씩만 읽어달라는 청 아닌 청을
    들은지라.오늘부턴 하나씩만 읽고갑니다.늘 새로와요.^^

    2010.06.03 14:20 [ ADDR : EDIT/ DEL : REPLY ]
  4. 앗싸가오리

    옛날 학교 다녔을때 추억이 하나둘씩...
    저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중학교 수학여행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ㅎㅎㅎ

    중학교 풋풋했던 학창시절 여자친구..
    지금은 뭐할까??ㅎㅎㅎ
    갑자기 생각이 나는군요~ㅎㅎ
    청카바님의 어릴적 추억들도 들려주세요~
    매번 눈팅만 하다가..
    글 남겨보네요^^

    2010.06.03 17:10 [ ADDR : EDIT/ DEL : REPLY ]
    • 앗싸 가오리님 안녕하세요 ..여친 없으시죠? 그러면 상상은 무료...ㅎㅎ 어릴적 추억이라면.....내일 블로깅에 조금 나옵니다. ㅎㅎㅎ 보러오세요 ..낚시질?

      2010.06.03 18:57 신고 [ ADDR : EDIT/ DEL ]
  5. 무라카미 류의 책중에 그리 유쾌한것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서점에 가서 찾아볼 생각 입니다.

    2010.06.04 20:45 [ ADDR : EDIT/ DEL : REPLY ]
    • 강추합니다...저는 일본어판으로도 갖고 있고 만화로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만..영화는 아직....영화는 재미 없다더라구요

      2010.06.06 08:40 신고 [ ADDR : EDIT/ DEL ]
  6. 요즘인기절정 스타일와우 <--검색해보세여 남자옷은 요즘대세더라구여396x

    2010.06.07 04:02 [ ADDR : EDIT/ DEL : REPLY ]
  7. 한성금

    즐겨찾기 해났어요. 글 재밌게 유익하게 읽고 있어요. 세계로 여행은 못가고 눈으로 즐기고 있어요.

    2010.06.07 16:38 [ ADDR : EDIT/ DEL : REPLY ]
    • ㅋㅋㅋ 꿈은 이뤄지라고 있는것이니까요 ..드림스 컴 추루가 되는 그날까지 ..

      2010.06.07 20:34 신고 [ ADDR : EDIT/ DEL ]
  8. 이쁜 서윤맘

    오늘 블로그를 발견해서 열심히 읽고 갑니다.
    고등학교때 저도 소심한 반항아였는데,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담임선생님이 싫어서 오전 자율학습시간에 항상 식당가서 배고픔을 해결했었지요.
    뭐 덕분에 담임선생님께는 미움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2010.06.08 17:05 [ ADDR : EDIT/ DEL : REPLY ]
  9. 리오킹

    요즘 아주 재밌게 보고 있는 블로그중에 하나네요.
    왠지 고향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ㅎㅎㅎ 함평이라 전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기때문에 외국에서 산다는 느낌이 웬지,,..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서 일본에서 취업한것도 엄청난 모험이었네요. 참 여러군데를 가보셨네요.
    부럽긴 하지만 . ...

    2010.06.10 13:59 [ ADDR : EDIT/ DEL : REPLY ]
    • 하아..리오킹님 일본 사시는 군요...제 블로그에 함평분들 의외로 많으세요...ㅋㅋㅋ 저도 놀란다는...그냥 고향이라고 적을까 하다가 함평이라고 적은 이유는 '참 안변하는 동네' 이기때문에 고향생각도 나고 그래서 적습니다. 타향에서 몸 조심 하시구요

      2010.06.13 16:14 신고 [ ADDR : EDIT/ DEL ]
  10. snowhite

    우리 아들이 호주에 있어서 그런지 아들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재미있게 사시는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보기 좋으네요

    2010.07.06 18:15 [ ADDR : EDIT/ DEL : REPLY ]

최근들어서 유럽 워킹홀리데이가(독일,프랑스,아일랜드) 봇물(?)을 이루어서 비영어권 국가가 2개나 늘었지만 몇년전만해도 4개국중(호주,뉴질랜드,캐나다,일본) 비영어권은 일본 한곳 뿐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쿼터제였고 경쟁률도 빡시어서(?) 쉽사리 도전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다수였다.
한국과 가장 가깝고 닮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일감정 때문인가?
내가 본 일본워킹홀리데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매력적인 구석들이 있었는데 ...

허걱.....한국하고 일본 닮아도 너무 닮았다.
젓가락을 쓰는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닮았다.
다마 그 젓가락을 쓰는 법이 조금 다를뿐......

일본 워홀로도 혹은 여행으로도 .....이런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닮은 차의 디자인(?) 누가 먼저라고는 말 못하게지만...
비슷한 빌딩 ....비슷한 표정....비슷한 사회시스템들...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겠지만 일본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것을......
일본의 편안함은 이곳에서 확인 하시길...
게다가 비행기로 한시간반 ...가깝기까지 하지 않은가?
심지어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는 배로도 3시간30분밖에........
[生生 서바이벌 문장영어] - 어학연수 성공하려면 반드시 지켜야할 "영어공부의 왕도"

스미마셍(미안 쏘리 베리머치) 과 스고이(울트라 캡숑짱)를 연발하는 일본인!

일본어를 막 시작한 초보였을때 주변에 자주가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하나 사거나 커피를 하나 살때마다 어제저녁에 외운 일본어를 써먹으려고 막 머리를 굴리다 쭈뼛거리며
"곤니찌와..........쑥쓰 쑥스...."
"스고이 ....일본어 엄청 잘하네요.."
"허걱....인사뿐이 안했는데 ..."

그랬다. 일본인의 속마음을 잘 모른다지만 ...'이건 아니잖아'
어쨌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것처럼 어딜가든 친절한 사람들 뿐이라 뭐든 부탁하기도 쉽고 물어보기도 쉬운점이 일본만의 강점이었다.
,영어보다 느는 속도가 백배는 빨라 멀미할것 같아!
내가 일본에 간것은 2007년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이미 호주워홀과 캐나다 워홀을 마친상태였고 더구나 캐나다에서는 태솔강의까지 들었을 정도로 영어에 열심이었다.
노력도 많이했다. 시간도 투자 많이했다. 거기에 들어간 돈은 또 얼마고 ....?
하지만 일본어는 딸랑 대학 교양과목 '일본어의 기초'를 이수한것 뿐이었다.
그것도 4학년 1학기때!
내가 할줄 아는 일본어라고는
"스미마셍" "빠가야로" 곤니찌와"정도에
문장은 딱 한마디 알았다.
"와따시와 니혼고가 데끼마셍"(나는 일본어를 못합니다.)
몇년전에 일본에 여행갔다가 일본어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서 기억했을뿐......
어쨌든 일본어는 노력도 시간투자도 거의 한것없이 히라가나만 외워서 갔다.
가타가나는 너무햇갈려서 패스하였음.....결국 대학 교양과목 한학기 내내 난 히라가나를 외운 셈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공부를 시작하니 ......이건 멀미날 정도로 속도가 붙어버린다.
본인도 깜짝 놀랄만큼 ....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2편 (비자 신청)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1편 (일본에 워킹으로 가게 된 이유 ?)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3편 (에세이 작성)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4편 (현지적응하기 上)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4편 (현지적응하기 下)
바이또(알바)는 내친구
어디에서든 말이 가능하면 알바의 기회가 널려있다는 점
편의점이든 ..이자까야든....커피숍이든....찌라시를 돌리든....
기회가 많다는 것은 좋은것이다.
경험이든 돈을 위한것이되든...
한국에서 알바로 먹고살기엔 비참함을 벗어날수 없을 정도의 월급이지만 ...일본의 풍부한 알바시급이란.....
억울하지만 "일본이 부러웠다."
한번 해볼만한 도전 "일본 워킹홀리데이"
가깝고 말배우기 쉽고 문화비슷한 일본에서 일년 살아보는것!
재미있지 않을까?
내가 자주 읽는책의 저자인 무라카미 류가 69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즐거운게 이기는 거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가사키"지구관" 안주인 마리코상과 함께

나가사키 전역을 유유히 운행하는 노면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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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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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회가 왔을때 못갔던게
    후회스럽네요..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0.04.21 07:11 [ ADDR : EDIT/ DEL : REPLY ]
    • 그 기회대신 다른 기회가 있으셨겠지요 ..꼬기님...그래도 일본인들이 환장한다는 제주도에서 사시잖아요 ..! ㅋㅋ 좋은하루 보내셔요 .

      2010.04.21 17:37 신고 [ ADDR : EDIT/ DEL ]
  2. 유영

    와 히라가나만 외우고 어떻게 느신거예요?ㅠㅠ 말을 어떻게 알아듣죠?! 어떻게 느셨는지 궁금해요 저도 워킹 관심많아서 어느곳으로 갈까 고민하시는데 청카바님은 굉장히 긍정적이신분같아요 ㅎㅎ 캐나다나 호주나 일본같은 국가에 여자 혼자가는것도 괜찮을까요? 궁금해요!

    2010.04.26 01:24 [ ADDR : EDIT/ DEL : REPLY ]
    • 워홀을 나와서 깜짝 놀라는 첫번째 ...여자들이 더 많다 입니다. 오지여행도 그랬구요! 오히려 여자들이 적응이 훨씬 빠르고 실속도 훨씬 있어보입니다. 공부 죽어라 하시면 됩니다. 너무 속보이는 답인가요? 제 글중에 '워홀러들이 가져야할 영어에 대한 자세'를 보시면 좀 감이 잡히실지도 ...ㅎㅎ
      아차 긍정적인 힘은 운을 불러들입니다. 유영님 궁금한거 있으시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좋은하루 하세요

      2010.04.26 16:38 신고 [ ADDR : EDIT/ DEL ]
  3. 우리 조카 일본유학 다녀와 생각도 일본말로 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호주 유학가려 영어공부 하는데 너무 방해가 된다고 징징 거리더군요. 일본말이 영어 공부를 가로 막고 있다고,,,

    2010.05.31 18:24 [ ADDR : EDIT/ DEL : REPLY ]
    • 줄어드는 한국어 늘지않는 영어 끼어드는 일본어 호주생활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

      2010.05.31 20:07 신고 [ ADDR : EDIT/ DEL ]
  4. 4u당

    아주머니께서 수줍어 하시는데요....

    2010.06.03 17:11 [ ADDR : EDIT/ DEL : REPLY ]
  5. 구독신청했습니다~~ ㅋㅋㅋ 버럭하시길래

    2010.06.10 19: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dfreechal

    일본어 못하는데 어떻게 일을 했어요? 건축일도 아니고???

    2010.07.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영어과외하고 한국어 과외 했습니다. 다들 의아해 하드라구요 ...특히 안면있던 캐나다 친구가.....ㅋㅋㅋ 자기한테 영어과외하는법 알려달라고....

      2010.07.04 22:54 신고 [ ADDR : EDIT/ DEL ]
  7. 안뉴

    나가사키 워킹홀리데이로 검색하다가 많이 보고 갑니다. 일본=도쿄라고 생각했던 것이 굳이 비싸고 사람많은 도쿄로 갈 이유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정보 좀 얻고자 검색해보니 청카바님 것 외엔 볼 수가 없네요. 하하하~

    2010.08.23 23:31 [ ADDR : EDIT/ DEL : REPLY ]
    • 전 일본에서 도쿄는 그냥 거쳐가기만 할 곳입니다. 대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일본은 시골이 의외로 볼것이 더 많습니다.....개인의 취향....물가도 더 싼편이구요...복잡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일은 어디서든 하기 나름이니까요 화이팅.....안뉴님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2010.08.24 08:39 신고 [ ADDR : EDIT/ DEL ]
  8. 나그네

    이젠 스웨덴과도 워킹홀리데이가 체결되었죠ㅎㅎ 저의 한 스웨덴친구도 서강대어학당등록하러 11월되자마자 한국 워홀로 온답니다~ 참으로 글로벌한 시대가 아니지않을수없슴당

    2010.09.15 01:50 [ ADDR : EDIT/ DEL : REPLY ]
  9. 이종혁

    워홀에대해서궁금한게있는대물어바도되나요?

    2013.02.23 19:21 [ ADDR : EDIT/ DEL : REPLY ]
각국 워킹홀리데이2010. 4. 5. 19:44

워킹홀리데이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아닌 현지에서 돈을 합법적으로 벌수 있는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배우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한국사람 밑으로 들어가 돈을 버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영어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요?"
라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할것이 있다.
'과연 외국에서 외국인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까?'
뭐 영어가 안된다고 핑계대는 사람보다는 잘할거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자신감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지역커뮤니티를 이용하라
현지에 도착하면 수퍼마켓이나 쇼핑몰에서 흔히 볼수 있다. 중고물품을 사고 팔기도 하지만 가끔 구인광고를 하기도 하고 간큰친구들은 직접 광고를 적기도 한다.
"여기 힘센놈 하나 기다리니 연락달라"이런식이다.
가끔 이런 글을 보면 그냥 전화해 보고 싶어진다 ...진짜 힘이 센지 안센지......시험해 보고 싶어서


신문과 인터넷을 120%활용하라....
한국에는 공짜 신문이 널려 있지만 호주나 캐나다는 대부분 돈을 주고 사서 본다.
나에게도 신문은 절대적으로 재미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신문에 내가 하는일을 광고를 하기도 하고 가끔 일을 광고에서 찾기도 한다.
대부분의 광고주는 그렇게 일을 찾는다.
신문에서 보이는 구인구직란을 쉽게 넘기지 마라....급해서 광고낸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고 금방 채용할 가능성도 높다는걸 명심해라.
인터넷은 어디에서도 뗄레야 뗄수가 없다 구인이면 구인 구직이면 구직....모두에게 한번 해보지뭐 돈도 안드는데 ...정도의 도구다.
하지만 의외로 경쟁이 치열해서 연락이 안오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시도는 해볼것 ....


잡에이전시를 이용하라.
어디에나 널려있는게 잡에이전시다. 먼저 잘 다듬어진 이력서를 제출하라. 운이 좋으면 당장에라도 채용이 된다.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과 이야기 할때 면접보는 기분으로 임할것
그들이 먼저 구직자를 체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수료를 제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일을 잡을수 있는 방법중 하나다.
가끔 선 수수료를 제하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일을 확실하게 주는지 먼저 확인해봐야 한다.


찌라시를 직접 돌려라.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다.
특히 식당이나 조그만 일자리에서는 이만한 효과가 없다.
열장 돌리면 5장에서 연락이 올정도다.
여기에서 명심할점은 반드시 메니저를 만날것!
메니저가 아닌 보통 직원에게 이력서를 전해주고 오면 거의 연락이 안온다.
아마도 메니저에게 전해지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자신들의 일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어떤일이든 직접 두들기지 않고서 열리는 일은 없다.
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호주나 캐나다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면 바로 일어나 이력서를 출력하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아차 잊지말것 영어못하는게 꿀릴게 아니라 한국말도 할줄 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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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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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일학기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게 늦어져 결석이 많아 지면서 학점 관리가 도저히 안된 것이다.

결과는 2.48의 평점으로 이제까지 대학생활의 성적 중 최악이었다. 공부 못하기로 소문난 내 친구들 중에서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 이었다.

물론 1,2학년도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항상 중간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너무 심각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1학기 수강과목을 필사적으로 정정했다. 그 결과 화려한 교양과목으로 4학년 1학기 수업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때문에 전공과목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영어회화수업을 두 개를 집어넣고 기초 일본어를 집어넣었다.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교양과목이 전공과목에 비해 학점관리가 쉬웠기 때문이다. 
교양과목을 선택하면서 은근히 상대적으로 결석이 잦은 1학년들이 나를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학점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어학실력을 넓히려는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  거의 20학점을 4일 동안 다 들어야만 했는데 어떤 날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도 있을 정도로 타이트한 시간표였다. 3학년 2학기 성적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수고쯤은 필수 불가결 이었고 뿌린데로 거두는 거리고 자책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이다. 그 희망은 바로 개근이었다.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난 초중고 대학을 거의 개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근은 내가 가진 능력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었다.시험을 필사적으로 치르게 만드는 상대평가는 동급생들이 적으로 까지 보이게 하는 아주 몹쓸 제도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상대평가는 대학생활을 상당히 전투적으로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4학년 일학기라고 해서 남들처럼 취업을 걱정하며 도서관에서 토익을 공부하거나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눈곱만큼도 생기질 않았다.

도서관에서 여느 학기처럼 여행서적을 뒤적거리거나 수업이 없는 3일은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1년에 4번 분기별로 모집을 했는데 2분기에 서류를 집어 넣을 생각이었고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다 마감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준비 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 우선 언어적으로도 히라가나밖에 모르는 상태였고 비자 에세이 작성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언어는 큰 걸림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작성할 때처럼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서 내가 생각하는 일본에 대해 마인드맵을 작성해 보았지만 평범한 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서 당시 읽고 있었던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류에 대해서 영어로 작성 하기로 했다.

대사관에서 일할 정도의 직원이라면 영어는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영어로 작성해서 합격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일본어로 부탁을 하면 내 생각이 잘 전달 되지 않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귀찮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는 게 정석인 법이다.

고등학교 때 정석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이었지만 정석대로 승부를 낸 내게 일본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발급 되었고 세 번째 워킹홀리데이는 그렇게 시작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에 여행을 한적이 있어서 조금 만만하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여행과 사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은 건축적산 계산 시험이었는데 숫자는 언제나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공부를 안 한 채 강의실에서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리 없었고 난 예제 문제 답안을 숫자 하나 안틀리게 적고 나왔다. 백지로 냈다가는 필수과목이 빵구 날 터였고 그러면 졸업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냥 교수님에 대한 성의 표시로 문제와 상관없는 답으로 빼곡히 채운 것뿐이다.

서둘러 답안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벗어났다.

시험문제가 어려운지 미간에 내천자 () 깊은 주름을 잡고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낭을 매고서 곧장 강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그날까지 마감인 독도에 관한 일본어 리포트를 작성했고 중간 버스 휴게소정류장에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비로소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다 끝마치고 일본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래간만에 부산에 사는 친구를 만나 회한접시에 소주 한잔을 들이켰고 잠시 바다 구경을 했다. 그리고 해운대 가까운 곳의 찜질 방에 자리를 잡고서 축구를 보며 잠을 청했지만 한참 독일 월드컵 중이었고 찜질 방의 열기와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일본 여행의 설렘에 이래저래 좀처럼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배를 타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서둘러서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의 아침은 엄청난 습기를 머금은 더위로 찜질 방의 사우나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비틀 카운터에 가서 이름과 여권을 제출했더니 창구 직원이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손님 내일 예약하셨는데요?"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조금 당황해 하며 예약하던 날을 돌이켜 생각했다. 한참 기말고사 시험기간 이었고 도서관 로비에서 전화로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이내 유난히 짧은 치마의 여대생들이 기억났다.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웃으면서 가장 빠른 배로 예약을 변경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이제 방학이 시작된 대학생들이 여행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성수기도 아니었고 바로 출발하는 배로 변경할 수 있었다.

나의 무계획성 여행이 여실히 탄로나는 지점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아직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다.

아니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그리고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침 튀는 데로 가볼 요량이었다. 어떻게든 일은 풀리게 마련이라는 게으른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머니에 200만원이라는 쾌나 큰돈이 있었기 때문에 여느 여행보다 훨씬 게으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돈의 출처는 다름아닌 쿨하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간곡하지도 못하고 성의 있는 부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똥을 한번치우는 대가로 흔쾌히 받아들여 송아지 한마리 값을 내주신 거다.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웰컴투동막골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고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보면서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참 좁은 세상이다. 일본까지도 배로 2시간 반이면 도착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부산사람들은 서울 가는 것보다 일본에 가는 게 더 짧은 게 되지 않은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반이 걸렸는데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2시간 반뿐이 안 걸린다니 일본이 한국의 지방처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입국심사대에서 역시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섰지만 다행스럽게 무사 통과했다.

입국심사대를 나오니 찌는 듯한 일본의 여름에 혀를 내밀며 담배를 하나 피우기 시작 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담배 하나가 끝이 날 즈음 우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정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거기서 생각하면 될 것이었다.

텐진 버스 센터에 도착하니 규슈지방의 지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그곳에 서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했다. 무라카미류의 고향인 사세보로 갈까 하다가 책 내용을 생각해 내고 이내 접었다.

그의 책에서 사세보는 엄청난 시골로 묘사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가사키를 생각해냈다. 무라카미류의 책에도 자주 등장한 도시고 언젠가 나가사키 여행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영어로 불라불라 티켓을 한 장 달라고 했을 뿐인데 한국사람이냐고 묻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전화를 걸더니 한국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약간의 상황설명이랄 것도 없이 영어로 했던 말을 똑같이 한국말로 나카사키행 표를 한 장 끊었다. 일본 사람들은 과하게 친절했다.

콜라를 뽑아 마시면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본콜라는 최악의 맛이었다. 먹어본 콜라 중 제일로 맛없는 콜라였다.

더운 인도에서 마셨던 인도 펩시를 생각해 냈다.

콜라 병에 빨대를 꽃아 마시던 마셔본 콜라 중 제일 시원하고 맛있었던 콜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나라마다 콜라 맛이 틀린 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에 올라서 한가한 버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나의 일본여행은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물론 아는 사람도 가이드북도 정보도 아무것도 없이 가는 나가사키행 버스에 몸을 싣고서 회색 빛 도시 후쿠오카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마자 잠이 들었다. 각오를 다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잠에 골아 떨어지는 건 단순한 성격인 내게 너무 쉬운 일이다.

누구나 낯선 곳에 오게 되면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전날에 월드컵 열기 덕분에 제대로 잠을 못 잤고 배 안에서도 영화를 보며 오느라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피로가 쌓였나 보다.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나가사키 시내에 들어서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도시는 엄청난 습도를 품어내고 있었다.

버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바깥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쾌지수가 읽어질 정도의 엄청난 습도였다.

나가사키 역에 도착해 배낭을 짊어진 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현란한 문어 다리처럼 펼쳐진 육교를 바라보고 그 밑을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이

유유히 지나가는 노면전차를 바라봤다.

우선 단기 여행자가 아님에 분명 방이 필요할 것이고 일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여행자 센터에 들러 지도를 한 장 얻고서 나의 상황을 간단히 영어로 설명했고 일본어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몇 마디 못 알아 들었지만 필요한 정보는 한가지도 없는 것 같았다. 관광객을 위한 여행자 센터였을 뿐이다. 나 같은 워홀메이커에게 유용한 정보는 한가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워홀메이커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 듯 했다.

지나가는 몰몬교 선교사들이 보여서 무거운 배낭을 들쳐 업고 구세주라도 만난 양 그들에게 뛰어가 영어로 물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상황설명을 간략하게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일본에 와서 미국인 몰몬교 선교사에게 정보를 묻고 있는 내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유창한 일본어로 여행자 센터에 들러 부동산의 위치를 물었다.

역 근처의 부동산에서 그들은 나의 설명을 부동산 사장에게 농담까지 곁들이며 설명을 해줬다. 부동산에서는 나에게 직업을 묻고 직업이 없다고 하자 보증인을 물어본다. 오늘 도착한 내게 보증인이 있을 리 없었고 난 그때까지도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에서 방을 얻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동산 사장은 친절하게도 시청에 전화를 걸어 한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이곳 저곳 전화를 해서 알아봐 주기까지 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방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나가사키 노면 전차처럼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몰몬교 선교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부동산 사장은 근처 유스호스텔로 나를 인도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인상 좋은 호스텔 주인은 내게 침대를 기꺼이 허락했다.

하루에 3000엔씩 하는 호스텔비를 오랫동안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일은 그렇게 돈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채 넘기지 않았다.

호스텔 근처 공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한가치 빼어 물었다. 공원에는 축구와 야구를 하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본에도 월드컵 열기로 한창이었다. 옆에 축구공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 커플이 있길래 인사를 했다. 축구공을 들고 있던 일본 청년은 영어로 내게 이것 저것 물어왔다.

그의 영어는 완전한 일본식 영어 발음이었지만 대화는 꽤 능통하게 이루어 지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이었고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그에게 축구를 권했고 한 시간 정도 축구를 했다.

축구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종교라는 어느 다큐멘터리 멘트가 생각났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첫날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낯선 곳에서 도착한 첫날 10분만에 밥을 먹어 치우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호스텔에 있는 유럽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고 마침 특별한 계획이 없어서 함께 가까운 곳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난 그렇게 가까운 이자까야에 그들과 함께 동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줄로 알았단다.

호스텔의 바로 옆에 있던 아운정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펼쳐 들었는데 사진 하나 없이 한자가 빼곡한 메뉴에 난 심각하게 당황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그들은 그제서야 내게 국적을 물었다.

서로가 당황했다. 당황한 순간 오후에 함께 축구를 했던 대쯔시라는 친구가 들어왔고 그가 설명해 주는 메뉴를 듣고 있자니 더욱더 어려워졌다. 일행 중 일본 음식에 대한 지식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맥주에 가장 만만한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곳에서 함께 낯선 메뉴에서 친숙한 샐러드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취기가 조금 올라올 즈음 호스텔로 돌아왔다.

공공원 공중전화에서 집에다 전화를 하고 낮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분위기의 공원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일본 생활의 막막함을 실감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가는 코비 쾌속선 내가 일본에 갈때 애용하는 배다.
일본이 멀고도 가까운 나라임을 정말 실감나게 해준 쾌속정이다.
배멀미가 걱정이라고? 천만의 말씀 배멀미를 느끼기도 전에 목적지 도착이다

후쿠오카 하카타 국제 여객 터미널 모습이다.
이사진을 보기만 해도 습도가 피부에 느껴지는것 같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텐진 버스터미널로 이동.

터미널 모습 한국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거슬리게 줄을 잘선다는것 빼고 아차 또 조용한거하고 ...

나가사키 시내 풍경 도로한가운데에 전차가 다니는 길이다. 나는 이 전차가 되게 좋았는데 운전하는 친구들은 운전할때 음청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100엔의 낭만이 있는 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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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톰이

    청카바님은 학원이나 학교는 따로 들어가지 않고 독학으로 하셨나 보네요~
    :) 거의 동경쪽으로들 많이 추천해주시던데, 호스텔이나 알바가 지방쪽은 구하기 힘들거라고..
    고민이네요~

    2010.09.06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2. 마남

    얼마전에 제대하고 몇달 일하다가 워홀 준비하고 싶음 마음에
    이렇게 글올려봅니다.
    문의하고싶은게 많은데 답변가능하시면 댓글좀 달아주세요 ^^

    2010.09.06 19:35 [ ADDR : EDIT/ DEL : REPLY ]

준비했던 뉴질랜드 비자와 호주비자 사이에서 갈등했다

한국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난 또다시 싱글로 돌아왔다. 아마도 난 커플이 어울리지 않는 인간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씁쓸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우선 무작정 한번도 가보지 않은 뉴질랜드의 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물론 식구들은 내게 근심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내 여행을 격려해 주었지만 혼자 떠나는 인천공항행 버스에서 난 절실한 외로움을 느꼈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나는 무슨 자유를 위해서 이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냥이곳에서 자유대신이 주는 가족의 따뜻함과 친구들의 즐거움과 회사의 안정적인 월급통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것들과는 거리가 먼 단하나의 목적을 생각했다.

자유가 주는 선택의 방황을 선택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를 거치고 난 10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으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오클랜드에 착륙하면서 본 공항은 내 상상이상이었다. 너무나 작은 공항은 뉴질랜드에서 제일 큰 공항이었으며 그곳은 심지어 붐비지도 않았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서 비가 흩날리고 있었고 난 인포메이션 센터에가서 간단한 정보를 물었다.

우선 시내에 가기 위한 버스를 30분정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담배를 피우면서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내 모습에서 여행정보에 대한 나의 무지를 비웃었다.

배낭에서 점퍼를 하나 꺼내 입고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오클랜드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30분정도 버스에서 본 창밖의 모습은 시드니와 밴쿠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4백만의 인구의 뉴질랜드를 생각해냈다. 비록 이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역시 비교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도시 였다.

시내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그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 차가운 몸을 녹이면서 백패커스를 찾고 있었다.
생각보다 백패커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백패커스 거리라는 포트스트리트를 걸으면서 가장 먼저 만난 퀸스트리트백패커스에서 짐을 풀었다.

역시 제일 처음으로 한일은 택스 번호를 신청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는 워킹이 주목적인 내게 텍스 넘버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뉴질랜드의 모든 행정은 우체국에서 가능한 점이었다.

텍스번호도 신청이 가능했고 자동차 등록도 가능하고 핸드폰 요금 수납도가능한 점이었다.

다양한 우체국 기능에 감탄하면서 택스넘버 신청을 하고서 호스텔에 돌아와 또다른 여행자들과 여행 정보를 공유한다는 목적하에 수다를 떨었다.

나는 어느도시에 도착하건간에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도서관이다.

목적은 간단하다. 공짜 인터넷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클랜드 도서관도 공짜 인터넷이 가능했고 내가 방문한 어떤 도시보다 무료 인터넷 시스템이 잘되어 있었다. 물론 인터넷 비교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과 비교해서는 안될일이지만 다른 여행했던 도시와 비교해서는 가장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오클랜드시내 관광을 나름대로 하면서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할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꽤 많은 호텔도 보이고 레스토랑도 있었다.

우선 가볍게 몇장의 이력서를 작성해서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다지 큰 기대를 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전화가 오지 않음에 실망한건 당연한 일이었다.호스텔에도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곳에도 공급과 수요중에 수요가 단연 우위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또한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한고용주 밑에서 삼개월밖에 일을 할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그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 비자 컨디션이기도 하다.

몇군데서 연락이 와서 전화를 받아보면 한결같이 비자 컨디션이 일을 할수 없는 상황이 되기 일쑤였다.

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고 오클랜드를 뜨기로 70프로 정도 마음을 가다 잡고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했다.

우선 차를 한대 사기로 했다. 이곳도 역시 공공교통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귀찮은 것을 하지 않는 것부분에서 세계 챔피언일정도의 귀차니즘에 젖어 있어서 차를 한대 사기로 했다.

함께 머물던 형과 함께 차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간단히 테스트 운전을 하고 1000불에 가볍게 1990년식 토요타 콜로나 스테이션 웨이건은 간단한 서류작업으로 나의 차가 되었다.

오클랜드의 주차난은 이미 서울을 넘어선 것 같았다.

서울처럼 불법주차가 허용되지 않는 이도시에서 주차료를 감당해 내기 힘들어서 무료로 주차가 가능한 호스텔을 찾아 파넬이라는 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곳에서 난 이미 오클랜드가 아닌 다른도시로 마음을 먹었다.

차를 사기로 하면서 만난 원영형이랑은 또다른 인연이 있었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의 친구였던 것이다.

친구중에 호주에서 만난 영국인 여자와 결혼한 친구가 있는데 원영형은 그 영국여자의 친구 였던 것이다. 참 세상 좁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산 기념으로 오클랜드 북쪽 바다구경을 하기로했다.

처음으로 오클랜드를 벗어나 본 바다와 초원은 말그대로 동화속의 자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풍경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녹색이었다. 말그대로 한점 티끌없는 곳에 잔디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한가롭게 양떼가 잔디를 뜯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리와이 비치에서 차에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서로를 껴않고 자면서 캠핑은 아직 무리라는 점을 실감했다. 등골이 사무치게 추운 겨울바다였던 것이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서 원영형과는 다음을 기약했다.

난 오클랜드에 온지 이주만에 차를 사서 헤밀턴으로 향하는 엑셀을 밟았다.

머물렀던 52번 방의 룸메이트들을 생각해 냈다.

영국출신의 앤디 미국의 멜리사 그리고 이탈리아의 에밀리오 인도 출신의 리 다양한 인종구성이었고 모두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 들이었다.

52번방의 특별한 방분위기는 다름아닌 모두 여행을 막 시작한 사람이거나 여행을 마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모두 금방 떠날 사람들이었는데 떠나기 하루전에는 모두 함께 펍에가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우정을 나누니 어느새 서로의 경계가 모호해 졌고 우리는 모호한 경계를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음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엠피쓰리 음악을 공유했다.

심지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행자들이지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해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떠나고 나도 드디어 그곳을 떠나는 엑셀을 밟았다.

엑셀을 채 밟기도 전에 나의 라디에이터는 심각한 열에 엔진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정비사에 들러서 가볍지 않은 500불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새로운 라디에이터로 여행을 시작해야만 했다.

가까운 헤밀턴에 가서 일을 한번 알아볼 작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때 까지도 아직 급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가까운 호스텔에 배낭을 풀고서 가까운 시내의 잡에이전시에 들러 이력서를 돌렸을  뿐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머물렀던 숙소는 굉장히 호스텔 답지 않은 분위기의 민박집 분위기의 호스텔이었는데 헤밀턴이라는 도시의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의 도시에는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듯 백패커스 조차 희귀했다.

조금의 재미를 위해 캠핑을 하기로 했다.

처음 헤밀턴을 갔을때는 당분간 머물 요량이었는데 캠핑을 하던날 비가 왔는데 히터없이 자다가 추위에 바들바들 떨다가 아침에 조금 따뜻한 지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들긴다. 히터키고 자다가 죽는다며 담요를 하나 갔다준다. 겨울이지만 아주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뉴질랜드에는 아직 시골스러운 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난 죽기싫어 시동을 걸고서 조금 따뜻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무작정 차를 몰아서 타우포라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보이는 풍경들은 마치 동화속에 들어온것처럼 온통 녹색이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축복 받았다. 그 자연을 오염시키는 사람조차 드문 이나라는 자연이 보호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자연 덕분에 그들은 먹고 살고 있고 난 그 자연만을 만끽하기엔 지갑이 가벼워져 가고 있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타우포에 도착해서 강가에 앉아 점심과 커피를 한잔 하면서 잠시 앞길을 생각했다.

조금더 차를 밟기로 했다. 아직 타우포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타우포의 강가의 바람은 정말 매섭도록 차가운 것이어서 커피 한잔에 손을 겨우녹이니 이곳보다는 조금더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리워졌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내피어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엑셀을 다시 밟았다.

몇시간의 운전으로 내피어에는 해가 지기 직전에야 도착할수 있었다.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틀어져 있던 라디오를 끄고 도로를 달렸다.

그어떤 음악보다 내 심장을 고요하게 만들어주다가 쿵광거리게 만들어주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끝없는 수평선에 반해 버렸다.

바다에서 제일 가까운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 메니저와 잠시 일에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이곳도 아직 겨울인지라 바쁜시기는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했지만 그것보다도 난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다. 그순간 지갑의 가벼움따위는 내 머리속에 들어설 틈이 없었을 것이다.

호스텔 앞에 있는 벤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듣는 파도소리는 나의 심장을 녹였고 잠결에 듣는 파도소리는 내 영혼을 씻어주는 것 같았으니까.

이력서를 몇장 복사해서 주변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돌렸다. 내피어의 분위긴는 상당히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적될 것이다.

호스텔 메니저에게서 몇가지 정보를 물으니 주변의 잡에이전시와 카페들이 많은곳을 지도에 표시해 준다.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히고 여행의 여독이 풀리면 슬슬 살아가기 위한 준비들을 해야할것이다.

내피어의 비치에 앉으니 파도소리가 나를 한없이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

모래 해안이 아닌 둥그런 조그만 자갈들이 내 모난 성격을 더욱더 모나게 보이게 한다.

그동안의 나의 생활들을 돌아본다.

결코짧지 않은 29살이라는 나이를 먹어오면서 느끼던 생각들이 파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쓸려간다. 아 옛날이여

결국 다시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생각해내려 애를 썼다.

결국은 다시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갈사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워있는 나의 뺨을 부딪치는 바람은 아직도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햇살은 서서히 봄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잡에이전시와 몇개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뿌리고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여전히 호스텔에 돌아와 바다를 바라보며 기타를 쳤다.

책을 읽고 엠피쓰리로 존레논의 이메진을 들으면서 자갈비치에서 낮잠을 잠시 즐겼다.

뉴질랜드에서 나의 애마였던 90년식 도요타 코로나 해치백 수동기어지만 클러치면 클러치 브레이크면 브레이크 거의 완벽한 차여다. 30만 키로를 넘게 탄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1000키로 이상을 주행했을때에도 끄떡없었던 짱가 차였다.
뉴질랜드를 떠나면서 스위스 여행자에게 1000불에 팔고 어찌나 아쉽던지 하지만 그 친구는 땡잡은것 마냥 들떠하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무리와이 비치는 오클랜드에서 한시간 가량 북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만날수 있다. 믿을 수 없을만큼 광활한 바다와 멋진 검은 자갈 사장을 볼수 있다.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무리와이 비치에서 낙시하는 사람이다. 무리와이 비치는 서핑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갔을때는 겨울의 끝자락이었기에 서핑을 하진 못했지만 .....
오클랜드 파넬이라는 곳의 백패커다. 시내에 있는 백패커에는 주차를 할수 없기 때문에 시내에서 걸어서 20분거리에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호스텔은 말그대로 따뜻한 분위기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주인 내외도 상당히 친절하며 90프로가 독일인이다. 뉴질랜드에 오는 대부분의 워홀러는 독일인이다. 그들에게 물으니 독일에서 땅파서 지구를 가로 지르면 나오는 곳이 뉴질랜드란다.즉 독일에서 뉴질랜드가 가장 먼것이다.

타우포 가기전에 있는 폭포 이멋진 광경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담배와 커피를 마시며 감상했다.
뉴질랜드의 자연 광경은 뭐라 설명할 수식어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마치 현실이 아닌 동화의 세계같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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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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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 너무 멋져요! ㄷㄷㄷ
    저도 훌쩍 해외로 나가고 싶은데,
    마음만 한가득이네요 ㅜㅜ

    2010.03.08 06: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만 22세 예비역 2년차 대학교 2학년 일학기 그시절의 나는 뜨거웠다. 뭐든 화끈하고 싶었다.
돈따위는 필요 없었다
. 여자친구도 필요없었다.

다만 넘쳐나는 젊음의 시간을 떼울수 있는 무엇인가 의미있고 가슴뜨거운 것이 필요했다.

나의 일기장에 이외수의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라는 시를 프린트해서 새겨넣었다.

그리고 세상으로의 가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배낭메고 한 가출 -

이미 마음속에서  장기여행을 구상하고 있는 내게 공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원래 공부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수업 후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여행서적을 읽기 일쑤였다. 그 당시 방값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 4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4발가락이라는 별명처럼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의 주말처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셔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세 명 모두 외출복장으로 갈아 입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데이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외출한 큰방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난 이제까지 주말에 데이트할 사람 하나 안 만들고 뭘 했담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티브이를 켜니 토요명화로 파이란이 방영되고 있었다. 민식의 삼류인생이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비참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다른 채널로 돌리니 박하사탕이 하고 있었다. 설경구의 마지막 대사 '나 돌아갈래' 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 머릿속에 메아리 쳤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친구들에게 박하사탕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 호주갈래하고 외쳤다.

결정해버린걸 시작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침 온라인 비자로 바뀌어져 있었고 비자는 학교 컴퓨터로 간단히 몇번의 클릭질과 타이핑으로 끝내고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종로 하나로 병원에 들렀고 비자 신청 2주 후에는  별 문제 없이 발급 되었다.


시골에 잠시 내려갔다
.

꽤나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내가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것은 모르고 계셨다.난 생각보다 효자인셈(?) 아시면 걱정하시니까!
내려가서 며칠 농사일을 도왔고 소 똥을 치웠다. 아버지는 내가 시골에 올 때마다 소 똥을 치우거나 경운기 운전하는 일을 굉장히 뿌듯해 하셨고 나는 호주에 가는 계획을 말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점수를 딸 요량이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내려온 막내를 위해 푸짐하게 저녁이 차려졌다. 낙지며 생선들이 가득한 호화스러운 산해진미의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아버지 저 호주 좀 잠시 다녀올게요

학교에서 보내주는 거냐?

머 비슷해요.

그렇게 난 호주 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주머니에는 달랑 호주 달러 500불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나의 세계여행은 시동을 걸었다.  사실 2년 휴학을 결심했다. 1년은 호주에서 돈을 벌 작정이었고 또 다른 1년은 그 돈으로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 보스톡에서 속초로 돌아오는 하루밤만에 계획한 통큰(?) 밑그림이었다.

호주는 이미 두 번째 여행이었고 두 번째 라는 건 그만큼 시행착오도 또한 적어 진다는 의미였기에 조금은 건방지게 공항에 도착했다.개기름 낀 얼굴에 썬그라스까지....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내 이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다름아닌 내이름 원선 중에 원과 선 사이에 하이픈을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역시 주의 성 없는 성격을 탓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방법이 없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울상을 짓는 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체크인 수속 창구는 나 때문에 분주 해졌다. 내 여권과 비자에 적힌 이름을 복사하고 캔버라에 팩스를 집어넣어 다시 허락을 받아야 해야 한다고 해서 난 배낭을 매고 카운터 구석에서 나의 부주의를 반성하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오랜만에 보는 스튜어디스 누나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 출발 삼십 분전에 답신이 왔고 난 배낭을 매고 뛰기 시작했다

2d2열  종대로 쫘~악 줄을 서있는 출국 심사대에서는 심지어 새치기까지 해야했고 뒷사람들의 뜨거운 눈총을 받으며 비행기 창구로 뛰기 시작했다.
담배 한 보루를 급하게 사고 잔돈을 받지도 못
한 채 비행기에 뛰어들었다. 그런 급한 순간에도 호주의 비싼 담뱃값을 걱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는 신중함이 엿보였다.

일본을 경유하고 10시간의 비행으로 간단히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은 입국심사대에서 우물쭈물 묻는 말에 대답했고 배낭을 찾아서 공항을 빠져 나왔다.

아직 몇 개의 한국 담배가 남아있는 담배 케이스를 꺼내어 한대 피웠다. 시드니의 계절은 한국과는 정반대인 겨울이었지만 햇살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나를 비춰주고 있었다.

지갑에는
300불의 호주 불이 있었다.

시작한 돈이 적었기 때문에 불안하고 힘들었다고 하면 조금 사치스러운 표현이었고 오히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서 앞으로 돌진하는 것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때의 심정이었다. 300불이라는 돈을 들고 킹스크로스에 도착해서 시드니 센트럴 백패커스라는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6인실의 도미토리에 묵고 있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일주일 숙박 할인이
있었기 때문이 150불이 지불되어 내 지갑에는 100불이 조금 넘는 돈이 남게 되었.
리셉션에서 시내 지도를 한 장 얻어서 호주 이민성을 방문해 비자 라벨을 받았
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택스 넘버를 신청했다.

시내의 맥도날드를 지나치고 있는데 도미토리에서 인사한 조라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햄버거를 먹었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돈도 100불이 채 되지 않았고 일을 찾고 있었다. 며칠 전에 스리랑카에서 도착했다고 하는 그에게 난 알수없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그것은 빈민 한 자들끼리만 통하는 특별하고도 각별한 그 무엇이었다.
그날 저녁 난 조와 특별한 동지애를 확인하기 위해 나이트를 갔고 문제는 가지고 있는 100불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조라는 친구와 만남은 시작되었다.

지난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좀처럼 머리가 흔들려서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조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운다.

눈곱도 채 떼지 못한 내게 조는 아주 빠른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고 내게 그 소리가 들어 올 리가 없다. 설령 귀에 들어 왔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빠른 영어를 이해할 리도 없었다.

멍한 상황에서 조의 태도는 내게 세수할 시간도 없이 리셉션으로 뛰어가게 만들었다. 리셉션에는 한 명의 호주 인이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오케이' 라고 말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조가 천천히 이삿짐 나르는 일이라고 설명을 해줘서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는 면접이 있다며 다시 씻으러 갔고 나는 바로 모자를 뒤집어 쓰고 호주인 사장을 따라 그의 트럭에 올라 탔다.

트럭으로 한참을 가더니 이사할 집이란다. 으리으리한 집에 조금 기가 눌렸다.

함께 간 유럽친구들도 조금은 위축된 모양인지 우리는 정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담배를 한대 태웠다. .

그리고 이사 짐을 나르기 시작했는데 한국처럼 간단한 가구들이 아니었다.

오래된 가구들은 아예 들어지지도 않았다. 애초부터 바닥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그런 가구에 손잡이가 제대로 있을 리도 만무했다.

직접 만든 가구들이라 그 무게 또한 어마어마했는데 힘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 있던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점심은 10불이나 하는 커다란 햄버거를 먹었다. 돈이 없어서 사장에게 가불해서 햄버거를 먹는 내 모습에서 어제의 나이트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조와 나이트를 3군데 간 것까지 기억나는데 돌아온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을 쥐어짜고 있는데 짧은 점심시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날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바로 정원에 있는 돌을 쪼아서 만든 화분이었다.

잡는 것도 용이 하지 않을뿐더러 그 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데 손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고 손가락이 가을바람의 나뭇잎처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다리도 역시 후들거렸고 먼지를 뒤집어쓴 내 몰골은 하루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로비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흙 먼지를 뒤집어쓴 조를 만났다.

조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건축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비볐다는데 하루 만에 십 년은 더 늙어 버린것같다.

우리는 서로의 피폐해진 몰골을 보고 한참이나 웃었다.

손에 쥔 150불은 꽤나 큰돈이었지만 노동의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손에 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조와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이삿짐을 나르고 핸드인캐쉬로 꽤 큰돈을 쥐게 되었다.

처음에 올 때 가지고 온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지금 은행잔고로 있으니 천군마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조와 가까운 한국식당엘 갔다. 젓가락질이 꽤나 능숙한걸 보니 꽤나 해본 솜씨다.

그리고 묵이 나왔을 때 몇번 팅글팅글 젓가락으로 건드려 보더니 뭐냐고 묻길래 베지터블 젤리라고 말해줬다.

묵이 팅글팅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조는 묵을 한번도 먹지 않았다.

며칠전 내가 해물라면을 먹고 있는데 봉지의 그림을 보더니 낙지가 들어갔냐고 물어본다. 맛있다고 했더니 자기가 스쿠버 할 때 본 낙지는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예쁜 생물이라며 손으로 낙지가 헤엄치는 모습을 흉내 낸다.

라면을 먹으면서 나한테는 네가 매일 먹는 소가 더 예쁘다고 했다.

맨날 라면만 먹던 내게 조는 누들 보이 란 별명을 지어줬다.

그리고 이삿짐 일이 힘에 부치고 일이 많이 없어서 다른 일을 찾고 있는데 호스텔 핸디맨과클린어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잠시 2주간 대타를 뛰기로 했다. 대타로 일하면서 이력서를 뿌린 식당에서 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인이 사장인 보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저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웨이트리스에게 테이블 세팅 지시를 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식사가 공짜였기에 난 누들보이에서 해방이 되었다.

2주간의 대타가 끝나고 밤에는 호스텔 리셉션을 지키게 되었다. 그 덕에 난 호스텔에 공짜로 머물며 급료를 받을 수 있었고 낮에는 보디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레스토랑 복장은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남방을 입어야 했는데 그런 옷이 있을 리 만무해서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자기 옷을 선뜻 빌려준다.

궁하면 어디든 통하는 법이다. 그렇게 호스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어갔다.


조는 바로 옆 건물로 이사를 갔다
. 조의 룸메이트였던 필립과 조와 나는 쉬는 날이면 함께 술을 마시고 나이트를 탐방(?)하며 시드니 킹스크로스에서 방탕(?)의 길로 접어 들었다.
시드니에서 생활한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 동안 호스텔에서 매니저와의 암묵적인 협의 하에 무료로 머물고 있었는데 사장은 급료를 받는데 왜 공짜로 머무느냐고 물었다. 나는 원래 내 급료에 숙박비가 포함된 거 아니냐 하고 반박했다.

사장은 앞으로 일을 계속 하려면 숙박비를 지불하란다. 난  이스라엘 빨간 머리 아줌마에게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니저와 상의해봤지만 그도 괴팍한 사장 성격을 어쩔 수는 없었다. 보디 레스토랑에서는 다섯 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았고 숙박비까지 지불하게 되면 생활이야 되겠지만 돈을 모으기는 힘들어 질게 뻔했다. 나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꽤나 방탕하게 지낸 삼 개월 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돈이 은행잔고로 있었던 것이다.
호주 대박신화의 근원지인 농장 일을 찾기로 했.
내가 농장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조는 굉장히 서운해 했다.

자기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장에게 말해서 일을 찾아 보자고 한다. 하지만 난 이미 마음을 굳혔고 배낭을 챙겼다.
 떠나기 전날 조와 필립과 함께 킹스크로스의 스포츠 바에서 평소보다는 조금 조용하게 권투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


다음날 아침 조가 아침 일찍 호스텔로 왔다
. 평소 아침잠이 많은 조가 나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 호스텔 스텝들에게 인사를 했고 조는 내 배낭을 들어주면서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따뜻한 말을 해준다.

나는 크리스마스쯤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대답하고 우린 킹스크로스에서 하이파이브를 올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호주 시드니 백패커스에서 나이트 메니저를 하면서 메니저 숀과 함께
조와 함께간 조의 친구집에서 신년파티 중
조,필립과 함께간 한국식당 지금도 가끔 조와 메일을 주고 받는데 서른이 훌쩍넘은 나이지만 여자가 너무 많아서 장가를 못가고 있다는 핑계로 현재 프랑스 어딘가에서 여자를 꼬시고 있을거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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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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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 4개국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하고 호주에 안착한 청카바 입니다.
어느나라 워킹 비자보다 까다로운 일본워킹비자를 획득하신 분이라면 이미 하늘을 찌르는 감동을 맛보셨겠죠!
저에게도 3번째 워킹홀리데이 비자 였지만 어느 비자보다 짜릿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짜릿함을 친구들과의 소주한잔으로 즐기고 나면 돌아오는건 지독한 숙취와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 그리고 현지생활에 대한 걱정이 해결해야할 과제죠!
느즈막한 오전 11시쯤 일어나 가까운 중국집까지 쓰레빠 끌고 나가서 브런치 짬뽕으로 속을 달래고 다 먹고 나면 나오는 요구르트로 두통을 날린후 파리똥이 덕지덕지 붙은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일본워킹을 걱정하시면 되겠습니다. 라고 하면 제가 써먹은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일본 현지 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에 가기-
비행기 타고 가야겠죠?
참고로 5번이 넘는 일본 여행중 비행기를 타고 간것은 단 한번뿐이었습니다.
모두 부산에서 비틀이라는 초고속정으로 후쿠오카를 통해 입국했습니다.
처음에는 싼맛에 그랬다가 지금은 오히려 비행기보다 배가 훨씬 편해 졌습니다. 입국 심사든 뭐든
어쨌든 3시간 반 밖에 안걸립니다. 오히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호나 버스를 타면 5시간이 걸리지만 부산에서 하카타 항까지 가는 시간이 더짧습니다.
참 기분 묘합니다.

-도시 정하기-
먼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정하는 도시는 뻔합니다. 대도시죠!
일자리 많겠죠! 물론입니다. 일을 구하려는 사람도 많겠죠!
일본의 인구는 1억이 넘습니다. 한국하고 별다른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소도시라고 불리는 도시들의 크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골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결코 시골로 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있을것 다 있습니다. 도시를 정할때 반드시 대도시여만 한다라는 신조를 갖고 정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경우 선택의 폭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외국인 등록증-
일본에 워킹으로 가거나 100일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물건입니다.
말그대로 신분증입니다. 구청이나 시청에 가서 만드셔야 하고 증명사진 필수 입니다.
서두르실 필요는 없으나 집을 구하거나 핸드폰을 개설할때 필요하니 가자마자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핸드폰 개설하기-
호주나 캐나다와는 달리 핸드폰 만들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아예 만들기가 불가할 정도 입니다.
정말 많은 요금제가 존재하고 복잡합니다. 제가 보기엔
저는 그곳에 있으면서도 선불폰을 썼습니다. 성격이 남의돈을 빌려쓰는 성격이 아닌지라....
선불폰의 장점인 부담은 없지만 1분에 100엔으로 상상초월하는 가격입니다.
일본 핸드폰의 주의 할점은 문자를 보낼때 따로 아이디를 만들어 문자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번호 대 번호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 아님을 주의 같은 회사끼리는 가능합니다만.
도착하시자 마자 핸드폰 회사에 가셔서 기획 상품중 하나 고르시는게 가장 편리한것 같습니다.

-은행통장개설하기-
일본에 6개월 이상 체류할수 있는 비자 소지자는 은행 통장을 만들수 있습니다.
가까운 은행에 가셔서 여권 외국인 등록증 한자도장을 가시면 만드실수 있습니다.
한자 도장은 한국에서 만드셔도 되고 일본에서도 만드실수 있습니다. 일본은 인감도장이 대부분의 서류처리시 필수 사항입니다.
워홀러에게는 우체국이 통장을 만들기에 제일 쉽습니다.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이 보통은행에서 개좌를 개설하는 일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 외관 뒤에 보이시는 산이 증명해주듯 산동네의 거의 정상 월 2만 5천엔이라는 놀라운가격
                               지구관이라는 국제레스토랑에서 요리하던날 나가사키 큐슈
                            준신 여자 대학교 일보어 교육학과 학생들과 수업을 마치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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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2편 (비자 신청)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3편 (에세이 작성)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것! 4편 (현지적응하기 下)
[각국 워킹홀리데이/일본 워홀] - 낭만이 있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에서의 워킹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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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져서 집구하기 와 일자리 구하기 일본내 여행에 대해서는 下 편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손가락 한번 눌러주세요 로긴도 필요없습니다. 일본워킹이 한결 수월해 집니다.
4개국 워킹체험기는 꿈꾸는 20대 로 읽어주세요!


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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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seN

    아..
    언젠가 나가사키에서 딱 1년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저이기에,
    눈이 확! 뜨이면서 정신이 말똥말똥! 해지는 글이었습니다 ㅡㅜ

    2010.06.08 15:38 [ ADDR : EDIT/ DEL : REPLY ]
청카바의 여행기2010. 3. 1. 11:20

나의 20대에는 온통 머릿속이 여행으로 가득 찼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잘 몰랐던 애송이었었다.

남들이 하는것처럼 따라하고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던 아웃사이더였다.

매 방학때마다 난 베낭을 메고 어디든 가야만 직성이 풀렸다.

난 그제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아직 에너지 넘치는 20대임을 실감하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여행에 대해 곱씹어보고 난 뭔가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매우 조그마한 움직임이었다.

처음에는 인식조차 되지 못한채 그저 여행의 설레임의 일종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 존재가 윤곽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동안 그토록 알수 없었던 하고싶은 이었다.

구체적인 형상이없는 그것이었지만 점차난 그것을 형상화 시키고 싶었다. 잠시 여행을 접고 대학을 졸업하던해 남들처럼 면접을 보고 회사에 입사했다. 연봉이라는 것으로 차도 구입했고 월셋방도 얻었다. 그때까지 난 그것이 내가 하고싶었던 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안정이라는 이름의 무엇은 생각보다 기대보다 훨씬 형편없는 것이었다. 무엇을 보고 내가 짖어대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마치 동네의 어느개가 짖기 시작했을 때 따라 짖는 것처럼 나도 상사가 하는 말을 따라서 짖어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1년이 조금 넘는 회사생활에서 천만원이 약간넘는 현금과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신용 대출을 받고서 피폐해진 내 영혼에 달콤한 물을 주기로 했다. 그것은 친구들과 동기들의 표현에 의하면 과감한 결단이었고 신속한 행동을 필요로 했다.

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이내 난 내가 무엇을 갈구 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자유였다. 돈도 자유롭게 벌고 싶었다.

어쩌면 어설픈 결단에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나 난 내 자신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꼈다.

그것으로 난 된것이었다.

가슴속에 어렴풋이 꿈틀대던 것은 어떤 이아니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20대의 꿈이자 열정.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0대가 된 지금도 그것은 내마음속에서 아직도 꿈틀대며 나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내가 청카바인 이유는 바로
단지 내가 즐겨 입기 때문이다. 일년 365일을.....
대학 3학년 엠티때 여자 후배가 술을 이빠이 먹고 소리를 질렀다.
"거 누구야 ...있잖아 왜 일년내내 청카바만 입고 다닌갸 오라구 햇"
재미있으셨나요? 손가락 한번 눌러 주셔요 로긴도 필요없어요 ..즐건하루~
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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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캐나다,일본,뉴질랜드 4개국 워킹을 마치고 호주에 안착한 청카바입니다.
워킹비자중에 가장 까다로운 일본비자를 준비하신다면 당연히 에세이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쓰고 있을까?
어떻게 합격할수 있을까? 하구요
2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도 없는데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나마 제가 생각했던 방법들을 알려 드리기 위해 몇자 적습니다.
카페나 블로그에서 다른사람이 쓴글을 참고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남의것을 따라하지 마십시오 설령 참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비슷한 내용들이 접수되겠습니까?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금방 압니다. 얼마나 많이들 읽어봤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첫 문장만 읽어도 통밥이 나올겁니다.

두번째는 진부한 주제는 피하라 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일본은 바로 에니매이션과 경제대국 뭐 이랬습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더군요 애니메이션과 ....뭐뭐뭐......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대부분의 지원자가 한번쯤은 생각해본 주제들입니다.

일본어로 써야 가산점이.......
글쎄요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입니다.
합격자들의 몇몇은 영어로 접수하고 합격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구요 하지만 절대 내용은 일본스러워야 하겠습니다.
가급적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열정정도를 언급하시는것도 좋을것 같구요

에세이가 중요한 이유는 다른 서류들은 거기서 거깁니다.
말그대로 결격 사유만 없으면 통과하죠 경쟁률이 심하기 때문에 에세이에서 당락이 좌우가 되는 겁니다.

이제 슬슬 궁금해 지시죠 '지는 얼마나 잘쓴거야?'
저는 영어로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에 대해 적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꽤 유명해 졌지만 일본내에서는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음을 착안한거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써내려 간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열 종대로 세번 쯤 왕복하는 길이겠죠!
내용자체는 A4 반장도  되지 않았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일본적인 생각을 해볼까하고 만화책 50권을 하루에 다 읽었습니다. 새우깡 3봉하고 오징어 5마리 먹었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 읽고 나니까 이제 써야겠다라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아 그리고 영어 교수나 영어 잘하는 친구한테 한번 보여주고 교정은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수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감을 잡으셨나요?
결론은 남과 다르게 ....대사관에 일하는 직원에게도 흥미로울 주제로....그리고 일본어가 안된다면 영어로 가장 일본스럽게 ......그리고 간단 명료하게...가 포인트 되겠습니다.
그 다음은 운에 맡기세요 .....
일본 신주쿠에서.
나가사키 글로버 가든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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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워킹홀리데이] - 이것도 모르고 '워킹홀리데이' 절대가지 마라...


도움이 되셨다면 손가락 한번 눌러주세요........합격 통지서가 한걸음 다가옵니다.
4개국 생생 워홀 체험기는 꿈꾸는 20대 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을 답글로 해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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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4.05 02:18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유서나 이유서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진부한 형식보다는 내가 왜....내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적는게 최고지요..짧고 명쾌하게 ...이게 포인트인것 같아요!

      2010.04.05 11:08 신고 [ ADDR : EDIT/ DEL ]
안녕하세요!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 4개국 워킹을 경험하고 현재는 호주에 안착한 청카바입니다.
제가 일본 워킹비자를 준비한 것은 대학교 4학년 1학기였고 27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생일이 늦어서 만으로 25살이었었죠!
무식한게 장점이라고 믿고 있어서 일본어는 그때 당시에 일본어 초급을 학원을 다닌것도 아니고 교양수업으로 일주일에 한번 듣고 있던게 다였습니다. 히라가나 외우는데만 한학기가 걸리더군요
그런 와중에 에세이를 써야하니 머리속은 하얗게 변해 지더군요 !
저의 세번째 워킹홀리데이였습니다만 (호주 캐나다를 이미 마친상태) 일본을 준비하면서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일본 친구들이 있었고 일본 소설과 일본 만화에 환장하는 정도가 남들보다 조금 나았을 뿐이죠!

어쨌든 막막한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비자 개요부터 시작해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보다 긴밀한 우호관계를 촉진한다는 취지하에 양국의 청소년들에게 쌍방의 문화 및 일반적인 생활양식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9년 4월부터 양국 간의 Working-Holiday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만, 2009년부터는 발급 수가 2008년(3,600명)의 두 배인 년 간 7,200명으로, 2012년까지 10,000명으로 확대됩니다.
  또한 이전에 사증을 발급 받은 경우에는 다시 신청해도 사증을 발급받을 수 없습니다.


1 . Working-Holiday 사증에 대해서

  사증 발급일로부터 1년간 유효한 단수 입국사증으로, Working-Holiday 사증으로 입국하는 한국의 청소년은 일본에 입국한 후, 최장 1년간의 체재가 허가되고, 휴가의 부수적인 활동으로서 여행자금을 보충하기 위한 취업이 인정됩니다. (단, 바, 카바레 등 유흥업 또는 그에 관련된 영업을 하고 있는 업소에서 일하는 것은 제외)


2 . 일한 Working-Holiday 사증 발급요건

  ①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일 것.
  ② 주된 목적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본에 입국할 의도를 가질 것.
    ※ 인턴쉽은 대학생 등이 교육과정의 일부로서 일본의 공사(公私)기관의 업무에 종사하는 활동이고, 워킹홀리데이와는 제도의 취지가 다르므로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③ 사증 신청 시점에서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25세(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30세)이하일 것.
  ④ 자녀를 동반하지 않는 자일 것.
  ⑤ 귀국 시 비행기 표를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 및 일본에서의 체재 초기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을 소지할 것. ( 약 2 5 0 만원).
  ⑥ 건강할 것.
  ⑦ 이전에 본 건 Working-Holiday 제도를 이용한 적이 없을 것.
  ⑧ 일본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한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고 있거나 혹은 습득할 의욕을 가질 것.


3 . 신청수속

(1) 신청방법

  아래의 서류를 준비해서 일본대사관에 직접 혹은 당관에서의 사증 신청이 인정된 있는 지정여행업자 등을 통해서 신청해 주십시오.
  (우편으로 송부된 신청은 인정 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일 신청자로부터의 복수 신청은 모두 무효처리 됩니다.
  ※ 아래 ③, ④의 서류에 대해 특히 대리 신청인 경우에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다수 보여 집니다만, 그와 같은 서류를 제출한 경우 심사에 불리하게 됩니다.
  ① 사증신청서 (소정양식, 사진부착)
     사이즈는 대강 가로4.5cm X 세로4.5cm. 무배경, 6개월 이내에 촬영한 것.
  ② 이력서 (소정양식, 일본어 또는 영어로 기재 - 신청자 본인이 작성해 주십시오.)
    ※2009년 제1사분기부터 양식이 변경되었습니다.
  ③ Working-Holiday 제도를 이용하고 싶은 이유를 적은 진술서
    (일본어 또는 영어로 기재 - 신청자 본인이 작성해 주십시오.)
  ④ Working-Holiday 제도로 일본에 입국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적은 진술서
    (일본어 또는 영어로 기재 - 신청자 본인이 작성해 주십시오.)
  ⑤ 조사표(소정양식) ※2009년 제1사분기부터 추가 됩니다.
  ⑥ 기본증명서
  ⑦ 주민등록증(앞, 뒷면) 복사, 주민등록등본 또는 주민등록초본 세 가지 중의 하나
  ⑧ 병역을 필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⑦의 주민등록초본과 겸용 가능)
  ⑨ 재학증명서(휴학증명서도 가능) 또는 최종학력을 증명 하는 자료(졸업증명서 등)
  ⑩ 귀국 시 비행기 표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 및 일본에서의 체재초기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 (약 250 만원)을 소지한 것을 증명하는 예금 잔고증명서 (신청인이 부양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부양자의 예금 잔고증명서도 가능하며 이때 부양자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 주십시오)
  ⑪ 신청인의 우편번호, 주소, 성명을 기재한 회신용 우편엽서
  ⑫ 일본어능력입증자료 (일본국제교육지원협회인정의 일본어능력시험(J L P T)인정증, 일본어학교의 수료증서 등. 입증자료가 없는 사람도 신청은 가능합니다.)
  ⑬ 여권복사 (신분사항 란 은 확대 및 축소금지, 컬러복사금지, 지금까지 일본에의 출입국 확인이 있는 페이지 전부를 깨끗하게 복사해 주십시오)

(2) 신청기간

  2010년의 신청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3)의 어느 곳에서 신청해도 신청기간은 같습니다.)
    (신청시간 오전 9:30 ~ 11:30, 오후 1:30 ~ 4:00)
    제 1 사분기 2월 1일 (월)부터 2월 5일 (금)까지
    제 2 사분기 4월 26일 (월)부터 4월 30일 (금)까지
    제 3 사분기 7월 26일 (월)부터 7월 30일 (금)까지
    제 4 사분기 10월 18일 (월)부터 10월 22일 (금)까지

※ 신청기간 최종일은 신청자가 많아 대단히 혼잡하므로, 가능한 한 최종일은 피해서 신청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신청 장소 (주민등록상 주소에 따라 다음 세 곳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

  ○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영사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146-1 이마빌딩 7층
     (현주소가 부산총영사관, 제주총영사관의 관할 이외인 사람)

   ○ 재부산일본국총영사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1147-11
     (현주소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ㆍ북도인 사람)

  ○ 재제주일본국총영사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977-1
     (현주소가 제주특별자치도인 사람)

(4) 심사결과의 통지

  홈페이지에 공시 및 통지서(엽서) 발송으로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엽서 발송 예정 시기는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제 1 사분기 3월 초순경
    제 2 사분기 5월 하순경
    제 3 사분기 8월 하순경
    제 4 사분기 11월 하순경
  심사에 통과되신 분은 통지서(엽서)에 기재된 일시에 여권과 엽서를 지참해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4. 지원기관

○ 사단법인 일본 워킹홀리데이 협회
  위 협회는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지원, 촉진하고 있는 공익법인으로서 워킹 홀리데이 사증으로 일본에 가는 한국인 청년들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협회는 모두 등록제로 되어 있어 상기 서비스를 받으시기 위해서는 위 협회에 등록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jawhm.or.jp

⊙ 동경본부
   東京都千代田區九段南(도쿄도 치요다쿠 구단미나미)4-7-16 
    (이치가야 KT빌딩1, 5층)
    TEL 03-3265-3321
    FAX 03-3265-3325

⊙ 오사카지부
   大阪府大阪市中央區北浜東(오사카후 오사카시 츄우오쿠 키타하마히가시)3-14
   (엘오사카 4층)
   TEL 06-6946-7010
   FAX 06-6946-7021

⊙후쿠오카 ※ 특별강좌 수시개강
   福岡県福岡市早良区百道(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사와라쿠모모치) 2-3-15
   (모모치파래스4층)
   TEL 090-3546-3972
   FAX 090-851-1028


5. 앙케이트 조사

  
2009년 제1사분기부터 사증 발급 시에 앙케이트 용지(소정양식)를 배부하므로, 워킹홀리데이제도를 이용하고 한국에 귀국한 후에 필요사항을 기입한 후, 사증발급을 받은 공관에 메일(visa@japanem.or.kr)이나 우편으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비자 신청만 봐도 다른 나라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비해 훨씬 어려워 보입니다.
막상 준비하면 별다를것은 없습니다만
먼저 이페이지를 프린트해서 쉬운 서류부터 하나씩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다한것들에는 *표 해가면서요
그러면 한결 수월해 지기 시작할겁니다.
하지만 어려움은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에세이입니다.
내가 왜 일본에 가려 하는가?
가고싶으니까 가는겁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은 여러분에게 조금더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어하죠~
근데 여러분은 할말이 그다지 없으시죠?
저도 없는말 지어내려다 머리 터지는 줄알았습니다.
에세이때문에 몇개 카페에도 가입하고 글도 읽어보았습니다만 결론은 나만의 방식 이었습니다.
몇일전 뉴스를 보니 부활의 김태원 씨가 표절을 안하기 위해서 20년 동안 남의 음악을 안들으셨다죠!
대단합니다.  그 좋아하는 음악을 안들을 정도면 자기 관리가 대단한것 같습니다.
일본워킹도 똑같습니다.
처음부터 자기가 시작해야 하고 일본생활도 자기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자 에세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번에 붙지 못하면 두번째 도전부터는 부담감까지 안아야 하기 때문에 한방에 붙는게 장땡입니다. 에세이에 자세한 내용은 3편에서 자세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써보신 분들도 그렇겠지만 참 할말 많게 만드는게 일본 워킹에세이 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나가사키 시내의 전차 입니다. 요금 100엔에 낭만이 있죠!
제가 즐겨찾던 중고서점 후루이 홍야 체인입니다. 없는 책이 없습니다. 일본어를 읽게된 후부터는 아주 살다시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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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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