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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워킹홀리데이/캐나다 워홀

빨간 깻잎의 나라 캐나다 워킹체험기

내가 갖고 싶은건 쿠바행 비행기 티켓과 인화하지 않은 십수개의 필름통이었다.

나의 수동카메라의 앵글로 곳곳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싶었다.

망각의 동물이라는 인간의 짧은 기억력을 한탄하면서 나의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을 필름에 담아 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색이 바랄 뿐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빨간깻잎의 나라 캐나다.

삼학년이라는 학년은 꽤나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항상 학생시절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인생선배들에게서 공감을 하곤 했었는데 나의 학생시절도 이제 후반전에 들어선 것 이다.

서둘러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다시 휴학한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가는 당장에 지게 작대기로 몰매를 맞을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휴학하는 것은 무리였고 대학생의 특권인 기나긴 방학을 이용할 요량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으는 돈보다 현지에서 모으는 돈이 훨씬 많은 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다시 배낭을 싼것 뿐이지만. 호주와는 달리 캐나다 비자는 꽤나 경쟁이 심했다.

어떻게 작성을 해야 내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반나절을 골똘히 고민했다고 하는 것은 지금의 내 생각이고 그 당시의 나는 당연히 발급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은 도대체 누구에게 어디에서 얻은 것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에세이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글이 써질 모양이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도 조금 해보고 카페에 가입해서 글도 읽어 보았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다만 몇 번째 떨어진 친구들의 불평불만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에세이를 너무 평범하게 쓴 게 떨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글을 쓰는 게 합격의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심사도 또한 까다로워서 합격한 사람의 것을 베껴서 내거나 하면 바로 낙방하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평범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학교 옆 단골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한 50권 정도를 빌려왔다. 몇 봉지의 문어다리와 과자를 사와서 하루 종일 만화를 읽을 작정이었다.

난 항상 고민할 문제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만화책을 읽곤 했다.

만화책의 내용은 가상 세계의 것이었지만 내가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는 세계의 내용이었다.

난 아직도 만화책에 세상의 진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미래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치 크리스천이 성서를 믿는 것처럼 불자가 불경을 외우는 것처럼

하루가 꼬박 지나고서야 만화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많은 만화책이었지만 쌓인 만화책을 보고 있으니 왠지 뭔가 가득 한 것 같은 보람까지 생겼다. 

인터넷 카페 글에서 읽은 것처럼 내게는 에세이 서류를 예쁘게 치장할 능력도 없었고 서류에 뿌릴 향수 따위는 내 몸에도 평생 뿌려 본적이 없었기에 그런 방법은 아예 제쳐 놓고 에세이를 작성하기로 했다.

수북이 쌓인 만화책을 책상 한구석으로 제쳐두고 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호주에서 캐나다 친구를 만난 것을 생각해 냈다.

호주의 어느 백배커스도미토리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일기를 쓰고 있었던 오후다. 

같은 방을 쓰고 있던 그 캐나다 친구는 바늘과 실을 가지고 배낭에 캐나다 국기를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에게 뭐하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캐나다 국기를 배낭에 붙이고 있는 중이란다.

그의 대답은 나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고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이해 조차 하지 못했다.

캐나다 사람이 미국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국기를 배낭에 붙이는 건 들어 본적도 없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에게 왜 미국인처럼 보이기 싫은지 물어봤다.

그는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 내게 돌아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꽤나 진지 해졌고 나도 어느새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북미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데 세상사람들은 북미에는 미국밖에 없는 걸로 생각했다. 캐나다는 마치 미국과의 경계가 희미해서 한나라로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고 다시 그 점을 강조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른 나라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외국인들은 내게 중국인이냐고 묻거나 일본인이냐고 묻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기분나쁜표정으로 항상 코리아를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해 냈다. 심지어 그들을 세계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몰상식한 인간들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캐나다인의 자존심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캐나다 여행자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들 또한 모두 목에 핏대를 높이며 동의 했다. 역시 그들의 배낭에는 캐나다 국기를 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에세이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미국인처럼 보이기 싫은 그 친구의 이유를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이해 하고 있는지는 확신 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직접 느껴 보고 싶다고 적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인의 입지와는 달리 여행자의 사회에서는 꽤나 괄시 받고 있었던 셈이다. 파키스탄 국경에서 만난 모자에 캐나다 국기를 붙이고 있던 미국인 부자처럼

난 그들의 자긍심에 대해 a4용지 반장정도 작성했고  당연히(?) 비자는 발급되었다.

기말고사 마지막 하루 전날 배낭을 싸고 있었다. 내일이면 캐나다 밴쿠버에 다시 발을 디디게 될 것이었다.

삼학년일학기 생계를 위해 난 차를 팔았다. 이제 남은 건 사지 멀쩡한 몸 하나뿐이었다.

내 지갑에는 500불의 돈뿐이었지만 내 자신감은 어느 때보다도 충만 되어 있었다.

같은 영어권인 호주의 생활을 해본 적도 있었고 그 동안의 여행 경험으로 조금 우쭐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6월의 밴쿠버는 그리 달갑지 못하게 내게 다가 오고 있었다.

10시간이 걸린 비행 끝에 도착해서 여지없이 입국 심사대를 거쳤고 간단히 나의 배낭을 찾아 공항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를 한대 피웠다.

맛있는 담배 맛이었다. 평소처럼 습관에 의해 피우는 맛이 아닌 오랜 시간 담배를 피우지 못한 후의 폐 깊숙이 파고드는 담배 맛이었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다운타운에 내려서 거리를 구경하며 호스텔을 찾았다.

비 오는 날에 썬 백패커스를 선택한 건 또 다른 아이러니다.

그곳에 짐을 풀고 내리 잤다. 시차적응이다. 한국에서 6 18일 날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여기는 아직도 618일이었다.

그 동안 그렇게 시차 적응이 필요한 곳에 가본적이 없었으니까 몸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었다. 반나절을 내리 잠만 잤다. 옆에서 짐을 풀던 뉴질랜드 친구는 어디가 아픈 줄 알았단다. 뉴질랜드 친구와 일층바에서 가벼운 샌드위치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그때 까지는 가랑비가 계속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고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시내구경을 나섰다. 거리를 걸으면서 캐나다 생활을 위해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걸 생각해 냈다.

인터넷 카페에 들러서 잡사이트를 뒤져 보았지만 생각보다 내게 맞는 일자리는 없었다. 내 지갑은 이미 일주일 치 숙박비를 지급해버려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다음날 우선 급하게 처리해야 할 택스넘버를 신청했고 통장을 개설했다.

우선 당장 일용직이라도 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호스텔 리셉션에서도 딱히 마땅하게 일이 들어온 곳이 없다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다.

먼저 용역회사에 들러서 상황을 들어보기로 하고 호스텔 캐나다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내게 아직 택스넘버가 나오지 않아서 일을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상황이 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떼를 써서 핸드인캐쉬로 인테리어 용역 일자리를 얻어냈다.

식당 인테리어 현장에서 며칠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나르니 육체노동에 응당하는 꽤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력서를 들고서 시내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은 모양새다. 밴쿠버의 여름은 나처럼 일을 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요와 공급 중 공급이 우위에 있었다. 보트하우스라는 레스토랑에 들렀을 때도 언제나처럼 웨이트리스에게 가서 매니저를 찾았고 나는 이력서를 제출했다. 나를 본 매니저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하니 태권도 할 줄 아냐고 묻는다. 우선 세계지리는 제대로 배운 맘에드는 메니저다. 그의 앞에서 군대에서 배운 옆차기를 보여주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렇게 보트하우스와의 인연을 맺었다.

보트하우스의 주방은 미칠 듯이 바빴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만 20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바빴고 접시를 나르고 야채를 썰어댔다.

그리고 일이 끝난 첫날 매니저는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새벽 두 시에 일을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그랭빌 스트리트로 돌아왔다.

그런데 난 호스텔로 돌아오는 데비스트리트에서 난 내 평생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언제나 여행을 할 때는 별 정보 없이 가는 편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별 정보 없이 오게 된 캐나다 행이었다.

난 여행을 할 때면 언제나 준법정신을 칼같이 지키는 편이다. 그 길이 가장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날도 역시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난 빨간 불 앞에서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서도 두 명의 남자가 파란 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파란불로 바뀌고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남자 두명이 신호가 바뀌자 키스를 해대기 시작했다.

호주 킹스크로스에서도 가끔 본 광경이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었는데 내가 지나는 중에도 그들은 뽀뽀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교차하는 순간 난 그들의 혀가 서로여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장면은 충격 자체였다. 유교사상에 26년을 살아온 내게 그 장면은 공포영화 착신아리의 어떤 장면 보다 무서운 장면이었다.

그날 그냥 운수가 사나웠나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호스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 영상이 뇌리에 살아나면서 그 장면이 자꾸 클로즈업 되면서 점점 선명해 지는 거다. 

순간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했다. 다행히 난 여전히 여자가 좋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만큼은 어느 영화의 멋진 장면처럼 선명하리만큼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그 이후로 난 데비스트리트를 밤에 지날 때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준법정신 따위는 내팽개치고서 집으로 돌아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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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의 노을 지는 모습 친구집 고층 아파트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찍은 사진 멀리 보이는 바다는 보고 실망한 잉글리쉬베이
스타벅스만큼이나 널려있는 팀호튼의 풍경 벤쿠버를 돌아다니다 보면 밟히는 건 커피숍이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한국보다 싼가격이며 팀호튼은 스타벅스보다 더 싸다. 매일 집앞 팀호튼이서 숙제하고 공부하고 친구만나고 .....
송년회 파티하면서 일이 새벽 2시에 끝나서 그 이후에 친구들과 모두 함께 술마시던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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