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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기도빨이 먹힌 것인지 그날 오후에 독일 가족이 사파리 투어를 신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가방 챙기고 카메라 챙기고 제일 중요한 메모리 체크하고 투어차를 기다렸다. 동물의 세계에서 자주 나오던 국방색 랜드쿠르저 뚜껑 열린(없는) 녀석이다. 뒤에 타고 보니 오토바이 타는 것처럼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기뻐서 일수도 있다) 입구장에서 알지 못할 종이에 사인을 했다. 아마 보험에 관한 내용일터 ....무조건 사인 하고 봤다. 보험 따질 처지가 아니지...내가 지금... [청카바의 여행기] - 남아공에서 기도 드린 사연 ! (첫 번째). 자!....그럼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고고씽!!! 세계적으로 백사자는 300여마리가 있다고 한다. 야생에는 한마리도 없단다. 철저하게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우월한 종자들이다.. 더보기
남아공에서 기도 드린 사연 ! (첫 번째) 약육강식. 세렝게티 초원, 동물의 왕국, 코끼리, 사자, 하마, 사하라 사막, 아프리카 부족, 희망봉,남아공 월드컵,....... 역시...생각나는 것중에 태반이 동물이야..... 내가 어릴때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도 동물의 왕국이고 .......맞아....한때 술먹고 헤롱거리면 친구들이 나보고 "에라이 사자야" 라고도 했잖아....꼭 사자 보러 가야지....근데 왜 술 먹고 헤롱거릴때 사자라고 한거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사파리를 보러가려니 투어비가 너무 비싸다 시간상 차를 빌리기도 애매했다. 물어 물어 알아낸게 조금 사파리가 싸기도 하고 기가막히게 아름답다고 하는 시골 마을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머물던 호스텔입니다. 신사라는 마을인데 참 한가한 동네였습니다. 호주에 살지 않았다면 바다에 반해서 .. 더보기
지구는 미국 문화에 침공 당하는 중! 내 쳣 해외 배낭여행은 군대를 제대한 2001년도 였다. 올해가 2010년도 니까. 강산도 변한다는10년이 지난셈이다. 20대 초반에 시작해서 이제 30대 초반이 되었다. 보는 눈도 많이 바뀐것이 사실이고 여행을 하는 방법도 많이 바뀐게 사실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실은 여행자들의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첫 여행지는 호주 였다. 그때 당시의 한국은 인터넷 카페 동호회가 한참이었다. 카페에 가입을 하고 그곳에서 궁금한 비자와 여행 방법에 대해 문의를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종종 비행기 타는법을 문의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짖궂게도 답변에는 신발을 벗고 타셔야 합니다. 신발 주머니 없으니 미리 준비하시고요 라는 댓글에 한참 배꼽을 잡기도 했고 그러했던 카페는 지금은 가입자만 십만명에 가.. 더보기
호주에서 국내선 타고 하룻밤 보낸 사연! 근 4개월 간의 여행을 마치고 룰루랄라 호주 퍼스 공항에 도착한 청카바 처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호주 퍼스의 날씨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통과한 태양 빛처럼 사방에 산산히 부서져 공항 구석 구석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기분이 마구 마구 업 되죠! "오이...나 시방 퍼스 공항인디 ....언능 와 ! 전화 건전지 얼마 없으니까 시간 제대로 맞춰서와 처제......룰루랄라." 그렇게 전기 콘센트를 찾아서 핸드폰을 충전시키면서 화장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의 3일간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몸에서는 꾀죄죄한 냄새가 솔솔 풍겼고 여행의 막바지 인지라 신발끈도 제대로 메지 않고 터벅터벅 신발을 끌고 다니는 중이었죠!.... 쪼그려 앉아 문자를 보내는데 갑자기 뒤에서 밝.. 더보기
여행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충만된 기분! 독일 프랑크 프루트에서 비행기가 폭설로 연착되는 바람에 남아공에 이틀 늦게 입국을 하게 됐다. 폭설로 인해 공항이 업무정지를 하게 되었을때 여행자가 할수 있는 일이란 옆에 있는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 정도 뿐이었다. 취미이자 특기이긴 하지만... 할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표를 받자 마자 전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시내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추운 날씨에는 배가 불러야 덜 춥다는 아주 과학적인 생각이 들어 고기와 감자를 마구 퍼 담았다.그곳이 독일이라서 참 다행이다. 영국이었다면 피시앤 칩스밖에 먹을게 없지 않은가! 여행이 막바지 였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읽을 거리가 마구 필요해서 공항서점에서 책을 두권 샀다. 언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빌브라이슨의 책을 한권 골랐고 영문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권 샀.. 더보기
미래의 나의 아들에게 ... 흠흠.....언제고 이런날이 올줄 알았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일을 마치고 집앞 입구에서 신발끈을 풀때 달려와 먼지묻은 작업복 품에 안기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구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에 망설이는 너의 모습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지금 생각해보니 망설이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가끔 호주인야?한국인이야?라는 질문으로 널 곤란하게 할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설령 호주인이라고 해도 난 별로 실망은 하지 않으련다. 니가 한국말로 귀찮게 내 귀에 쫑알 댄다면 ... 사실 이글은 니 엄마의 힘든 임신 기간중에 뒷바라지를 하면서 쓰는 글이 아니란다. 아들 네가 생긴지 20주가 채 되지 않아서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실로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더보기
외국인들 염장 터지는 독일인들의 일 처리 방식! 프랑크프루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첫 장에 나오는 공항이다. 사실 프랑크프루트는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에 난 이곳을 그냥 지나치려 했다. 뮌휀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하자 마자 공항으로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잠을 자고 이스탄불행에 몸을 실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도 프랑크프루트는 가본 곳이 아닌 그냥 들른 곳이었다 그.런.데 ....이스탄불을 떠나 남아공을 들르려 하니 프랑크푸르트를 다시 가야만 했다. 그래 이런것도 인연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3시간 경유다. 공항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 되는 시간이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가 3시간 가량 연착이 되었다. 한글 타자 연습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떼웠다. 그러다 '빌어먹을 이스탄불' 이라는 글도 하나 썼고 ...일기도 조금 썼다. 비행기를 탈.. 더보기
오리엔탈 특급작전으로 벗어난 이스탄불.. 독일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도착한 이스탄불 공항은 국제공항 답지 않게 한산했다. 비성수기 일까? 라는 기대감을 한껏 품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상쾌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서 반팔 차림으로 전철에 올라타 여기저기 구경하며 시내에 도착했다. 사람은 만원이어서 전철에서도 사람에 치이고 시내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인 관광객과 세계에서 온 관광자들 난 이 도시의 매력에 다가가기도 전에 학을 떼고 말았다. 도시의 활력 보다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이글 거리는 눈빛에 기가 질렸다. 이런 눈빛은 이슬람국가에서만 나오는 눈빛이다. 인도나 남미도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이글거리는 '사기성'눈빛은 이슬람 국가의 특징인 듯 하다.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달라붙는.. 더보기
우리는 조국과 해병대가 부를 때 한 깃발 아래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군대를 가는 것은 숙명이었다. 1999년 내가 입대 했을때 제 1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훈련소에 있던 시절이다. 동기는 어디서 정보를 입수 했는지 교관에게 물었다. "소대장님 전쟁이 납니까?" 라고 묻자 교관은 아주 어둡고 심각한 얼굴로 "니들은 다음주에 제주도로 간다. 거기서 대기하다가 배를 타고 북진한다" 라고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동기는 날라다니는 신문 쪼가리를 보고 그 정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를 가졌다. '아! 전쟁이 났구나' 라는 말을 곱씹었다. 이제 갓 훈련소에 입소한지 3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판단도 주저함도 있을 수 없었다. 비록 3주전에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곳에서 군대 잘 다녀오라는 환영 인사.. 더보기
배낭여행자에게 오히려 오지처럼 다가온 유럽! 유럽, 배낭여행 이 두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근사할것 같았다.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을 직접 박물관에서 구경하고 몇 백년된 웅장한 건물 앞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를 만끽하며 그윽하게 눈을 내리깔고 지나가는 유럽인을 구경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상상 되는가? 인도를 여행하고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를 여행하고 남미를 여행해 본적이 있다. 정작 남들이 말하는 오지가(요즘 세상에 오지가 있긴 하나 싶기도 하다) 그다지 오지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길을 잃고 헤매면 택시를 타고 호텔 명함을 내밀면 해결되고 배가 고프면 근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된다. 그리고 진짜 도움이 필요하면 아무나 붙잡고 옆에 있는 막대기를 주워서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면 백명쯤 모여드는데 그중에 영어가 되는 사람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