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즐거운 청카바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기(저질체력과 고급체력 그리고 예비역과 현역의 차이) 본문

청카바의 여행기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기(저질체력과 고급체력 그리고 예비역과 현역의 차이)

jean jacket 2010. 3. 3. 14:46


Day 2 2009 12 20

날씨 맑음 매우 쾌청 25 호바트~리치몬드~트리뷰아나

눈이 떠지기도 전에 양순이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귀가 먼져  잠이 깨어 눈을 살그머니 떴다.

역시나 오랜만의 과음으로 내몸은 무거워질만큼 무거워져 있었다.

반쯤 감긴 눈에 눈꼽을 겨우 비벼 떼고서 방안을 돌아보니 우리 양순이는 벌써 샤워를 마치고 배낭을 싸고 아침까지 챙기고 있었다.

그다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자전거 샾이 10 오픈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타즈매니아 오기 직전까지는 자전거를 k마트나 싼 마트에서 10만원이하의 자전거를 살 예정이었다. 전에 자전거 여행을 했을 때 구입한 고급 중국제(?)같은 그런 자전거 말이다. 아니면 여행자들의 중고자전거를 살 계획이었지만 완주해야될 구간이 1000키로나 되었고 박스에 분해 포장된 자전거를 사서 조립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것까지 감안하면 여행을 할수 있는 날짜가 줄어들면서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의 완주가 불가능해질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되는 렌트 비용이었지만 진짜 고급자전거를 렌트 하기로 했다.

아침 9시쯤 호텔을 출발했다. 리셉션에서 간단히 자전거 샾의 위치를 물어 재확인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서도 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며 호바트의 아침거리를 산책 삼아 걷기 시작 했다. 공기는 신선했고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그런데 배낭을 매고 호텔을 나서면서부터 약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

처음에는 숙취에서 오는 멍한 기분인가하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언젠가 내가 전에 한번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마치 데쟈뷰에 빠진것처럼

한참을 걸어가면서 머리를 흔들어도 그 이상한 기분이 머리속에서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기분을 양순이에게 말하니 그녀 또한 그런 기분이라 한다.

물론 양순이는 전에 가족여행으로 잠시나마 이곳에 있어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봤지만 역시 이상했다.

그런데 그 이상함은 바로 해결되었다.

타즈매니아는 내가 2년전에 여행하고 양순이와 커플이되었던 뉴질랜드와 너무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오밀조밀한 집들하며 붉은벽돌과 투박하면서 세련된 집밖 장식 무늬들은 뉴질랜드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 자신의 기억조차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날씨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정말이지 데쟈뷰라 믿을만큼 닮아 있었다.

산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피쉬앤칩스 샵을 지나 양털공장을 지나고 타즈매니아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전거 샾을 향해 걸었다.

자전거 샾은 앤잭 메모리얼 공원 밑의 공중 화장실 옆에 위치해 있었다.

하루대여료는 30불이나 받을만큼 뻔뻔한 곳이었다.

물론 다른 대여점들도 그만큼 할것이었지만 어쨌든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2주 장기렌트는 다행히 할인이 되어서 각각 거금 250불씩 지불하고 자전거와 헬멧 그리고 몇가지 비상 툴과 자전거 옆에 달수있는 가방을 빌렸다.

처음엔 앞뒤 양쪽 2개씩 총 4개 달린가방을 정리하고 줄여서 짐을 2개씩으로 절반으로 줄였다. 짐을 줄이고 정리하는 것은 양순이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그것은 내가 절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내가 짐을 싸는 방법은 말그대로 막 쑤셔넣다가 안되면 발로 밟아 압축시키는 단순한 방법을 쓰고 있었는데 양순이는 차곡차곡 개서 주변의 빈틈을 찾아 차곡차곡 집어넣고 있었다. 우리 양순이의 짐 정리하는 방법은 내것보다 100배는 세련된것이었다.

어쨌든 짐이 적어야 마음도 가벼워 지는 법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할줄아는 양순이가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넣고보니 거의 모든짐이 내 뒷가방에 실리게 되었다.  

양순이의 가방도 두개를 모두 채우긴 했지만 왠지 홀쭉해 보이는 가방이 내게는 조금 불공정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볼멘 소리를 할순 없었다. 물론 나는 내 피앙세에게 무거운짐을 맡기는 그런 파렴치한 피앙세는 아니지만 볼멘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니 양순이는 웃으면서 서방님 자전거에다 가방 4개 모두 달려다 말은거예요 라는 의미심장한 볼멘소리를 하며 미소짓는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그녀의 미소는 섬뜩한 진심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웃으며 돌아섰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리고 우리는 첫번째 목적지인 리치몬드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리치몬드까지는 30키로의 평평한 도로라는 안내문을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에 발을 올렸다.

첫번째 관문은 호바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에 있는 대교였다.

대교 밑으로 큰배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오르막처럼 경사게 지게 만들어져 있었고 아마도 높은배들이 가운데 제일 높은 곳으로 지나갈수있도록 설계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첫 오르막이었을뿐이다.  

대교의 조그만 자전거 길은 양방통행이 동시에 되지 않는 협소한 길이었다. 도보자나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라도 있으면 수시로 내려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고 비좁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난 간이 심하게 오그라 들었다.

대교를 벗어나자 마자 긴장을 풀고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땅에 다시 발을 디디는 기분은 마치 몇 개월의 항해를 마친 선원의 기분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대교를 지나서 본 호바트는 마치 부산의 영도 같았다. 대부분의 집들은 높은 산에 언혀져 마치 부산 영도의 산동네처럼 보였던 것이다.

자전거를 대여하고 그곳에서 다시 짐을 싸고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해는 중천이고 11시가 넘어버렸다.

조금은 느즈막히 아니 너무 늦게 출발하는 셈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우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다윈에서 한여름의 기온 24도의 완벽한 남반구의 크리스마스를 타즈메니아에서 자전거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빵과 우유를 마시면서 호바트 시내를 다리 건너편에서 감상했다. 옆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낚시군들과 간단한 인사와 잡은 고기를 구경하고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은 호바트 시내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표지를 따라 몇 개의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랐다. 저 오르막만 오르고나서 담배 한대 쫘악하고 빨아줬으면 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담배 담배 ……금연 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페달을 힘겹게 굴리고 있었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빌어먹을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오고 있었다.

멋진 사이클이 한대 옆으로 바람처럼 쏴아악 하고 지나간다.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피드는 조금의 감소도 없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잠시뒤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늦춘다.

짐을 보니 어디 멀리 가는 모양이야?

네 오늘 리치몬드 거쳐 타즈메니아 일주 하려구요

그래? 내가 길을 알려줄게 따라와

리치몬드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그를 따라 같이 패달을 밟았다.

아침부터 벌써 90키로의 질주를 마치고 왔다는 그는 아직도 힘이 펄펄 넘치는지 나와 이것저것 우리에게 가벼운 신상에 대해 묻고 있었지만 우리는 숨이 목구멍을 차고 넘어 대답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그가 하는말에 겨우 머리만 끄덕이기도 했다.

한참을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다 그는 그의 방향으로 패달을 돌로고 우리는 그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패달을 밟다가 중간에 울월쓰에 들러 4리터짜리 물을 사서 등에 매는 물통(카멜백)에 가득 담고 물을 축였다 종달새가 나뭇잎에 맺힌 이슬을 먹는 모습이 아닌 소가 목이 말라 입주위로 흐르는 물을 주체 못할 정도로 들이 부었다.30분도 채 되지 않은 자전거 하이킹에 체력은 70프로 이상이 도망간 것 같았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피앙세 앞에서 저질 체력을 내보일순 없었다. 더구나 평소 양순이에게 해병대 출신임을 뻐기기 까지 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날씨는 그야말로 어떤 아름다운 수식어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

패달을 굴릴때는 약간 더운정도였지만 두뺨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마치 목밑을 긁어줄 때 기뻐하는 강아지의 기분마냥 상쾌하고 기분좋은 날씨였다.

리치몬드까지는 30키로의 평평한 길이었다.

전에 한국에서 해봤던 여행의 경험에 의하면 10키로는 자전거로 거의 한시간 거리였다.  높은 언덕도 별로 없었고 가파른 내리막도 별로없었다.

약간의 내리막에 약간의 오르막의 수준이었다.

더구나 첫날의 설레임에 패달은 조금 더 빠르게 굴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2시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리치몬드에 도착했다.

시내의 중심도로를 가로질러 오르막에 오르기 전에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휘청거려 스스로 놀라 얼굴이 벌개졌다. 오랜만에 하는 격한 운동에 다리가 거의 풀리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트래시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녀는 내색하나 없다. 아마도 나보다 체력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녀는 현역 난 예비역을 중얼거리며 자위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양순이가 나보다 체력이 좋으면 ? 난 개무시 당한다.

조그만 도시의 리치몬드 호텔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첫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첫 점심부터 비용을 절감하느라 빵조각을 뜯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리치몬드에서 넉넉하게 한시간 가량을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점심을 보냈다. 시계는 이미 3시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해는 아직도 중천이었다.

오늘 여기서 쉬려고 했는데 내일 예정지인 트리뷰아나까지 가자

허걱 60키로 더가야하는데? 지금 3시야?

해가 아직 중천이라구 충분할거야

전에 걱정했던 것처럼  트래시의 체력은 나보다 좋은 모양이었다.

여행의 첫날이었으므로 60키로가 어느정도 에너지를 소모해야하는지 예상할수 없었던 탓에 아마도 손쉽게내릴수 있었던 무모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햇볕이 더욱더 뜨거워져서 선크림을 한번더 바르고 출발했다.

리치몬드까지 온것처럼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허벅지도 조금은 적응이 되는 모양인지 다리가 그다지 후들거리지 않게 되었다.

차츰 차츰 길이 오르막이 되는것 같은 기분은 있었지만 난 그때 까지도 타즈매니아 전체가 평평한 땅일거라고 믿고 있었다. 호주 전체가 대부분 평평한 땅이므로 타즈매니아 또한 그럴것이라는 무식한 일반화의 오류를 난 당연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산이 하나 보였다. 어쩌다 하나 있는 산일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타즈매니아 전체에 하나밖에 없는 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희망사항이었겠지만

생각보다 꽤 가파랗다. 내려오는 차들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우리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준다.

우리에게 힘내라는 표시지?

 아니 아마도 차로 내려가는 스스로들이 미안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걸거야

그런가?

하염없이 언덕길을 오르다 마침내 표지판 하나를 만났다.

그 표시를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해발 390미터를 올랐음을 깨달았다.

390미터야 우리동네 야산정도지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대충 무시하고 넘기던 찰나 양순이가 준비한 자전거 여행 지도에는 오늘 우리가 두개의 더 높은 언덕을 지나야 함을 알게 되었다.

좌절하고 말았다. 평평하다던 동부해안이 이정도라니 다리는 다시 사시나무 떨듯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저질 체력에 좌절하기 시작했고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한것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고 금단현상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는것만 같았다.

어찌된영문인지 트래쉬는 힘이 넘쳐나 보였다.

이거 까딱 잘못하다간 약혼녀 앞에서 드러눕게 생길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쨌든 해발 390미터 다음엔 한참의 내리막을 내려왔다.

나무가 가득한 녹색의 아름다운 향연과 자연의 향기로 잠시나마 엉덩이가 찢어질듯한 아픔을 잊을수 있었다.

잠시 쉬는동안 자전거 안장의 높이를 조절하고 지도를 한번 살피니 트리뷰아나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보였다.

한번의 산을 넘어서인지 두번째 새번째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고 나름 내리막길의 시원함을 맛보며 환호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나의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지만 내리막길과 평지에서 어느정도 에너지를 충전할수 있었던건 약혼녀 앞에서 드러눕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가 만들어준 결과물이었다.

시원한 강을 하나 지나고 정보센터라는 푯말앞에서 오포드라는 동네의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몇개의 호텔과 몇개의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캠핑장소가 없었다.

10키로 이상 떨어진 트리뷰아나까지 가기에는 이미 나의 체력은 바닥의 비상베터리까지 끌어다 쓰고 그것마저 동이 난 상황이었다.

트래시에게 단호하게 아무데에서나 텐트를 치자고 했다.

우선 트래시의 자전거 여행 정보에 의하면 하나 있다고 하니 찾아보기로 했다.

3키로정도 더 가니 캠핑 장소가 하나 찾았다. 하지만 그 캠핑장은 이미 패쇄된 상태였다. 주변을 보아하니 패쇄 된지 한두해 지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트래시가 갖고 있던 정보력을 조금 의심하긴 했지만 그런 정보수집이나 여행준비에는 잼뱅인 내가 그것을 비난할 자격은 단 1프로도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있는 캠핑장엔 아직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었고 우리의 카멜백에는 마실수 있는 식수가 있었으니까.

시간은 이미 거의 9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호주가 한참 여름이기는 하였지만 9시가 되도록 해가떨어지지 않음은 신비를 넘어 경이로울뿐이었다.

제대로된 등하나 없이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인 셈이었다.

그렇게 텐트를 후다닥 치고 짐을 들여놓고 발을 뻗으니 발에 아무 감각이 없을정도였다.

오늘 하루 이동거리는 98키로였다.

11시가 넘어 출발한점을 감안하면 꽤 멀리 온셈이었다.

하지만 내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허리는 이미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치 못한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트래시가 입은 화상이었다.

날씨가 선선하고 바람이 시원해서 햇살에 의한 화상은 상상치도 못했는데 이미 트래시의 어깨와 다리는 뜨거운물에 들어간 랍스터 처럼 벌겇게 달아 올라 버렸다.

몇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선크림은 이럴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화상입은 후에 효과가 있는 알로에를 찾아야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배를 깔고 지도를 펼쳤다.

야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이러다 타즈매니아 1 2일까지 일주 가능하겠나?

에이 못하면 중간에 가로질러진 200키로 국도 타고 내려오면 되지?

???

무슨 소리 하는거? 내인생에 포기는 김치 담글때나 쓰는 말이라구 내일부터 100키로씩 이동하면 충분하다구 !

애초에 우리 양순이는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을 하러왔을 뿐이지 섬 전체를 일주할 맘같은것은 당최 없었음이다.

어쨌든 내가 설득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동상이몽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섬전체를 일주하기에는 무리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가 넘었지만 비행기 탈시간을 제외하면 14일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트래시가 만든 계획서 대로 섬을 일주하게 되면 최소 16일이 필요했다. 트래시가 잠든사이에 지도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나만의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때 처음으로 타즈매니아 등고선이 있는 지도를 보게 되었다.

좌절했다. 등고선은 오히려 한국의 것보다 높낮이가 가파랗다. 누워있는 내 허벅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내가 한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한지가 10년이 지났다. 그 의미는 그때는 20대였고 초반이었으며 군을 이제 막 제대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몸무게도 15키로 정도 가벼웠었다. 지금은 30대 초반이었고 몸무게는 90키로를 넘었으며 담배를 끊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바로 하루전의 이야기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난 하루에 말보루 한갑반을 피우던 애연가가 아니었던가?

여러가지 복잡한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파도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바로 텐트뒤의 10미터 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였다.

양순이의 코고는 소리도 미새하게 들려왔다. 그녀도 피곤했을 것이다.그녀와 1년을 넘게 살면서 몇번 안되는 코골이였다.

자전거 샾에서 짐 정리하고 있는 트래시양

리치몬드에서 점심식사하기전 크리스마스 기념 소방관들의 퍼레이드
호바트를 가로 지르는 대교
첫 캠핑을 마치고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으며


내용이 재밌으셨으면 손가락을 눌러주시구요~연재물을 보시려면 구독해주세요~! 


1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