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에도 받다리 호미걸이 들배지기 등등 이 있음에 그 복잡한 남녀관계에서 기술이 없다하면 말이 되겠는가 ....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한 환경 30년을 한국 토박이로 살아왔고 나의 피앙세는 26년을 호주 토박이로 살아왔는데 티격태격 안하는게 미쳐돌아가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은 그동안 연애에 환장해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지는 않았다...아니 공대 출신으로 그러지 못했다고 표현하는게 조금더 가깝겠다.

하지만 언제나 활달한 먼가 나사 하나 빠진것마냥 활달했다.

여행 ....해외여행 원없이 할정도로 부유하다고 하면 찢어진 내똥구녕이 욕하겠다만 이나라 저나라 많이도 다녔다.

장동건 닯았단 소리 지금도 귀에 딱지가 앉았다고 하면 안믿겠지만 장동건이 유명해지고 거진 20년동안 그소리 들어왔다. 지금은 일본인들한테도 많이 듣는다. 그놈의 한류

어쨌든 오늘 오랜만에 트래쉬랑 외식을 했다.

술도 한잔 걸치고 가급적 음주운전 때문에 잘안하지만 기분좋아 한잔했다.

그리고 결국 또 티격태격 했다.

이곳에서 굳이 이유를 밝히고 싶진 않다.

혹시라도 이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서도 남녀 관계뻔하다.

이유 유치뽕 해서 적기 싫다.

그리고 끝내 울음을 터트린 트래쉬 왜 우냐고 물으니 그냥 화났단다. 누구한테 화난지는 모르지만 어깨를 부르르르 떠는 그녀가 애처러워 보여 사과 부터 했지만 도무지 달랠 엄두가 안난다. 함께 산지 1년됐다.

우리집 부모님도 그녀의 부모님도 모두 허락한 동거 그리고 약혼식

성격 차이 보다 많은 문화차이에서 오는 티격태격

6년을 알고 지내다가 연인 된지 1년째

만남 부터가 운명처럼 다가온 그녀였기에 모든걸 이해할줄 알았는데 연애란 또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한참 술을 한잔 마시면서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구속이 아닌 배려인데 난 그녀를 구속하려 한적은 없었나

하고 반성해본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인데 .......내가 그리 원하던 자유....트래쉬도 그 자유를 똑같이 원하고 있음이 당연한데

그 당연함도 모르는 전라도 출신의 막무가내.....미안하다. ......사랑한다....

니가 언제 한글을 읽고 내마음을 알아줄런지 몰라도 어딘가에 털어놓으니 조금은 후련하다아......

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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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 또 뭔 소린가 했네요. 우연히 들어와 보게 되었는데요. 연예(X)-> 연애(O)
    글내용엔 제대로 적으셨는데 제목이 이상해서 첨에 엥? 이랬어요^^

    2010.05.20 06:09 [ ADDR : EDIT/ DEL : REPLY ]
  2. 왕만두

    아파하는 마음속에서도 행복이 엿보이네요...
    깊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제삼자인 아줌마가 봐선 이쁘기만 한걸요~~

    2010.06.14 10:35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형준

    저두 님처럼 외국 여자와 3년 정도 사귀고, 결혼하지 2년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많고, 그것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그렇지만 아기가 나오면서 부터 굉장히 줄어 들었고..예전 같았으면 싸울것도 서로 피합니다. 어서 아기 만드세요..

    2010.07.15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각국 워킹홀리데이2010. 2. 24. 21:49

난 영어공부하러 워홀간다.

난 여행하러 워홀간다.

난 돈벌러 워홀간다.

그중 욕심꾸러기들은 세마리 토끼를 다 잡으러 간단다.

호주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워홀을 경험하고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는 나로서는 과연 난 어떤 목적으로 워홀을 떠났던가 하고 곰곰히 생각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어떤때는 언어가 목적이었지 또 어떤때는 돈이 주된 목적이었지 하고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스카이프란 인터넷 전화 프로그램을 깔면서 주소록을 갱신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던 수많은 국적의 나의 친구들의 명단을 보면서 난 내가 워홀을 간 목적은 친구 사귀러 간거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 저장되어 있던 친구들의 이름을 보자니 그때 당시의 내가 있었다.

호주에서 만났던 트래쉬와는 연인이 되었고 캐나다에서는 호주에서 만난 조의 친구인 이합을 만났다.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치하루와는 거의 의남매 수준의 의리를 쌓았고 미국인 아담과는 수시로 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

남들이 말하는 세마리의 토끼는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내게 워홀은 수많은 토끼중에 가장 의리있는 토끼였을 뿐이다.

친구라는 이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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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4.20 10:3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송재호님...
      아직 만 서른전이시란 말씀이군요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블로그에 비밀댓글이나 댓글로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ㅎㅎ 말투가 좀이상한가
      제가 메일은 잘 안열어 봐서요 블로그는 바로바로 대답해 드릴수 있으니 ...그래도 혹시 bbanggu854@hotmail.com

      2010.04.20 16:45 신고 [ ADDR : EDIT/ DEL ]
각국 워킹홀리데이2010. 2. 24. 21:46

워킹홀리데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비자의 일종이다

다만 학생비자나 관광비자 처럼 목적이 단순하지 않은 비자일뿐이다.

물론 비자는 간단하게 발급되는 편이지만 어쨌든 나이 만 서른인 한국인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비자인 점만은 확실하다.

현재 한국과 워홀이 체결된 국가는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프랑스 다.

각 나라마다 모집 요강이 다르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해 봐야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만 서른이하이고 신체건강하면 된다.

일본이나 캐나다는 꽤나 까다롭게 자기소개서나 에세이를 적어야 하지만 이것도 점점 느슨해지고 있는 중이시다.

어찌하였든 대학생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비자의 일종이다.

왜냐 관광비자처럼 돈만 쓰고 오는 비자가 아니거든

학생비자처럼 공부만 하다 오는것도 아니거든

가장 땡기는 부분은 자유롭거든....

23세살때 호주 워킹을 시작으로 본인은 캐나다 워킹 일본워킹 뉴질워킹을 경험하고 현재 호주 세컨으로 들어와 영주권을 준비중에 있다.

거두절미하고 각 나라별로 장단점을 오늘은 잠시 설명을 조금 할까한다.

아마도 굉장히 개인적인 의견이 될거라 생각하면서

 

















호주
~~~인구 2000만 알다시피 땅덩어리 어마어마하게 넓음

농장일거리는 언제나 넉넉한편이다. 호주의 워킹홀리데이는 굉장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농업부분이나 3d업종에 한해서는 어쨌든 많은 워홀러들이 농장일에 주로 종사하며 워홀을 채워가며 농장에서 3개월이상 근무한것을 증명할수 있으면 1년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급증하는 아시아 워홀러들로 인한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더이상 농장이 일자리로 넘쳐나는건 옛말이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주의 대자연은 눈부시다. 어서 돈벌어서 여행하세 .....

 

















일본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나의 경우에는 에세이 쓰는게 어려웠지만 어렵지 않았다.

무슨말이냐 하면 남들 다 쓰는 애니매이션이라든가 일본에 대해 알고있는 어설픈 지식에 대해서는 쓸생각도 말아라 ..무슨말이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써내려간 스토리란 말이다.

나의 경우엔 일본어에도 서툴렀고 해서 영어로 일본소설가 무라카미류에 대해 a4용지에 반장정도 적고서 통과했다.

차별화가 생명이다.

일본어는 영어보다 느는속도가 100배쯤 빠른것 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많이 는다.

문화의 비슷함때문에 그다지 살면서 위화감도 없지만 일본어가 잘되지 않는 초기엔 막막할수도 있다.

나처럼 시골로 갔을경우엔

교통 인프라라든지 숙박 인프라는 굉장히 좋은편이다. 약간 비싼 물가를 제외하면

세이슌 주하찌 티켓을 이용할수도 있고 숙박은 언제나 발품을 파는만큼 싸게 얻을수도 있다

일본인들과 지내다 보면 정말 개인적임을 느낀다. 군중속의 외로움은 필수불가결 그냥 외로움을 즐기도록

캐나다~~~~~미국의 51번째 주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만큼 미국과 비슷

에세이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

내가만난 캐나다인

대부분의 캐나다인은 배낭에 국기를 붙이고 다닌다

시드니에서 만난 그도 막도착하자마자 국기를 배낭에 붙이고 있었다.

신기한듯 쳐다보다 내가 왜 붙이는 거냐고 묻자 들려오는 대답에서 난 캐나다에 호기심이 120프로 상승했다.

미국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붙이는 거다.

바로 캐나다인이다.

미국의 옆집이지만 분명 다른 나라다. 당신보고 일본인이냐고 묻는다면 당신도 초난감하겠지?

그래서 갔다. 호주와 비교했을때 날씨라든지 일자리는 조금더 어렵다.

하지만 면학분위기는 조금더 조성되어 있는것 처럼 보인다.

워홀러들을 제한적으로 뽑고 있어서 워홀러보다는 학생비자가 더 많은 상황이기에

겨울 스포츠의 천국 스키나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워홀러는 반드시 고고싱

 















뉴질랜드
~~~~선착순이다.

선착순인 이유는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알았다.

인구 4백만명에 우리나라 두배의 면적이지만 사람보다 양의 밀도가 더 높은 나라

일자리가 없다. 

농장 시즌 맞추기도 하늘에 별따기다.

하지만 자연경관만은 동화책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할만큼 아름답다. 참고로 고래가 점프하는 바다에서 수영해 본사람 거수 !!! 나 손번쩍

프랑스와 독일은 작년에 생긴것 정도 관심있는 분은 직접 손가락 움직여 알아보세요

간단한 설명이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결정은 그대들이 하라

난 4개국을 경험했다.

영어 정복하러 가려면 학생비자로 가서 공부 열심히 해라

돈벌러 가려면 영어공부 좀 해서 가라 ...

여행을 하려거든 최대한 발바닥에 땀나도록 해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가서 열심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세마리 토끼잡으러 온사람들은 나중에 하나도 못잡았다고 그러더라

자기만의 색깔로 채워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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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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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여행기2010. 2. 24. 19:38

내가 처음으로 내 자전거라는 수식어를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 되는 일이었다.

동네 자전거포에서 산 중고 삼천리 자전거

비록 2년밖에 타지 못한 자전거 였지만 다리가 패달에 채 닿지도 않는 삼천리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면단위의 동네를 내발로 벗어나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와의 인연을 맺었다.

자전거는 나의 면단위 세상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 도구이자 내 인생의 작은 혁명이 되는 중요한 도구였었다. 마치 산업혁명의 영국에서의 증기기관차만큼이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초등학교보다 멀어진 중학교에 가기위해 자전거 보다는 버스로 통학하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 자전거에 대한 관심도 점차 사그라 들었다.

몸이 멀어지자 마음이 멀어진 것처럼 말이다.

자전거 이외에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타시는 오토바이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건 그때 당시의 나뿐만이 아닌 질풍노도의 시기의 나와 함께 자전거에 흠뻑 빠졌던 친구들도 매 한가지였다. 자전거는 더 이상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지 못했다.

잠깐의 탈선의 도구로 이용하려다 실패한 고2의 여름방학때의 자전거 여행을 제외하면 자전거는 나의 10대 초반에 아주 잠깐 흥미로웠던 도구였을뿐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군에 입대를 했고 동기들과 함께 제대를 하면서 다시는 김포를 향해 오줌을 누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뒤늦게 대학에 입학을 했다.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왕성한 시기였다.

밤만되면 내가 자는 동안 무슨 재미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고 잠도 못잘 정도였다.

예비역 1년차 대학교 1학년 만 21세의 대학 첫 여름방학

별다른 생각없이 부산까지 한번 자전거로 가보겠다면서 산 7만원짜리 고급 중국제(?) 자전거를 사서 패달을 밟았다.

여행에 대한 준비는 시내 서점에서 심사숙고해서 전국 도로지도 한권 산 것뿐이었다.

여행중 지도책은 거의 펴보지도 않았다. 천안에서 부산까지는 1번국도만 타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는 거창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소박함의 결정체였다.

저렴한 가격과 왕성한 체력 단 두가지 이유뿐이었다.

그렇게 천안에서 부산까지 일주일이 걸려서 도착했다.

그때 맡았던 들판의 향기와 두뺨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20대 젊은 이의 가슴에 무엇인가 알수없는 에너지로 가득 충전되어 그 안에서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신선했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에스프레소 커피 3잔을 연거푸 마신 것만큼 가슴이 크게 방망이질 쳤다. 지나가는 트럭에 자전거가 흔들릴적마다 목숨의 위협까지 느낄정도로 안전장비는 전무했고 자전거 여행에 대한 계획도 경험도 없었다.

부산 입구에 도착해 처음본 어서오십시오 부산에라는 팻말은 제대할적 받은 개구리 마크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기분은 마치 제대 3번한것만큼의 짜릿한 기분이었지만

한때는 인라인에도 푹빠져 보았고 기차여행에도 푹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학교갈때도 인라인으로 가고 학교에서도 인라인을 타고 놀고 집에 올때도 인라인을 타고 왔다.

그렇게 나도 차츰 남아도는 체력뿐인 20대가 지나가고 계란한판의 30대에 접어들자 차로 여행을 하게 되고 심지어 그것도 힘에 부쳐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었다. 난 내가 이렇게 되되되는 것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세월에 장사없음을 단연코 느끼고 있었다.

서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호주 타즈매니아의 부로셔를 읽게 되었고 우리나라 남한 크기만한 면적임을 깨달았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만 해봤다.

이내 랜터카 여행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옆에 있는 트래시에게 아무생각없이 자전거로 여행하면 재미있을까? 하고 물었다. 원하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노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뜻밖에도 나의 약혼자의 대답은 예스였다.

그렇게 호주의 아름다움의 결정체라는 타즈매니아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아무 장비도 없이 그것은 모험이었다.

내가 좋아라 하는 귀찮지 않는 모험

두바퀴와 두페달 그리고 나의 약혼자와의 2009 12월 한여름밤의 크리스마스 연휴는 그렇게 뜬금없는 질문과 엉뚱한 대답으로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
Posted by jean j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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