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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카바의 짧은 생각

세상속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게 재미있는 이유....

메이드 인 코리아......
내가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있으면서 자주 들었던 농담이다...
캐나다의 사회는 '인종의 모자이크' 로 불리는 다인종 사회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중에는 프랑스 사람도 있었고 이집트 사람도 남미 어디의 이름만 겨우 들어본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다인종 사회에서는 이름 보다는 국적이 많은걸 대변해 주기 마련이다.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돌리러 갔을때 캐나다인 메니저는 내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어?"
"한국!"
"그래 ? 그럼 태권도 할줄 알아?"
"그럼 당연하지! 블랙벨트라고!" 하며 군대에서 배운 옆차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취직이 되었다. 정신없이 바쁜 레스토랑에서 야채를 썰어대고 밀려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주방 타일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힌다.
그리고 다들 수고 했다며 하루를 마치며 이집트 친구가 내게 손가락을 치켜들며 한마디 한다.

"우오....청카바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야!"

나의 반쪽은 호주인!
영어로 '나의 반쪽' 은 Other half 라고 부른다.
나의 Other half 는 호주인이다. 난 자연산 한국인이지만 결혼을 함으로써 반 호주인이 된 셈이다.
호주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도 한국 식당이 있고 도처에서 한국 사람도 쉽게 만날수 있기 때문이다.
맘만 먹으면 한국음식 먹으면서 한국 친구 만나 노래방에 가고 최신가요를 마음껏 부르며 소주에 마음껏 취할수도 있다.
정식으로 와이프와 교제를 하면서 이런 곳에 데려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하루빨리 와이프에게 '한국의 문화' 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에 있는 아니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들은 금새 그 나라 현지 사정에 맞춰 진화하기 마련이다. 양배추 잔뜩 썰어 넣고 달짝지근한 일본간장을 당면에 비비기만 한다고 해서 그게 '한국인의 대표 잔치 음식인 잡채' 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와이프와 처가 식구들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드디어 다가왔다.
그 기회는 다름 아닌 '결혼식' 이었다.
처가 식구들은 다들 나름대로의 목적들이 있었다. 방문의 계기는 동생과 딸의 결혼식이었지만.....
장인 어르신은 호주에서 양 목장을 운영하시는 분이신데 ...언제나 내게
"청카바 한국은 양이 한마리 얼마야? 소가 그렇게 비싸?" 하고 농사일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다. 장인 어르신은 한국에 가셔서 제일 먼저 하신일은 마트에 가서 소고기 가격을 알아보시는 것이었다.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호주의 농부와 한국의 농부가 만났을때....

장모님은 한국에 오시면서 초콜릿과 사탕을 한가득 사오셨다.
"한국에 초콜릿이 없을지도 몰라서...."  라며 멋쩍어 하신다.
초콜릿을 좋아하시는 장모님이 편의점 가셔서 깜짝 놀라신다.
"아니 ...한국사람들도 허쉬를 먹어?"
"장모님 허쉬 초콜릿은 미국 건데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장모님은 우리집 식구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하고 사위 청카바가 자라온 시골 풍경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편지를 가족 한명한명에게 보내주셨다.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호주인 장모님의 '한국 사돈'에게 보내는 감사편지!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어느 70대 노부부의 외국인 사돈과의 이상한 상견례-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떡실신하는 한국 음식 이야기!


큰 처형 론다의 관심은 한국의 결혼식이었다.
한국 여느집의 맏딸처럼 사려가 깊고 동생들을 잘 보살피기로 유명한 처형은 우리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내내 울음을 터트렸다. 결혼식이 끝난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웃는다.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이 직접 경험한 한국의 결혼식!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호주인 신부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무(無)주례 결혼식!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이 재발견한 한국!-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진실
[청카바의 여행기] - 외국 꼬마들의 '에디슨 젓가락'으로 한국음식 정복하기!


둘째 언니 세라는 아시아를 꽤 여행해 본 경험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첫 방문이어서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어느날 식구들이 다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
"청카바 한국에도 '맥도날드' 가 있어?"
"그럼 ....호주 보다 많을걸!"
"뭐 정말이야?"
"일본 가봤다며.....한국에는 '라이스 버거' 도 있는데 .."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매력은?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이 떡실신 하는 한국의 것(?)!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이해못하는 한국인의 '밥사랑'

그리고 막내 처제 테미....
여느 막내집 딸처럼 가장 푼수끼가 넘치지만 ...여전히 귀엽고 순수한 편이다.
취미는 '가봉' 여기서 가봉은 아프리카 나라 이름이 아닌 옷 만드는 가봉이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새벽 세시까지 단추 구경하다 온 친구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신기해 하는 '한국인의 습관'
[분류 전체보기] -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컴플렉스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이 궁금해 하는 한국의 '가족 문화'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동방예의지국' 으로 비칠까?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배꼽잡는 한국인의 특이문화.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너무 부러워하는 한국의 서비스문화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당황스러워 하는 한국 문화

뭐니 뭐니 해도 한국여행의 주인공이었던 '나의 반쪽' 트래시는 어땠을까?
"서방님 우리 신혼여행 어디로가? 낭만적인데로 데려갈거지?"
하고 안달 복달을 헤대는 트래시 앞에서 '한국에 가는게 신혼여행이지!' 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있고 말고 정말 낭만적인 한국의 파라다이스로 모실거라구!"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제주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월이 다 가도록 벚꽃은 필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고 비행기를 타던 날도 이미 물러가도 한참 전에 물러가야 했을 겨울의 바지랑이이를 부여잡고 앙탈이라도 부리는듯이 눈발이 휘날렸다.
날씨는 추웠고 보고 싶었던 벚꽃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와이프는 신혼여행에 만족을 한 모양이다. 호주에 와서도 가족들에게 내내 제주도에서 본 바다며 한라산 등정한 일을 두고 두고 말하는걸 보면 말이다.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제주도로 신혼여행간 외국인의 사연!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내가 신혼여행가서 '만화방'에 간 사연!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신혼여행에서 한라산을 등정한 '외국인 여인네'의 사연!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데이트 산책 코스란.....

호주 처가집 식구들과 한국 여행을 한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을 가보지도 않은 5살 조카들에게는 한국 뽀로로 장난감 시계가 채워져 있고 에디슨 젓가락으로 가끔 밥을 먹곤한다.
장모님은 우표 모으기가 취미이신데 ...이제 북한과 남한의 우표를 따로 정리하신다.
막내 처제 테미는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했다고 하니 "음식 남겨놔 금방 먹으러 갈테니까!" 라며 한국 음식의 팬임을 증명했다.
여러모로 편리해졌다. 더이상 한국에 맥도날드가 호주만큼 흔하다는 설명을 할 필요도 없어졌고 내가 왜 냉장고와 티비를 죄다 한국 가전제품으로 사용하는 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처가식구들이 먼저 말한다. "청카바 나 삼성 티비 샀어....."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 시절 한국을 가본 외국인

뉴질랜드 내피어라는 곳에 차를 타고 도착했는데 난 그곳을 단숨에 사랑하게 되었다.
도시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망망대해는 햇볕에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었고 도시까지 해변도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곳곳에 '바다가 아름다우니 천천히 감상하며 운전하세요' 라는 팻말이 어떤 관광 안내 보다도 마음에 와닿는 조그만 해변 도시였다.
여러군데 숙소를 찾아보다 조금 비싸지만 해변이 바로 보이는 곳의 여행자 숙소에 침대를 하나 빌려 기타를 들고 나가 자갈 해안에 앉아 파도소리 코러스 삼아 몇곡을 치며 앉았다.
"그래 이곳에서 일도 찾아보고 이곳에서 살아야 겠다." 라는 결심을 하는것은 전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어렵지도 않았다.
바로 다음날 부터 시내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몇 군데 면접을 보고서 잡은 일자리는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곳의 주방장은 나이를 알수 없을 정도로 늙은 할아버지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다에 나가 파도 소리를 듣다가 엠피쓰리의 음악을 목청이 터져라 몇곡을 부르다 지쳐 일기를 쓰다 낮잠을 자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일을 시작하기전에 담배 한대 피우자는 주방장 할아버지
"청카바 한국에서 왔다고?"
"네..남한이에요!"
"응 그래 내가 젋었을때 부산에 간적이 있어!"
"응? 할아버지가 젊었을때면 언제적?"
"내가 배에서 조리를 했지 아주 큰배야 ...크루즈 60년도 쯤인데 ...부산에 도착했을때 그 냄새까지도 아직 기억한다구!"
"그때의 한국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한국이네요.지금은 그때하고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죠!"
"그래! 그렇겠지....그때 시장가서 ...하얀 술도 마시고 그랬지..."
"엥? 막걸리를 아시는군요!"
"내가 그때 당시 17살인가 18살인가 그랬어"

그리고 한참을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을 그렇게 배에서 요리사를 하며 각국의 모든 맛있는 것들을 먹어봤다며 회상에 젖으셨다.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할아버지가 알아 볼수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평소처럼 삼성도 한국꺼고 현대도 한국꺼고 엘쥐도 한국꺼예요.라고 자랑을 해버릴까봐.
아마도 내가 그말을 했더라도 다른 외국인처럼 깜짝 놀라며 감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저 추억속의 부산 영도 어디쯤을 이미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시는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청카바의 짧은 생각] - 내가 경험한 "문화강국 한국"의 이름 "한류"


저는 한 여자와 2번 결혼식을 했습니다. 두번째인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여러모로 호주 처갓집 식구들에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주 식구들은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전남 함평 시골 논길을 꼽더군요!

가장 한국적인 모습에 반한 그들에게 논길을 보여주시는 당숙 어르신!


한복을 고를때는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조카가 우리옷을 보고 한마디 하더군요....

"삼촌 무궁화야!"
와이프 트래시는 한복을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한벌 사서 호주에 왔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우리나라 만큼 좋은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것 같습니다.
휴게소가 보일 때마다 멈춰서 군것질을 해댔습니다. 장인 어르신은 통감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는지 가끔 호주에서도 생각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손가락 추천! 도 메이드인 코리아가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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